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칼럼 '2008년의 화두'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8년의 화두를 무엇이라고 정하면 좋을까? 이와 관련해 2007년 말에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 어쩐지 자꾸 뇌리에 떠오른다. "나는 품위 있고 권위 있게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의 이 한마디야말로 지난 5년 '화(禍)의 뿌리'를 다른 어떤 수사(修辭)보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2008년의 화두는 그래서 '품위 있고 권위 있게 말하기'로 정한다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품위 있고 권위 있게 말하는 것은 결코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교양의 문제, 인문(人文)의 문제, 예(禮)와 예(藝)의 문제, 그리고 격 높은 문화의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어릴 때부터 몸과 마음에 저절로 배게 하는 일상의 짜임새일 것이다.

    지난 5년을 흔히 좌파의 실패라고 뭉뚱그려 설명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분석하면 그것은 반(反)지성적 좌파의 실패였고, 더 넓혀 말하면 무교양, 무례함, 천박함, 반(反)문화적인 것들 일반의 산물이었다. 다음 정부에서는 그래서 경제 실용주의를 보다 건강하게 꽃 피우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떠받쳐줄 교양의 인프라를 두껍게 구축해야 할 것이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스위프트는 교양을 '감미로움(sweetness)과 영롱함(light)을 추구하는 고운 심성(finely tempered nature)'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교양은 바로 그 감미롭고 영롱한 심성을 살찌우는 자양분이라는 뜻이었다. 매튜 아놀드는 교양을 '지금까지 사유(思惟)되고 말해진 것들 중 최고의 것을 접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레이몬드 윌리엄스는 교양이란 '그렇게 추상적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삶 속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다른 설명은 교양을 순간순간의 호흡처럼 일상화해야 한다는 하나의 명제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교양의 일상화를 공공사회, 지역공동체, NGO 활동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모범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미시간 인문 카운슬(Michigan Humanities Council)이란 비영리 단체의 활동이다. '예술과 인문으로 삶의 균형을 잡자'라는 제하에 그 단체는 각종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미시간주 6개 지역 농촌 공동체에 풍성한 교양의 샤워를 쏟아 붓고 있다.

    TV 인문 프로그램 지원, 전통 물산과 지역 민담, 향토 역사, 고유식품 전시관, 지역 문화계 활동을 전문적으로 보도하는 라디오 방송국, 문화 사적지 답사, 학생 시 낭송회, 지역 문화와 역사 연구자들에 대한 재정 지원 등이 바로 그런 활동들이다. 대형 백화점에 연극·무용 공연 유치하기, 직장 점심시간을 이용한 독서클럽 운영, 양로원, 병원, 유아원 방문 공연, 공원과 공공 청사 복도를 이용한 미술전·사진전도 빠질 수 없는 항목들이다.

    어렸을 적부터 이런 문화 환경에서 인문교양의 세례를 풍성하게 받으며 자란 사람은 나중에 우파를 하든 중도 좌파를 하든 홍위병처럼 '깽판 치는 일'만은 차마 하지 못 하는 인격으로 자랄 수 있다. 지난 5년 우리 사회의 '깽판'은 말하자면 그 정반대 쪽 삭막한 구석에서 '깡마른 청춘'을 씹어야 했던 '어둠의 자식들'의 병리적 복수극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산업화·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접어드는 오늘의 길목에서는 우리도 이제는 마음의 윤택을 회복해 '품격 높은 사회'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자질을 갖추지 못하면 지구 시민사회가 우리를 '선진 국가군'에 절대로 끼워주지 않기 때문이다. 선진화는 법치주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이명박 당선인의 당연한 말이 '선진화는 문화의 시대'라는 또 하나의 당연한 지향과 짝을 이루어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