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31일자 오피니언면에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전공)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역사적인 한.미 정상회담이 두 주 앞으로 다가왔다. 벌써 여섯 번째인 두 정상의 만남을 굳이 역사적이라고 부른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한.미 군사동맹의 중심 연결 고리 역할을 해 온 전시작전통제권이 새로운 방향으로 조정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조정은 단순한 한.미 양국 간 군사제도의 변경이 아니라 21세기 한국과 미국의 새로운 생존 전략의 역사적 선택이다.

    역사적 선택의 만남을 앞두고 연작처당(燕雀處堂)이라는 답답한 표현이 쉽게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이 새로운 생존 전략 마련을 위해 고민하던 1880년 여름 당시 주일 청국 외교관이었던 황준헌(黃遵憲)이 제2차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한 김홍집에게 조선의 생존 전략이라고 전해 준 '조선책략'에서 조선의 현실을 이 네 자로 축약해 표현하고 있다. 외교관의 표현으로서는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황준헌이 김홍집을 만난 첫날 나눈 필담의 분위기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당면한 세계 대세를 지난 4000년 동안의 천하질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라고 과감하게 지적하면서 옛사람의 약방문으로 오늘의 질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김홍집의 답변은 답답하다. 조선은 전통적 군사력으로 서양의 근대 군사력을 막아 보려는 해방론(海防論)의 노력을 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황준헌의 표현은 현실이 됐다.

    한국 정부는 특히 이번 정상회담이 한.미 관계를 '포괄적이고 역동적이고 호혜적'으로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기대는 말의 성찬에 머물 위험성이 높다. 노무현식 자주동맹론과 부시식 변환동맹론은 전혀 다른 눈으로 21세기의 역사적 현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동맹론은 20세기의 눈으로 21세기를 보고 있다. 세계질서가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바뀌고 있으므로 냉전의 한.미동맹을 탈냉전의 한.미동맹으로 전환시키고 싶어한다. 생존보다도 우선 자주.통일.협력을 위한 동맹으로 재구축하고 싶어한다. 생존을 위한 한.미동맹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부시의 변환동맹론은 전혀 다르게 21세기를 바라다보고 있다. 냉전이 끝나고 탈냉전이 아니라 더 복잡한 전쟁이 시작된 변환의 세기가 찾아 왔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구적으로는 대량살상무기 테러와 폭정과 싸우고 지역적으로는 중국과 같이 이념과 제도를 달리하는 세력들과 주도권 경쟁을 위해 새로운 동맹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협력적 자주의 한국은 미국의 변환동맹 질서에서 더 이상 과거 냉전동맹 질서에서 차지했던 위치를 유지하기 어렵다.

    두 동맹론은 역설적으로 전시작통권 문제 조정에 일단 합의했다. 한국 정부는 남북한 관계 개선과 대미 자주를 위해 전시작통권 '환수'를 원했고, 미국 정부는 보다 효율적인 전략적 유연성을 위해 '이양'에 동의했다. 동상이몽의 합의다. 그러나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 한국은 합의 이후 삼면초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기대하는 남북관계 개선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북한은 한.미동맹의 철폐 없는 전시작통권 환수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장난이라고 꾸짖을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는 자주 대신 종속을 심화시킬 위험성이 높다. 제도화의 수준이 낮아질수록 유사시마다 상대방의 머리를 설득하고 가슴을 움직일 수 있는 높은 정치적 신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국내적으로는 당장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자주'표의 획득보다는 자주국방을 위한 천문학적 경비지출로 인한 '생계'표의 대량 이탈을 겪게 될 것이다. 미국도 한국보다는 형편이 낫지만 동아시아에서 미.일.호주 중심의 전략적 유연성 추구는 한계를 겪게 될 것이다.

    늦지 않았다. 새집마저 다 타버리기 전에 정상회담의 적절한 궤도수정이 필요하다. 회담의 초점을 한국의 변환론과 미국의 변환론이 쌍방의 한반도, 동아시아, 지구공간에서 추진할 권리와 의무에 맞추고 그 각도에서 전시작통권을 단독, 공동으로 행사하는 새로운 복합동맹 구상 검토에 합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