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의 5·31 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책임문제를 둘러싸고 당내 계파간의 내홍이 당·청간 갈등 양상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은 범여권의 위기 타개를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다음 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단 정치권에서는 지방선거 참패의 한 원인으로 노 대통령의 책임론이 열린당 내부에서도 공식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만큼, 노 대통령의 열린당 탈당을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 특히 "선거 한 두 번 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노 대통령 발언이 전해진 직후인 3일 당내에서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느냐’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이제 노 대통령 발언을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는 등의 소속 의원들의 반발이 노골화되고 있는 점을 볼 때도 ‘노 대통령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기류가 강한 분위기다.

    이에 앞서 2일 열린당 원내대표단 회의에서도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적 불만, 부동산 문제, 세금 문제 등과 관련해서 시정하고 개선할 사항이 있다면 민심을 반영해서 시정하고 개선하겠다”고 결론을 내린 점도 노 대통령과 거리를 두겠다는 당 차원의 의지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각종 정책이 민의와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만큼 일부 개선이 필요한데, 기존 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입장에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탈당 카드는 현재 범여권의 위기 타개책 효과면에서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당내 일각의 의견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상황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노 대통령이 탈당한들 어느 누가 열린당과 노 대통령과의 관계가 단절됐다고 생각하겠느냐는 것이다. 이탈된 민심을 바로잡기 위한 효과면에서는 별반 득될 게 없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도 오히려 정계개편 논의를 불러오는 동력으로 작용돼, 임기말 정국 운영의 주도권 상실로 이어져 레임덕을 가속화 시킬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기존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현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의중이 다소라도 읽혀지는 순간, 여권 내부의 차기 대권구도와 맞물려 더욱 격한 당내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이 꺼낼 수 있는 ‘다음 수’로는 임기후반의 국정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주도권 장악 차원에서 내각을 대폭 강화는 ‘친정체제’의 구축 선에서 일단락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의표명으로 개각 요인이 발생한 점이나, 김 전 정책실장의 교육부총리 기용설 등이 나돌고 있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당 복귀를 노 대통령이 종용하고 있다는 말이 당 안팎에서 나돌고 있는 점도 이런 관측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천 장관은 당초 지방선거 직후 당 복귀를 염두에 뒀으나, 당내 사정이 갈등으로 치닫자 12월쯤에 가서야 당 복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 장관의 후임으로는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노 대통령의 ‘복심’으로 평가받고 있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여기자협회와의 간담회에서 선거 직후 노 대통령과 만났는지를 묻는 질문에 사실을 부인하지 않은 점도 여러 해석을 낳게 하고 있다. 선거 이후의 국정운영 등 정치권 전반의 대책에 대한 논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당 핵심 관계자는 “지금의 ‘열린당으로 안 된다’는 노 대통령의 생각이 깔려 있는 만큼 여권 내부에서는 제3후보를 띄워 다자간의 경쟁구도를 만들어 레임덕 차단에 주력하고, 한나라당을 겨냥해서는 한나라당 내 일부 '극우' 성향 인사들을 대화에서 소외시키는 전략을 취하면서 차기 대선을 겨냥한 대결구도를 형성해 나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럴 경우 노 대통령이 지난해 한나라당에 제안했던 ‘대연정’과 같은 또 다른 카드가 나올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개헌론을 통한 대통령중임제 내지는 대통령 결선투표제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귀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