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란에 성균관대 정외과 김태효 교수(국제장치학 전공)가 쓴 <'한국은 북핵 해결 훼방꾼' 낙인 찍힐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참여정부가 집권 4년차에 들어 세 번째로 단행한 이번 외교안보라인 교체는 대외정책을 손질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드러난 인선 결과를 볼 때 대통령의 임기 말 외교정책은 이제까지와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신임 국가정보원장, 외교통상부 장관, 통일부 장관 내정자의 공통점은 그간 청와대의 의중을 가장 빨리 읽어 내고 가장 단호하게 대통령을 엄호해 온 친위세력이라는 점이다.

    관료의 덕목은 경험과 전문성에서 비롯되며 그들은 이러한 자산을 활용해 최고통치자의 올바른 판단을 유도해야 한다. 국제정세에 대한 판단력과 인재를 보는 눈을 겸비한 지도자를 만날 때 전문 관료는 가장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다. 반대로 대통령이 국가의 중차대한 사안마다 위험한 선택에 경도될 경우 관료들은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소신을 굽히지 않아 요직에서 멀어지는 사람, 소신을 잠시 보류하고 ‘소나기’가 물러갈 때를 기다리는 사람, 소신을 아예 팽개치고 출세에 승부를 거는 사람으로 나뉜다.

    새 외교안보라인에 대한 우려

    신념에서 비롯됐든, 가식에서 연유하든 결국 요직은 임명권자의 생각과 궤를 같이하는 인물이 차지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외교는 건국 이후 유례가 없는 격변과 선택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데 새로 들어설 외교안보라인과 청와대가 한국 외교의 입지를 더욱 축소시킨다는 염려가 앞선다. 현 상황에서 한국이 당면한 외교과제는 국제사회의 대세를 따르면서 눈앞의 안보 위기를 타개하는 효과적인 처방을 찾는 일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고 예상되는 정부의 외교는 정반대의 경로다.

    핵무기와 테러리즘의 확산을 막고 인권 외교를 펴고자 하는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열에 동참한다고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북한 정권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지배받는 한국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보다는 대북 포용의 특수성을 앞세운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 2003년 6월 공식 발족된 이래 3년 이상을 버티다 결국 마지못해서,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가담하는 모양새는 한국 외교의 명분과 발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다.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 문제는 꺼내지도 못하면서 반체제 전력(前歷)이 있는 사람을 민주 인권의 수호자로 표창하는 행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시사한다.

    북한이 코앞에서 핵실험을 해도 전혀 동요하지 않은 한국인의 태연함에 놀랐던 국제사회는, 남한으로 날아오지도 않을 북한의 핵 위협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는 한국 대통령의 역설에 말문을 닫고 말았다. 북한이 핵을 미국이나 일본에 쏘겠는가. 김정일 정권이 만에 하나 자멸을 각오하고 핵을 쓴다면 목표는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안전을 인질로 잡아 가둔 현재의 상황 자체가 정상적인 남북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계속 돕겠다는 정책은 팔다리를 차례로 잘라 주고 나중에는 몸통마저 갖다 바치려는 격이다. 미국과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여 회담장으로 나오겠다는 약속을 겨우 받아 놓기가 무섭게 통일부는 북한에 무엇을 어떻게 줄 수 있을지 골몰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단에 의해 해결될 공산보다는 김정일 정권의 몰락과 함께 자연적으로 해소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현재의 북한 지도부를 연명시키는 방향으로 대북 지원을 계속할 경우, 한국은 북핵 해결의 방해꾼으로 낙인찍혀 대미 대일 관계가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악화될 수 있다. 북한 내부에 이상기류가 발생하거나 남북 분단 상황에 새로운 변화가 발생할 때 우리의 안보와 통일을 도울 우방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북 지도부 연명시키는 포용정책

    이제껏 포용정책을 무분별하게 펴서 북핵 위기를 악화시켰다면 앞으로라도 분별 있는 포용을 다짐해 대북 외교력과 국민의 지지를 동시에 회복할 기회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번에 쉬운 길을 마다하고 가지 말아야 할 길을 택했다. 새로 들어설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한국 외교의 불안한 외줄타기가 오래도록 지속될 것임을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