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 '분수대'란에 이 신문 김진국 논설위원이 쓴 '단식광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중국의 한(漢) 왕조를 전후로 가르는 신(新)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겨우 15년을 버틴 이 나라를 세운 왕망은 공승이란 선비에게 고위직을 주려 했다. 예를 갖춰 무려 1000명이 넘는 관리들이 함께 찾아갔지만 공승은 병을 핑계로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도 닷새에 한 번씩 계속 찾아오자 공승은 "한 몸으로 두 성(姓)의 황제를 섬길 수 없다"며 입을 다물고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 결국 14일 만에 숨을 거뒀다. (사마광, '자치통감') 황보밀의 '고사전(高士傳)'은 팽성노부가 "아, 향초는 향기 때문에 자기를 태우고, 기름은 밝음 때문에 자신을 녹이는구나…"라고 곡을 했다고 전한다.

    유교에서는 단식을 선비의 고결한 저항 수단으로 존중했다. 주나라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은 백이.숙제(伯夷叔齊)의 전통이다. 나라를 곧 왕의 소유로 생각했던 왕조 시대에 무력 이외에 저항할 방법이 그것밖에 더 있었겠는가.

    최익현 선생은 74세에 의병을 일으켜 쓰시마에 잡혀가자 "원수의 밥으로 연명하랴"며 곡기를 끊어버렸다. 아일랜드공화군(IRA)의 보비 샌즈는 66일간의 단식 끝에 목숨을 버렸고,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무려 14번이나 단식을 했다. 전두환 정부에서 김영삼씨가 할 수 있는 것도 죽음을 건 단식밖에 없었다.

    단식은 무력 이상의 저항 수단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죽음과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단순히 자신 주장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단식을 한다. 목숨을 건 시늉은 부정직하지만 정말 생명을 거는 일은 더욱 용납하기 어렵다. 민주화된 사회라면 정상적인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그 길이 열려 있다면 자기 목소리만 크게 들리게 악을 쓸 일이 아니다.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단식을 벌였다. 집권당과 정부에서 요직을 지내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는 사람들이다. 얼마든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협정안에 최종 동의할 권한도 그들이 쥐고 있다. 결국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정치가 고작 밥을 굶는 것일까. 힘없는 서민에게는 더 극단적인 방법을 부추기게 된다.

    카프카의 단편 '단식 광대'는 단식하는 것을 보여줘 생업으로 삼는 광대 이야기다. 열광했던 관객들의 관심이 시들해졌을 때 그 광대는 이미 음식의 맛(진실)을 잃어버리고 죽음에 이르러 있었다. 생명을 흥행 수단으로 삼아 진실에 눈을 감는 단식 광대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