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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 재보선의 뚜껑이 열린 직후,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제는 노 대통령과 결별을 준비해야 할 때’라는 말이 당 안팎에서 표출되고 있는 것.
노 대통령 탄핵 주역인 민주당 조순형 후보의 서울 성북을 당선이 열린당에 즉각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지만, 민주당 내지는 범여권의 통합 필요성을 강조하는 당내 일부 세력들은 향후 정치권의 역학관계 변화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노 대통령과 열린당과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는 ‘노 대통령이 탈당하지 않으면 탈당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강경한 분위기로도 비쳐지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노 대통령과 열린당의 결별에 대한 정치적 분위기가 무르익고 명분에서도 충분한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판단이 우선 작용한 듯한 모습이다. 이들은 노 대통령과 열린당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해진 직접적인 원인으로 최근 노 대통령의 이종석 통일부 장관 두둔 발언과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후임 인선 문제에 대한 향후 결과를 주시하고 있는 형국이다. 7․26 선거 결과가 이들 문제와 맞물리면서 당내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과 열린당의 결별을 조심스레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이런 조짐은 이미 재보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단지 '재보선 패배'라는 구실을 얻으려는 기다림이었던 것으로 보일 정도다. 26일 오전 열린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는 ‘대미 비판’ 발언으로 논란을 야기한 이 장관과, 이 장관을 두둔하고 나선 노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참석자들의 적지 않은 불만이 쏟아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점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전날까지만 해도 “난감하다”며 ‘할 말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던 일부 당 비대위원들이 하루 만에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고 나선 셈인데, 김근태 의장에게 ‘이런 당 분위기를 청와대에 전달해 달라’는 말까지 나왔다는 후문이다.
당장 7․26 재보선 결과와 이를 매치시켜 노 대통령과의 관계 재정립은 지금이 적기라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셈인데, 이는 무엇보다 조순형 후보 당선으로 당내 ‘반노(反盧)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과도 맞물리면서 힘이 실리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2004년 노 대통령 탄핵 주역인 조 후보의 재기가 곧 탄핵 정당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공산이 크기 때문에 정치권의 역학관계 변화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당내 '반노세력'이 그간의 불만을 노 대통령 탈당 요구로 나타내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의 후임 인선 문제도 노 대통령과 열린당의 관계 지속 여부를 결정할 주요한 사안으로 비쳐지고 있다. 천 장관 후임으로 거론되는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당내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후임 인선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문 전 수석을 기용하는 것으로 생각을 굳힌 게 아니냐는 말들도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과, 시기적으로도 문 전 수석의 입각이 이번이 아니면 여의치 않다는 상황 등을 감안할 때 문 전 수석의 기용 강행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또 재보선 결과에 따른 당내 분위기를 의식한 노 대통령이 미리 당내 ‘친노 직계 그룹’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구상을 실현하려고 문 전 수석 카드를 통해 ‘반노세력’ 자극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럴 경우 ‘김병준 교육부총리 카드’에 대한 비판적 국민 여론에 더해 이종석 통일부 장관 등에 대한 반발기류가 당내에서 확산되면서, 9월 정기국회 이전이라도 노 대통령과 열린당 관계가 급속히 '정리'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