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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강인선 논설위원이 쓴 <미 대선주자들의 '검증' 돌파법>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미국 출장 중 서점에 들렀다. 요즘 미국 출판계에서 전기 비슷한 것을 쓰기만 해도 화제가 되고 돈이 되는 사람이 두 명 있는데, 바로 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라고 한다. 정말로 힐러리와 다이애나의 얼굴이 서점의 한쪽 벽을 덮었다. 힐러리에 관한 책만 벌써 10권쯤 나왔다. 심지어는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지 않게 마법을 걸 수 있도록 인형과 바늘을 같이 파는 ‘힐러리 부두(voodoo) 키트’도 있다.
힐러리는 최근 민주당 대선 후보 중 지지율 1위 자리를 다시 굳혔다. 두 주 전까지만 해도 오바마 상원의원의 맹추격으로 두 후보의 지지율이 비슷해졌다가, 힐러리가 다시 10% 포인트 이상 앞서기 시작했다.
검증 시즌이 다가오면서 힐러리는 비장해졌다. 최근 자신과 남편이 갖고 있던 주식을 모두 팔아 현금으로 은행에 맡겨 버렸다. 보유 주식 중엔 정유회사 엑손 모빌, 유통업체 월 마트, 제약회사 화이자 등이 있었다고 한다. 에너지와 노동, 보건 정책 등과 관련해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백악관으로 가는 길에 장애가 될 수 있다면 아예 싹부터 자르는 전략을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2000년 대선 때 고어 후보를 제외하면 이런 방식으로 재산과 관련된 논란의 소지를 없앤 후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될 것에 대비해, 거부감을 느끼는 유권자가 유독 많은 힐러리의 ‘특수사정’을 감안해서 나온 대응책이었을 것이다. 힐러리에 대한 검증은 정적과 혐오자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과정이다. 남편의 백악관 인턴과의 스캔들을 비롯해, 반복해서 말하기만 해도 혐오감을 줄 일들이 줄을 서 있다. 그래서 힐러리는 점점 더 방어적이 되어 간다.
게다가 미국에선 후보들끼리만 서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도 문제를 제기한다. 주요 일간지들은 검증문제 전문 기자를 따로 두기도 한다. 검증과정은 “아니, 이런 것까지?”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최근 한 기자는 오바마가 대학원 다닐 때 안 냈던 주차위반 벌금을 출마 결심 후 한꺼번에 낸 사실을 밝혀냈다. 한 방송기자는 롬니 전 주지사에게 공개적으로 “결혼 전에 부인과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미국 정치부 기자들끼리도 “대통령이 되려면 늦어도 다섯 살 때는 결심을 해야 한다”는 농담을 한다. 사생활까지 깊이 파헤치고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기관리를 하기 전엔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미국에선 검증의 도마에 오르는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한 가지 있기는 있다. 남이 묻기 전에 ‘자백’하는 것이다. 공화당의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리더십 책을 쓰면서, 복잡한 결혼에 얽힌 사연을 미리 밝혔다. 9·11 테러 때 부인과 자식들은 물론, 애인이 안전한지도 챙겼다고 고백했다. 오바마도 학창시절 마약 복용 사실을 자서전에 먼저 공개해 버렸다. 솔직함과 용기를 높이 사는 미국사회의 분위기를 감안해 검증대상이 될만한 내용은 스스로 공개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하버드대 거겐 교수는 “미국 정치에는 밥상을 엎었더라도 제 손으로 치우면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국민들에게는 때로 과거 그 자체보다 정치인이 과거의 문제를 현재 어떻게 다루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힐러리 전기를 쓴 번슈타인도 힐러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일은 검증과정에서 공격하고 방어할 때 노출될 ‘진짜 성격’이라고 했다.
사람은 위기에 빠졌을 때 성격이 드러나고, 남의 약점을 발견했을 때 인격이 나온다고 했다. 어쩌면 검증논란이 격화될수록 우리가 제대로 봐야 할 것도 바로 이 ‘성격’과 ‘인격’인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