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박근혜가 되려면 5·31 압승 이후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마음을 사로잡아라'

    '포스트 박근혜'를 노리는 한나라당 당권 도전자들이 경쟁적으로 박 전 대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친박 성향 후보들 뿐 아니라 박 전 대표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후보들 역시 27개월 간 당을 이끌어 온 '박근혜 리더십'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컨텐츠가 부족하다"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등 그동안 박 전 대표에게 쏟아졌던 비판적 평가는 들을 수 없다. 물론 당원들의 표심을 흡수해야 하는 후보의 처지에서는 5·31 지방선거 압승 이후 당내 영향력이 급격히 커진 박 전 대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대선주자들의 공정한 경선관리'가 핵심이슈로 떠오른 만큼 차기 대선주자인 박 전 대표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사실상 경선포기나 다름없다.

    그러나 너나 할 것 없이 전 후보가 박 전 대표를 경쟁적으로 칭송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 듣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까지 나타난다. 반박 이미지가 덧씌워진 한 후보는 과거 박 전 대표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던 자신의 발언을 언론탓으로 돌리는가 하면 박 전 대표와 지도부에서 손발을 맞출 당시 대립각을 세우던 후보는 박 전 대표와 호흡을 잘 맞춰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앞으로의 대선후보 경선 과정을 불공정하게 관리할 것이라는 공격을 가장 심하게 받고 있는 이재오 후보는 연일 자신에게 덧씌워진 반박 이미지와 '이명박계'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경쟁자들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는 이 후보의 주장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유신반대를 주장하다 박정희 정권에서만 3번 구속되고 15대 국회 때 등원한 이래 박 전 대표와 밥은 커녕 차 한잔 따로 마신 적 없던 이 후보가 박 전 대표와 6개월간 큰 충돌없이 손발을 맞췄다고 해도 기존에 이 후보가 박 전 대표에 갖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이 쉽게 변화진 않았을 것이란 의혹이다.

    특히 이 후보가 박 전 대표에 대해 "독재자의 딸"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고 2004년 8월 의원연찬회에선 박 대표를 향해 '박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탈당 하겠다'는 발언을 해 당시 임시대표로 있던 박 대표에게 "내가 대표가 되면 탈당하겠다고 해 놓고선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한 말을 지키고 나서 남을 비판해라"는 비난의 화살을 받기도 한 '이력'은 경선 과정 내내 경쟁 후보들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권영세 후보는 지난 3일 열린 첫 TV토론에서 이재오 후보에게 "2004년 3월엔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독재자의 딸이 당 대표가 되면 망한다'했고 '박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탈당을 하겠다'는 얘기도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뀐 것이냐"고 따졌다.

    이 같은 추궁이 4일 열린 TV토론에서도 이어지자 이 후보는 "인신공격 내지 모욕적 발언"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여과없이 드러냈고 '독재자의 딸' 발언에 대해서는 "당시 한 스포츠 신문과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 신문에서)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와 경제발전에 역점을 두는 사람은 박 대표를 훌륭한 지도자의 딸이라 할 것이고 유신을 기억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유신의 딸'이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답한 것인데 그 신문이 앞뒤 자르고 기사를 썼다"며 자신의 발언이 와전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박 대표와 6개월 간 일하면서 박 대표의 애국심에 감동했다"며 치켜세웠다. 이 후보는 당권도전을 위해 원내대표직을 마무리 할 당시에도 "6개월 동안 진심으로 당 대표(박 대표)를 위하는 게 당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철학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강재섭 후보 역시 자신의 원내대표 시절 박 전 대표와 1년여동안 원활하게 호흡을 맞춰온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강 후보는 4일 잠실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지난해 나는 박 대표와 1년 간 일하면서 취임하자 마자 10여일 만에 봉숭아 학당이라 불리던 한나라당을 정책정당으로 만들어 지지율 40%로 올려놨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강한 야당'을 주장하며 민주화 투쟁 경험을 장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이재오 후보를 겨냥해 "시대에 맞는 투쟁이 중요하다. 겉으로는 유연하지만 신념이 있어야 투쟁을 한다"고 역설한 뒤 "박 대표가 작년에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투쟁을 할 때 그 결연한 의지를 봤다. 박 대표가 한겨울에 거리를 누볐지만 과거에는 교도소 간 적 없고 길거리에서 투쟁을 한 적도 없다. 그러나 신념이 있었기에 그런 사람들보다 더 결연하게 투쟁했다"며 박 전 대표를 한껏 치켜세웠다.

    그러나 강 후보는 원내대표 재직시 박 전 대표가 사학법 장외투쟁이란 초강수를 선택하려 하자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결국 강 후보는 장외투쟁이 진행되는 도중 원내대표직에서 중도하차 했고 원내대표 사퇴 기자간담회를 통해 사학법 장외투쟁에 '정치적 사활'을 건 박 전 대표를 '정치를 보는 시야가 좁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규택 후보는 노골적으로 자신이 박 전 대표의 측근임을 내세우고 있다. 이 후보는 4일 합동연설회에서 "지난 2년 동안 최고위원으로 당이 어려울 때 특히 박 대표가 어려울 때 지켜주고 국가정체성을 지켰다"며 자신이 박 전 대표의 측근임을 강조한 뒤 "노무현 정권이 보안법을 폐지하려 할 때 박 대표와 함께 중심에 서서 싸웠다"고 주장했다. 또 "국회에서 사학법이 날치기 됐을 땐 엄동설한에 콧물을 흘리며 박 대표를 모시고 장작 57일간 노 정권과 맞서 싸웠다"며 이재오 후보에게 "내가 박 대표를 모시고 전국을 다닐 때 어디 있었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정형근 후보도 "과거 정치사를 돌이켜 보면 강경한 투쟁을 해야 박수를 받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시대정신이 변하면서 투쟁 방법도 변했다"며 "박 대표가 '상생의 정치'를 해야겠다고 해서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사학법과 같이 투쟁해야 할 때는 밖에서 투쟁을 했다. 그런 투쟁을 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정 후보는 "백주대낮에 박 대표에게 칼을 들이댄 살인미수자의 배후를 밝혀내지도 못했는데 우리 지도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고 지도부를 비판한 뒤 "박 대표도 나를 참 훌륭한 국회의원이라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