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13일, 열린우리당은 탈당파와 사수파 간 '상호비난전'으로 시끄럽다. 전대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누가 언제 또 탈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다 선도탈당파·집단탈당파·사수파가 서로 비난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기실 '그 나물에 그 밥'인 세 그룹이 정책경쟁으로 인한 차별화보다는 '상호비난전' 양상을 보이며 향후 '대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합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커졌다.

    열린당 잔류파와 탈당파는 그동안 서로를 맹비난해왔다. '민생정치 의원모임'을 주도하는 천정배 의원은 9일 "열린당 자체가 대통합의 걸림돌"이라며 당을 비판했고, 집단탈당파 중심의 '통합신당추진 의원모임'의 이강래 의원은 지난 주말 워크숍에서 "급진좌파적 성향의 청와대 386 참모들에다 개혁당그룹, 108명 초선의 이질적 혼합성이 태생적 한계였다. 이로 인해 열린당은 무능·혼란·좌파 이미지가 굳어졌다"고 비판했다. 이 모임 소속 최규식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 안에 있는 한 통합신당은 희망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꼬집었고, 변재일 의원은 "항상 우린 노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를 국민에게 설득하려는 귀향활동만 해왔다"고 말했다. 불과 1주일 전까지만 해도 같은 당 소속이었는지 분간이 안될 정도다.

    탈당파의 노 대통령의 비난은 보다 거세다. 통합신당모임은 지난 주말 워크숍을 통해 '언제 봤느냐'는 듯 노 대통령을 성토했다. 이강래 의원은 "노 대통령은 큰 입만 있고 귀와 눈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면서 "노 대통령은 훌륭한 후보감이지만 훌륭한 대통령감이었는가에 대한 지적도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병헌 의원은 "국민과 대화하고 이해를 구하려고 하는데 어느 날 (노 대통령의) 큰 소리 한방이 모든 걸 날려보낸다"며 "실망감 속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 "(노 대통령의) 한쪽 구석엔 자만과 오만이 넘실거린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양형일)" "노 대통령처럼 그냥 생각나는대로 얘기하지 않겠다(노웅래)" "노 대통령이 잘못해서 개혁 민주를 다 팔아먹었다(우제창)"고 비판하기도 했다.

    탈당 그룹 간의 비난도 시작됐다. 민생모임의 이계안 의원은 12일 "기득권을 포기한다면서 (신당 창당) 로드맵을 발표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며 이날 원내교섭단체에 등록한 '통합신당추진 의원모임'을 비판했다. 민생모임 의원 대부분이 지난 주말 워크숍에 참석하지 않는 등 선도탈당파와 집단탈당파 간 차별화에 신경을 쓰며 주도권을 잡으려는 세대결도 벌어졌다. 열린당에 남은 사람들이나 민생모임, 통합신당 모임 각각 정치적 홀로서기를 위한 상호비난전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감정적인 대응은 서로 자제하자던 열린당 잔류파의 비판 수위도 높아졌다. 12일 비상대책위원회 마지막 회의에선 탈당파에 대한 비난의 봇물이 터졌다. 장영달 원내대표는 "탈당한 사람들이 왜 자꾸 친정을 괴롭히느냐"면서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당을) 나가느냐, 국민 보기 부끄럽다"고 했다. 문희상 전 의장도 이 회의에서 "(탈당파는) 분열의 대가를 혹독히 치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탈당세력, 분열세력은 끊임없이 제 발등을 찍는다. 동료애는 어디 가고 배신만 남았는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주일 전까지 몸 담았던 열린당과 참여정부에 온갖 독설을 퍼붓고 있는데, 품위를 잃지 말라"고 말했다. 앞서 김근태 의장은 "탈당파는 심판 받을 것이다. 당론으로 추진하던 일마저 손바닥 뒤집듯 뒤집은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탈당 그룹들이 노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선 것에 열린당도 곤혹스러운 반응이다. 끝까지 노 대통령과 함께 가겠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 의장으로 추대될 정세균 의원은 12일 "(전대 이후 추진하는 신당이) 노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말해 선을 그었다. 민병두·문병호 의원은 8일 노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정 의원은 탈당파와 열린당이 다시 만날 가능성에 대해 12일 "내 경험상 헤어지긴 쉬워도 다시 만나는 건 쉽지 않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이날 CBS라디오 프로그램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해 "헤어지는 일보다 만나는 건 훨씬 어렵다"면서 "민주당과 분당한 뒤 총선거를 치르고, 당내에서 민주당과 다시 결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아직까지도 별 진전이 없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끝까지 탈당을 만류하고 함꼐 하도록 요청하고, 삼고초려를 했던 것도 '갈 이유가 없는데 왜 탈당을 해야 하느냐'는 내 개인적인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