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핵실험으로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계승한 햇볕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이 입증됐으며 이 모든 책임은 김 전 대통령에게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는 19일 동북포럼(이사장 정재철)이 서울 세종문회회관 세종홀에서 주최한 조찬 강연에 참석해 이같이 주장하면서 북한의 핵 실험으로 동북아에서 핵군비 경쟁이 가속화된다면 대한민국도 핵무기 개발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평소 ‘대한민국의 핵보유’를 반대해오던 평소 그의 주장과 상반되는 것이다.

    지난 2002년 대선 패배 이후 정계를 은퇴했던 이 전 총재는 우선 자신의 최근 행보를 두고 ‘정계 복귀를 염두에 둔 움직임이 아니냐’는 항간의 지적을 의식한 듯 “나는 한나라당의 대권주자로 정견발표를 하러 나온 것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감색 양복에 연둣빛 넥타이 차림으로 강단에 오른 이 전 총재는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과제는 동맹과 개방”이라고 전제한 뒤 “대한민국이 생존하는 길은 신뢰할 수 있는 주동맹국을 갖고 주변국과의 우호협력관계를 능숙하게 관리 유지할 수 있는 외교력과 협상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역사의 전환기에 와 있다”며 “경제상황의 지속적인 악화 조짐과 더불어 한미 동맹 관계도 나빠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핵실험까지 단행함으로써 한반도는 소용돌이 가운데에 놓였으며 이를 둘러싼 동북아의 정세는 극도의 긴장상황에 빠졌다.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의 신세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전 총재의 비난의 화살은 지난 4월 13일 극동포럼이 같은 장소에서 주최한 강연에서 그가 ‘제1기 좌파정권’이라고 주장한 DJ 정권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북한의 핵실험은 김 전 대통령이 추진하고 노 대통령이 계승한 햇볕정책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실증하는 것이며 좌파정권의 대북정책이 파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어처구니 없는 변명이자 해괴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라며 “북핵 위기의 책임은 김정일에게 돈을 갖다 준 김 전 대통령에게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한 “노 정권은 햇볕정책을 계승하면서 북의 핵보유선언 후에도 북핵개발을 묵인한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며 “북한을 도와줘서 남북관계가 원활해 진 측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전쟁위협이 더 커져 긴장상태가 악화됐다면 햇볕정책은 완전하게 실패한 대북정책으로 봐야 한다. 새로운 대북구도를 짜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재는 "이번 북핵 사태는 6·25 이후 우리에게 닥친 제2의 한반도 위기"라고 전제한 뒤, 대처방안에 대해 “모든 국민이 일치 단결해 북측에 핵포기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등 핵개발에 직접 사용될 수 있는 현금이 제공되는 대북 지원과 경제협력을 중단하고,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도 참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유엔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조치에 동참하고 적극 협력함으로써 핵폐기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전 총재는 “현 정부가 대북지원 협력을 지속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고 눈앞에 닥친 재앙을 외면한다면 국민저항권의 발동을 고려해야 하며 시민불복종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재는 또 이번 북핵 실험 사태 이후 진전될 상황을 ▲국제사회 북핵폐기 압박 실효 거두지 못하고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기정사실화 되는 경우 ▲북핵문제 외교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북한의 체제변화나 붕괴 같은 급변사태로 이어지는 경우 ▲철저한 국제공조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여 마침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경우 등 세가지로 나눈 뒤 전개되는 상황에 따라 핵무기 개발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누구보다도 한국의 핵보유를 강하게 반대해 온 사람”이라고 전제한 뒤 “만일 현재의 한미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이양과 연합사해체를 강행하여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일본 등의 핵군비경쟁 조짐이 나타날 경우 차기 정권은 장기적으로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인접한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군림하고 동북아에서 핵군비 경쟁이 가속화되는데 핵우산을 가진 주 동맹국인 미국과의 동맹이 약화된다면 우리 스스로 핵능력을 갖춰 인접 핵국가들을 억제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강연을 마친 후 그는 일부 참석자들이 정계복귀 요구를 하자 “지금도 내 자신이 뭐가 되겠다거나 어떤 자리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나라가 위태로울 때, 나라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내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 논란과 관련해서도 “우리 민주주의가 너무 참여민주주의쪽으로 흘러서 우리가 보존해야 할 기본적 가치와 질서, 좋은 의미의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론이 미국에서도 제기되고 있다”며 “그 비판 대상 중 하나가 오픈프라이머리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나라당의 구도와 맞춰서 말한다면 첨예하기 때문에 말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