• 쇠고기 시장 개방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통합민주당 등 야권 3당은 쇠고기 시장 개방 진상규명 및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며 국회 청문회 개최를 23일 합의했다. 야권은 국민 안전을 내세우며 쇠고기 시장 개방이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같은 지적이 한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협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사실을 호도한 공세라는 견해도 만만찮다.

    지난 18일 한미 양측은 1단계로 30개월 미만의 소에서 생산된 갈비 등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하고, 2단계로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권고한 강화된 사료금지조치를 공포할 경우 이 기준에 따라 30개월 이상 소에서 생산된 쇠고기도 수입을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마치 '미국산 광우병 소를 수입하게 됐다'는 식의 과장된 구호가 나오면서 국민적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국제통상전문가인 이화여대 최병일 교수(국제대학원장)는 23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협의는 OIE의 국제적 기준을 존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쇠고기 시장 개방에 있어 광우병 위험에서 안전한가, 그리고 다른 나라의 경우와 형평에 어긋난 합의를 했는가 두가지 점을 살펴봐야한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먼저 정치권 일각의 '굴욕적 외교' '한미 정상회담 선물용'이라는 비난성 공세를 최 교수는 "단지 순서의 문제"라고 일축했다. 그는 "우리와 비슷한 수입 조건으로 개방한 나라가 캐나다, 멕시코이며 아시아에도 필리핀과 인도네시아가 있다. 일본과 중국도 협상을 진행 중이다"며 "우리에게만 유리하거나 불리한 조건으로 협의한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117개 국가 중 96개국은 수입 조건에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미국은 OIE의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를 인정받은 이후 일본 중국 대만과 수입조건 개정협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30개월 미만의 뼈없는 살코기를 수입하고 있는 중국이나 대만, 20개월 미만의 뼈있는 쇠고기를 수입하는 일본의 현재 상황과의 단순비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캐나다 멕시코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60여 국가가 우리와 같은 조건으로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는데 이를 '건강권 포기'라고 지적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며 "OIE 기준을 존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광우병 소 수입' 우려에 대해 최 교수는 "미국이 OIE에서 권고한 강화된 사료금지조치를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과 캐나다에도 쇠고기 시장을 확대해야하는 미국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시장을 빼앗길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안전성이 담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마치 우리에게만 광우병 소를 먹이려한다는 시각은 정말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어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 국민이 '못 믿겠다'는 심리적 저항에 따라 수입하지 말자고 하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며 "다만 국제기준에 벗어난 과도한 검역조치의 필요성을 증명해야하며 그에 따른 불이익도 감수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연합(EU)이 지난 10년간 두차례 성장호르몬을 투여한 미국 쇠고기를 수입 금지 조치한 이후 벌어진 상황을 예로 들었다. 최 교수는 "EU가 성장호르몬 투여 쇠고기가 국민 생명 안전을 위협한다며 수입을 금지한 적이 있었으며 미국이 인과관계가 증명이 안된다며 맞서며 WTO에 제소한 일이 있었다"면서 "WTO의 심리 결과 EU의 지나친 보호주의 조치로 매듭지어지면서 EU가 패소했다. 패소 이후에도 변화가 없는 EU에 보복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결국 국제기준보다 과도한 기준으로 수입을 금지하려면 근거를 제시해야하며,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 다른 분야의 무역에서 상쇄할 만큼의 손해를 감수해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이같은 사실을 알고도 거부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했다.

    최 교수는 또 '광우병 소가 들어올 수입길을 열어놨다'는 민주당 박홍수 사무총장의 발언을 "참으로 무책임하고 정치적인 주장"이라며 개탄했다. 박 총장은 노무현 정권에서 농림부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최 교수는 국제교역에서 상호 위생관리 시스템을 인정하는 '동등성'을 들어 이를 반박했다. 그는 "미국 위생국이 위생점검상태를 인정한 36개 도축장 가운데 만약 한 군데라도 문제가 생기면 첫째 미국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는 방법, 그 다음으로 문제가 된 도축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도축장에서 들여오는 방법 등을 택할 수 있다"면서 "박 총장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한국과 미국은 현재 돼지고기와 닭고기 교역에서도 동등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번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서도 새로운 수입위생조건이 발효될 경우 미국의 위생시스템에 대한 동등성을 인정하되, 발효 후 90일간은 36개 도축장 중 이미 승인이 취소된 4개 작업장과 추가 승인을 요청한 신규 작업장에 대한 승인 권한을 한국측이 갖기로 했다고 정부는 밝혔다.

    한편, 한나라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쇠고기 수입 개방으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송아지 생산안정제 기준가격 상향조정 및 도축세 폐지, 브루셀라 감염 살처분 100% 보상, 한우 원산지 표시제 확대 실시, 미국 도축장 실사단 파견 등 5개항을 정부에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또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를 둘러싼 야권의 비난을 정치공세로 규정하고, 여야정의 정책 책임자들이 참여하는 TV토론회 개최를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