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이 후속 지도체제 구성을 놓고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위기의 핵심은 김근태 최고위원의 비상대책위원회 참여 여부인데, 이를 놓고 당내 각 계파가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혁규 조배숙 두 최고위원의 지도부 사퇴로 김근태 최고위원의 의장직 승계에 대해 재론의 여지가 없는 만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야 한다는 것이 당내 대체적인 기류지만, 비대위 구성 문제를 놓고서는 계파간에 한치 양보없는 정치적 계산이 맞물린 분위기다.

    일단 정동영 전 의장계로 분류되는 당내 인사들 사이에서는 위기에 빠진 당의 뒷수습을 원로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대위 구성에 지방선거참패의 책임이 있는 현 지도부의 구성원이 포함될 수는 없다는 것. 즉, 김근태 최고위원을 비대위 구성에서 배제하겠다는 분위기다. 지방선거 참패에 책임이 있는 김 최고위원이 위기 수습을 위해 꾸려지는 비대위에 남아있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김 최고위원이 정 의장 사퇴 직후, 당의장직 승계 문제를 놓고 미적지근한 자세를 보이면서 당 위기 수습에 대한 진정성에 의문을 자초해 상황을 이렇게까지 몰고왔다는 점도 김 최고위원을 비대위에서 배제하려는 분위기에 한 몫했다는 당 안팎의 설명이다. 5일 정 전 의장과 가까운 한 의원이 "김 최고위원이 의장직을 승계하거나, 비대위원장이 되겠다는 것은 뒷북"이라며 "김 최고위원이 정 전 의장의 의장직 승계 권유를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아 당의 혼란이 더욱 가중된 상황이기 때문에 이젠 당의 원로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는 연합뉴스의 보도는 현재의 당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정 전 의장계 의원들의 상황인식에 대해 김 최고위원이 수장으로 있는 당내 재야파 소속 의원들은 정동영계 의원들을 향해 “얕은 정치 수작을 부리지 말라”면서 발끈하고 있는 모습이다. 수도권 출신의 재야파 소속 한 의원은 이날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비대위 구성에 김 최고위원을 배제하려는 정동영계를 향해 “얕은 정치 수작을 부리지 말라”며 “김 최고위원이 일단은 지도부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7일 결정을 앞두고) 내부 의견을 조율중인 상황에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식으로 선을 긋고 나서서는 안 된다”며 정동영계를 겨냥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 보였다.

    그는 또 김혁규 조배숙 최고위원의 당 지도부 사태에 대해서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뒤통수치듯이 사퇴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이들이 과연 당 위기 수습 의지나 있는지 되묻고 싶다”면서 “밑에서 다 조율하고 사퇴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신뢰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비분강개했다. 김혁규 조배숙 최고위원이 정 전 의장과 가까운 만큼, 김 최고위원의 비대위 구성 배제는 다분히 계파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김 최고위원이 의장직 승계 결정을 미적거린 데 대한 정동영계의 비판에 대해서도 “무너져 가는 당에 누가 당의장을 맡고 싶겠는가. 덥석 의장직을 승계했다면 또 그래도 뭐라 했을 것 아니냐”면서 “문제의 본질은 당 위기 상황을 잘 수습하고 향후 진로를 생각해야 할 때라는 것”이라고 했다. 당의 원로들을 전면에 내세워 김 최고위원을 비대위에서 배제하려는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김근태 비토론’에 불과하다는 불만이다.

    이에 대해 정 전 의장과 가까운 한 의원은 이날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지도부 3명이 사퇴한 상황에서 달리 대안이 없지 않느냐”면서 “김 최고위원의 의장직 승계는 대국민 설득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 비상대책위원회의 새 지도부를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대위에서 특정 인물을 배제할 상황은 아니다. 원론적으로는 국민의 눈 높이에서 당 위기 상황을 수습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김 최고위원을 배제해야 한다는 말을 명시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국민의 눈 높이에서는 김 최고위원을 비대위에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내보인 셈이다. 

    이와 함께 강경·개혁 그룹으로 분류되는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련)’도 비대위를 당의 원로들로 꾸리는 문제에 대해 반발하는 분위기다. 참정련 대표를 맡고 있는 이광철 의원은 이날 오전 KBS 라디오 시사프로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에 출연, "비대위를 구성한다는 자체가 또 다른 혼란으로 국민에게 비쳐질 가능성도 높고 이런 측면에서 김 최고위원이 의장직을 승계해서 지도부가 질서있는 수습을 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비대위는 책임있는 이런 논의를 끌어내고 대안을 마련하는 데 그 역할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비대위의 권한과 내용에 있어서 또 다른 혼란으로 갈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국민들한테도 지도부가 교체되는 등 또다른 당 혼란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김한길 원내대표는 후속 지도체제 확정을 위한 7일의 국회의원·중앙위원 연석회의에 앞서 5일 밤 9시 당 중진들과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이에 앞서 당 중진인 배기선 의원은 이날 오전 SBS 라디오 시사프로 ‘최광기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향후 지도체제 문제와 관련, “원로들의 집단적 체제 하에서 상징성 있는 사람이 리드하고, 구체적인 집행은 또 거기서 적절한 사람이 하는 식으로 가야할 것”이라면서 사실상 당 원로들이 중심이 된 비대위 구성을 언급했다. 배 의원은 “상징적인 분으로서는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나 조세형 문희상 전 의장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