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7․26 재보선의 후폭풍이 서서히 그 기세를 뽐내며서 열린당을 한바탕 휘젓고 있다. 정기국회 이후에 논의하자며 그간 금기시 해왔던 정계개편 논의 발언 등도 봇물 터지듯 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수면 위로 급부상 할 태세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연말까지 이대로 가서는 안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근태 의장 체제의 당 지도부는 이미 뒷전이 돼버린 모습이다.

    열린당 내 영남지역의 대표주자이자, 여권의 예비대선주자로까지 거론되는 김혁규 전 최고위원은 2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7․26 재보선 전패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또 국민의 마음을 열지 못했다”며 “그동안 당 내외에서 거론됐던 대통합론을 비롯한 모든 논의에 대해 어떤 터부나 선입견 없이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범여권통합론’ 등의 정계개편 논의를 지금부터라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기국회 이후 정계개편 문제를 논의하자는 지도부의 입장과 전면 배치되는 발언이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우리 정치와 사회구조 등에서 혁신적 중도 통합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각각의 입장이나 유·불리는 떠나 큰 틀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정치적 낯가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도 했다. 정계개편 논의를 앞당기되, 논의과정에서 일지도 모르는 계파간의 ‘세 다툼’을 최대한 자제하자는 것으로 풀이되는데, 벌써부터 당내 동요는 일기 시작한 모습이다.

    이와 함께 김근태 의장계로 분류되는 문학진 의원도 이날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어제 재보선 결과는 관뚜껑에 못질한 것이다. 정계개편 논의가 앞당겨지지 않겠는가”라면서 사견임을 전제로 “정계개편을 위해 필요하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 조순형 후보가 당선된 것은 노 대통령의 위상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이 반영된 결과”라며 대통령 탈당문제가 앞으로 자연스럽게 공론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범계파적’ 열린당 초선 양형일 민병두 김선미 의원 등 39명도 이날 ‘7․26 재보선 결과에 대한 의원들의 입장’이란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노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의 질책과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며 노 대통령을 향해 불만의 목소리를 표출했다. 이들은 이어 “재보선 결과로 나타난 열린당과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질책을 겸허히 수용한다”면서 “국민과 함께하는 방안에 대해 더 깊은 성찰과 고뇌가 있어야 하다”며 ‘경고’성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일단 재보선 패배에 대한 책임에서 대통령도 비켜설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측면이 강하지만, 이들의 이런 움직임이 향후 노 대통령 탈당 요구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놨다는 점에서는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초선의원들의 이런 움직임이 ‘김근태 체제 흔들기’로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 도래하는 것을 늦추거나 관심을 돌리게 위해 노 대통령을 겨냥하고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감지되고 있다. 실제 이들은 지도부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과 실천전략을 신속히 강구해야 하며, ‘비상체제’답게 결단하고 추진하라”고 요구했지만, 당 일각에서 제기된 지도부 책임론과는 거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민병두 의원은 “지도부에 대한 비판적 촉구차원”이라면서 분명한 선을 그었으며, 양형일 의원은 “지도부 불신, 책임론 문제의 연장 등은 분명히 아니다”고 했다. 지도부에 더 잘하라고 보내는 촉구성 메시지라는 것이다.

    이들은 또 재보선 결과를 계기로 정계개편 논의가 앞당겨지거나 크게 활성화 될 것이라는 분석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대선을 앞두고 예상되는 정계개편 논의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역사와 정치발전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 비난과 함께 김 의장 체제에 대한 책임 문제까지 거론될 경우 당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우려감이 우선 작용한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어찌됐건 7․26 재보선의 후폭풍이 열린당을 한바탕 휘젓고 있는 모습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데…”라며 열린당 상황에 우려의 시각을 내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