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신지호 홍진표, 당신들 정체가 뭐야. 이제보니 우파의 가면을 쓴 위장 좌파?” 좌파·친북·반미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장면이 아니다. 5·31 이후 보수·우파 운동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상 논쟁이다. 신지호와 홍진표가 누구긴 누구인가. 신지호와 홍진표 등 80년대 주사파 세례를 받았다가 전향한 이른바 ‘시대정신 세대’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기치를 다시금 높이 올리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청년시대의 불행한 선택을 용서받을 권리가 있다. 손학규나 김문수가 위장 취업자인가.

    노무현 정권과 그 추종세력의 광포(狂暴)한 일탈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던 보수·우파 세력이 과연 이들의 출현이 없었다면 이처럼 강고한 저항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것인가. 우파의 종가(宗家)임을 자임하는 ‘뉴라이트 세대’가 더 이상 그들의 사상을 문제삼는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우파 탈레반’은 ‘좌파 탈레반’만큼 유해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대정신 세대’는 ‘뉴라이트 세대’를 수구로 몰아가는 ‘싸가지 없는 좌파’ 흉내를 내지 말아야 한다.

    5·31 이후 이런 사상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본질적인 배경과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춥고 배고플 땐 뭉치며 격려하다가 고작 지방선거 하나 이기자 마치 집권이나 한 것 것처럼 샴페인을 터뜨리며 논공행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5·31 이후 ‘뉴라이트 세대’ ‘시대정신 세대’ ‘선진화 세력’ 등 어떤 우파 운동의 산맥들로부터도 우파 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보고서 한 장 나오지 않고 있다.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이대로만 간다면 집권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에서 한두번 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고 한 언급에 숨어 있는 무서운 재기 의지를 그냥 오만한 소리 정도로 흘려 넘기고 있다. 그러나 노 정권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조직적 기반은 절대 우파의 집권을 5·31처럼 허망하게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그들의 생존이 달려 있는 ‘전쟁’이기 때문에.

    우파 운동권은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노 정권에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있는 친노 세력의 거대한 저항과 조작에 맞설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고 있는가. 방송권력을 견뎌낼 홍보 수단은? 수구 좌파들이 펼칠 ‘민주평화개혁’의 광풍에 국민이 부화뇌동하지 않도록 할 수 있겠는가. 김정일 정권의 ‘반한나라당 대연합’에는 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대한민국 안팎에서 입체적으로 펼쳐질 한나라당의 집권 저지 움직임에 한나라당이 독자적 노력과 조직으로 맞붙을 수 있는가.

    무슨 무슨 연대의 직책을 새긴 명함을 들고 다니는 ‘명함용 운동권’, 성명서 한 장 내거나 세미나 하면서 언론에 이름 실리게하는 ‘우파 상업주의’, 툭하면 사상 논쟁이나 벌이는 ‘우파 교조주의’로 정권을 잡을 수 있는가. 신지호 홍진표부터 반성해야 한다. 노 정권 세력이 순순히 정권을 넘겨 줄 리도 없다.

    ‘명망가 운동권’이 먼저 반성을 시작해야 한다. 우파 운동권 지도자들부터 먹물 근성, 엘리트 주의를 버리고 ‘국민 속으로’ 파고 들어야 할 것이다. 이젠 우파 운동권의 골격이 마련되어 있는 만큼 추상적인 구호보다는 국민이 피부로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안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한다. 왜 우파엔 함석헌, 계훈제 같은 정신적 지도자가 없는가. 젊은 층이 우파의 정신적 지도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이승만 박정희라고 답변할 것인가.

    이젠 무욕(無慾)의 우파 지도자 몇몇 정도는 탄생해야 할 상황이다. 우파 정권이 들어선다해도 절대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오직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내고 성숙하게 만드는 데 헌신하는 ‘우파 어른’이 나와야 한다. 그런 우파 지도자가 40~50대 자유주의자들을 육성하고, 이들이 20∼30대와 교감하며 한 힘이 될 때 대한민국에서 사이비·수구 좌파는 영원히 고사된다. 그렇지 않고 한국의 우파 운동권이 얼치기 좌파를 흉내내 정치권 진입을 위한 징검다리, 과거의 명성을 확인하고 싶은 명망가들의 집합소, 또 다른 생계 수단을 찾는 직업 소개소 정도로 변질된다면 결국 ‘만년 불임 운동권’이 될 수밖에 없다. 바로 그 기로에 서 있다.[윤창중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