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이 '집토끼'와 '산토끼'를 놓고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소 자체 여론조사 결과 중도층이 넓어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중도층 선점 방법론'을 두고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당 참정치운동본부(본부장 권영세 유석춘)가 31일 주최한 ‘한나라당 정체성과 대선전략’ 세미나에서는 보수 선명성을 강화해 확실하게 잡아 놓은 집토끼로 산토끼까지 유인해야 한다는 의견과 개혁과 변화를 통한 중도강화로 산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특히 특정 의원을 지목해 이념 성향이 ‘친북·좌파’에 가깝다며 ‘열린우리당 2중대’에 비유, 탈당까지 요구하는 등 ‘산토끼 사냥방법’을 둘러싼 정체성 논란은 당내 보-혁 갈등으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였다. 


    "한나라당 보수층 잃으면 궤멸한다" '보수선명성 강화'

    운동본부장인 유석춘 교수(연세대 사회학과)는 “중도를 잡아야 된다는 것엔 100% 동의하지만 방법은 다르다. 여론 전체를 오른쪽으로 끌고 가는 것이 좋다”며 ‘보수 선명성 강화’를 주장했다. 그는 “고건 전 국무총리의 중도하차로 주인이 없는 호남에서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좌클릭을 할 필요가 없다”며 “좌파가 실패했을 땐 오른쪽으로 끌고 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내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군대처럼 획일적이어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임계치는 있어야 한다”며 “당의 이념에 반대하는 인물이 한나라당 이름으로 대통령후보 경선 장을 당 정체성 훼손 선전의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내버려둬선 안된다”고 주장한 뒤 ‘단골 소신파’ 고진화 의원을 “열린우리당 2중대”로 지목, 탈당을 촉구했다.

    중앙대 이상돈 교수는 “정당은 이념과 정책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만든 정치적 결사체로 정당색이 있어야 한다”며 “한나라당은 ‘보수층’을 잃어버리면 궤멸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보수층 표는 당연히 자기들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나라당 대권후보들은 ‘중도’를 유혹하기 위한 달콤한 말은 해도 ‘보수’를 옹호하는 발언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며 “언제까지 보수층이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보기 어렵다. 보수 유권자들은 ‘보수 정체성’을 상실한 한나라당을 버릴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정체성 강하게 물으면 당 경직, 미래지향적 실용주의 보여줘야"

    반면, 박형준 의원은 “자기 색깔을 뚜렷이 해 중도에 있는 사람을 쫓아오게 하는 것”을 ‘갈라치기 전략’이라고 정리하며 “폐쇄성만 만천하에 드러낼 뿐이며 자신이 귀퉁이로 몰릴 위험을 안는 것”이라고 ‘보수 선명성 강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 중도층은 30, 40대와 화이트칼라, 자영업자, 수도권과 충청에 몰려있다”며 “이들의 지지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나는 보수주의자’라는 것을 반복해서 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 실용주의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거기에 맞는 비전과 이슈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아우르기 전략’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계급·이념정당이 희석화 된 지금 국민정당 모델을 강화하기 위해서 그 외연은 넓어질 수밖에 없다. 정체성을 강하게 물으면 물을수록 당은 경직된다”며 “우리 편 청중의 목소리에 묻혀 국민의 목소리가 그것이 다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를 패배의 문으로 이끌게 하는 유혹”이라고 말했다.

    국민대 김형준 교수는 “지금 상황은 절대 한나라당에 유리하지 않다”며 “지금 한국은 보수 강화가 아니라 중도강화다. 한국 중도층의 핵심적 특성은 정책 방향성이 진보라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집토끼’로 대선에 두 번 실패한 정당이 보수 가치를 강화한다고 해서 얼마나 더 많은 표를 얻겠느냐”며 “한나라당의 보수 가치를 냉철한 자기반성을 토대로 강화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중도층은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와 김 교수는 발제 및 토론 시간이 끝난 뒤에도 서로 질문을 주고 받으며 설전을 벌이는 등 각자의 입장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손학규 여권 대선후보 1위 야당 분열 증거'

    김형준 교수(국민대 정치대학원)는 31일 “여당의 분열 가속화가 야당 후보단일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며 그 예로 ‘고건 불출마’ 이후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여권 대선후보 1위를 차지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들었다.

    김 교수는 이날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 주최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정체성과 대선전략’ 세미나에서 “고건 전 국무총리의 대권 불참 선언으로 여당의 유력 대권후보가 사라진 상황에서 여당의 분열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유력 대권후보가 없는 여당 분열이 심화될수록 그에 비례해 야당의 분열이 시작될 수 있다”며 “벌써부터 여론조사에서 차기 여권의 적합한 대권후보로 손 전 지사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제치고 수위를 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특정 대권후보들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특정 지역 출신으로 몰려 있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자신의 재선에 훨씬 관심이 많기 때문에 야권발(發)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들이 충분히 잠재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 대선승리의 필수조건인 ‘후보단일화’를 위해 당내 대선후보들의 조기 경선 참여 선언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선 승복을 다짐하는 것은 효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진솔 되지도 못하다”며 “일단 경선에 참여하면 누구나 경선 결과에 승복하도록 법제화돼 있기 때문에 경선승복이 아닌 경선 참여 선언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