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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간 치열했던 한나라당의 7·11 당권 혈전이 강재섭 후보의 최종 승리로 막을 내렸다.
박근혜-이명박 두 유력 차기 대선후보간의 대리전에 뜬금없는 '좌파 축출'이라는 이념논쟁까지 더하며 대표 경선은 초반부터 인신공격에 색깔론 등 구태정치가 고스란히 연출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나타냈다.
'대선승리 위한 강한 대표'(이재오 후보), '안정 속 변화, 통합형 대표'(강재섭 후보)라는 유력 후보들의 캐치프레이즈는 수면 아래로 묻혔고 강 후보의 승리 역시 '당이 개혁보다 안정 속의 변화에 무게에 뒀다'고 평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 때문에 강 후보의 승리를 '보수 대 개혁'이란 이념의 충돌 측면에서 바라보기 보다 박근혜-이명박 두 대선후보간 힘겨루기에서 찾는 것이 이번 전당대회 결과의 올바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강 후보가 승리한 가장 큰이유는 막판 '박심(朴心)'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읽힌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이재오 후보 지원설이 경선 초반부터 급격히 확산되면서 경선 마지막 범박근혜 진영의 결집을 촉발시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언론노출을 자제하던 박 전 대표는 측근들의 잇따른 이 전 시장 경선개입 보고를 받고 "이런 식으로 해서 이 후보가 대표가 되면 당이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격한 반응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는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행정도시법 등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고 최측근으로 불리는 유승민 의원은 전했다.
특히 박 전 대표는 일부 지역 당원협의회장들에게 직접 전화까지 거는 적극성을 보였다.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터진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과 행동은 이 후보에 대한 반대의사인 동시에 강 후보에 대한 지원으로 대의원들에게 전달됐다. 결국 박 전 대표의 발언으로 범박근혜 진영의 결집이 이뤄졌고 이는 곧 강 후보의 표흡수로 이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대표최고위원으로 당선된 강 후보도 역시 "정치는 현실이라 나중에 (대리전으로)변질이 된 것 같다"며 박심이 작용했다는 분석을 인정했다.'더욱 견고해진 박근혜의 당 장악력'
'강재섭-이재오 인신공격 등 난타전으로 전대 후유증 심각할 듯'강 후보가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되면서 5·31 이후 급속히 커진 박 전 대표의 당 장악력은 한층 더 견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 전 대표가 27개월간 당을 운영하면서 상당 부분 당 지분을 확보한 상황에서 '포스트 박근혜' 체제 역시 범박근혜 진영이 장악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박 전 대표의 힘은 더 세졌다는 것이 당내 일반적인 평가다.
강재섭-강창희-전여옥 등 선출된 지도부 중 3명이 친박근혜 성향 인사로 분류되고 있고 대표최고위원 몫으로 2명의 최고위원을 지명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 구성된 지도부를 '포스트 박근혜 체제'로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전당대회 후유증'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다. 강 후보가 박근혜-이명박 두 대권후보의 대리전을 통해 대표로 당선됐으므로 향후 당 운영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당대회 후유증'은 박-이의 대리전과 상대후보에 대한 인신공격 등으로 전당대회 전부터 예고된 것으로 상당 기간동안 친박-친이 세력간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2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된 이재오 후보는 당선사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한나라당이 새로 태어나지 못하고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고 특정후보의 대리가 돼 당을 쪼개려 한다면 온 몸으로 막을 것이고 이 당의 부패세력과 싸워 새로운 당을 건설하겠다"고 소리쳤다. 강재섭 후보 측에서 이번 경선을 대리전으로 몰고갔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이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다. 다른 후보들이 경선 직후 기자실을 찾아 기자회견을 했지만 이 후보는 기자실도 찾지 않았다.
권영세 부진한 성적으로 탈락하며 소장파도 동반몰락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가장 큰 정치적 타격을 입은 그룹은 남경필·원희룡·정병국·박형준 등 당내 소장그룹이다. 이들이 대표주자로 내세운 권영세 후보는 6위란 저조한 성적으로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중도·소장파 경선을 통해 권영세 후보가 단일후보로 선출될 때만 해도 3위권은 무난할 것으로 내다봤던 '미래모임'은 예상보다 큰 권 후보의 부진으로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게됐다. 미래모임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모임결성 시작부터 지적받아온 '결속력 부재'와 '권 후보의 낮은 인지도'에다 북한 미사일 발사로 인한 보수층의 결속 등이 꼽힌다.
또 권 후보의 연설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6번의 합동연설회 4번의 TV토론, 그리고 이날 정견발표까지 권 후보는 당 내부 비판에 주력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이날 연설에서도 권 후보는 당의 미래와 비전을 언급하기 보다 기존 후보 비난과 '지금 이대로는 정권을 창출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목소리를 많이 냈다. 이런 연설이 오히려 대의원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으로 커진 당내 입지를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확실히 다지겠다는 소장파의 계획은 상당한 차질을 빚게됐다. 때문에 앞으로 상당부분 이들의 운신폭은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원들 다수가 '당의 변화 필요성'엔 동의하지만 소장파가 주장하는 개혁이 아직은 당원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확인됐다는 것이 당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는 당내 비판에 목소리를 키워온 만큼 소장파가 대안제시에 부족했기 때문으로 읽힌다.
또 소장파의 '모래알 속성' 역시 실패의 큰 이유로 볼 수 있다. 남경필 원희룡 등을 중심으로 목소리를 키우고 있지만 소장파간의 경쟁심리와 견제가 만만치 않고 그동안 소장파 스스로가 당에 큰 역할과 기여를 통해 입지를 키워왔다기 보다 선배들에 '업혀가는 정치' 혹은 정치상황에 따라 '시류에 편승하는 정치'를 해 온 이들의 속성상 자신들이 내놓은 독자후보를 내더라도 '자기 일처럼 열심히 뛰겠느냐'는 의구심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당 사정에 밝은 한 당직자는 "오세훈 효과를 본 소장파가 너무 서두른 느낌"이라며 "한 템포 쉬면서 당내 입지를 키워갔어야 했는데 너무 서둘렀고 당내에서도 이들의 급격한 성장에 견제를 해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