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9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법 개정안 국회 부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날 뜻을 밝혔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알았다. 두고 보자”라고 했다.

    보건복지부 안을 토대로 한 ‘더 내고 덜 받는’ 연금법 개정안은 지난 2일 국회에서 찬성 13표가 부족해 부결됐다. 열린우리당 탈당파 의원 31명 중 4명이 표결에 불참하고 18명이 기권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탈당파 의원들의 유 장관 개인에 대한 거부감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유 장관은 지난 6일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중요한 법안을 처리하는 데 방해된 것 같아 죄송스럽다. 정말 나 때문에 법 개정이 어렵다면 장관직을 수행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유 장관은 그날 밤 사의를 밝혔다.

    유 장관이 장관직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여권 의원들은 또다시 술렁이고 있다. 유 장관이 국민연금 개정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완수하지 못한 데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다. 유 장관이 열린우리당으로 돌아오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유 장관은 여권 통합에 부담이 되니 제발 내각에 남아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해 달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작년 1월 대통령이 유 장관을 임명할 때는 연판장을 돌리며 반대했었다. 대통령은 유 장관을 차세대 지도자로 키운다면서 입각시켰다.

    현행 연금법을 그대로 두면 2047년에 연금 재정이 바닥이 난다. 연금 잠재 부채는 하루 800억원씩 늘어나고 있다. 지난 2일 개정안이 부결된 뒤 일주일 동안 늘어난 잠재부채만도 5600억원이다.

    열린우리당 탈당파는 당을 버리면서 “정책만은 뒷받침하겠다”고 하더니 유 장관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에 눈이 가려 중대 국가정책의 경중(輕重)도 구분 못 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열린우리당 잔류파도 유 장관 때문에 여권 통합이 안 될까 봐 전전긍긍하느라 국민연금 문제는 뒷전이다. 이 무책임한 두 세력이 합쳐서 지난 4년 내내 ‘집권세력’ 운운해 왔으니 정권의 책임감이 살아 있었을 리가 없다. 자신과 정치적 색깔을 같이하는 인물로 뒤를 잇게 하겠다는 욕심 때문에 ‘유시민 파동’을 불러온 대통령도 달리 할 말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