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란에 이 신문 박제균 정치부 차장이 쓴 '야누스, 혹은 표변(豹變)'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가대하며 소개합니다.

    #1; 누가 뭐래도 노무현 대통령은 뛰어난 정치인(politician)이다.

    전두환 대통령 이후 단임제 대통령의 임기 말, 그것도 대선이 불과 8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현직 대통령은 ‘화석 대통령’(‘식물 대통령’이란 표현은 식물을 모독한다는 지적이 있다)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시점에 노 대통령은 ‘세계와의 경쟁’을 역설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밀어붙여 20%에 턱걸이하던 지지도를 일거에 30% 안팎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일주일도 안 돼 ‘세계와의 경쟁’과는 거리가 먼 ‘3불정책(대학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 고수’를 외쳤다. 다시 이틀 만에 현행 남북교류협력법 등을 위반한 최측근 안희정 씨의 대북 접촉에 대해 “내가 지시한 것이므로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고 강변하는 특유의 ‘노무현 스타일’로 되돌아갔다.

    ‘이번에 또 뭘 터뜨릴까?’

    불안하지만 궁금증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은 여전히 ‘한방’을 갖고 있다. 임기 말 그의 정치적 파워는 ‘변칙 플레이’에 크게 힘입고 있다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다.

    #2; 1980년대 초반 관악의 공기는 차가웠다. 

    따스한 날도 있었겠지만, 기억의 창고에 남은 서울대 교정은 춥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터지는 최루탄, 그 싸한 냄새와 자욱한 연기….

    그 뒤로 25년 안팎이 지나 올 초 마주한 한 장의 사진. 당시 운동권 학생이던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군부독재의 수괴’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세배하는 모습이었다.

    그 한 장의 사진은 원 의원 자신을 포함한 운동권 출신은 물론 운동권은 아니었어도 군부독재 때문에 춥고 어두운 번민의 시절을 보내야 했던 많은 이의 젊은 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듯한 이미지였다. 이런 변신, 아니 ‘표변’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3; 그래도 변신의 최고수는 역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아닐까 싶다.

    1984년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 당시 무고한 시민을 정보기관의 정보원으로 오인해 불법 감금 폭행한 사건으로 구속되고도 감성적인 ‘항소이유서’를 남겨 젊은 날부터 변신의 잠재력을 보인 그다.

    “한나라당 박멸이 나의 사명”이라는 등의 폭언을 퍼붓고도 노 대통령이 제안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에 찬성하고, 동료 의원과 언론에 ‘독극물’이니 하며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사를 쏟아 내다 장관 청문회 때는 “앞으로는 신중하게 말할 것”이라며 의원들에게 고개를 조아린 놀라운 변신 능력….

    자신은 1년 넘게 국민연금을 안 냈고, 이후에도 덜 낸 의혹이 있음에도 “내가 사임함으로써 국민에게 이게 얼마나 중요하고 절박한 일인지 알릴 수 있다면…”이라며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의 순교자처럼 보이는 모습은 또 어떤가.

    ‘표변’은 원래 표범이 가을에 털을 가는 것처럼 군자도 신속하게 자기 변혁을 해야 한다는 좋은 뜻을 담고 있었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도 문과 경계의 수호신으로 로마인의 숭배를 받던 좋은 신이었다.

    이 두 단어가 오늘날 ‘안면 바꾸기’나 ‘이중성’ 같은 나쁜 뜻으로 변질된 것은 어쩌면 인간 본성에 급격한 변신을 거부하는 DNA가 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쉽게 표변할 수 있는 야누스 같은 변신 능력이 부럽고도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