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더 이상 폭력시위를 원하지 않는다”
    “평화적 시위문화 모든 국민이 원하고 있다”
    “시위대만 인권있나 전의경도 인권있다”
    “쇠파이프는 합법이고 진압봉은 불법이냐”


    한겨울의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2006년의 첫 주말인 7일, 전·의경 예비역들과 전·의경을 아들로 둔 부모들은 한파도 잊은 채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 건너편 의주로 공원으로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평화적 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가두행진’이라는 취지로 모인 이번 집회에 참석한 이들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국민이 준 공권력 국민이 지켜줍시다’는 피켓 앞에 선 300여명의 사람들 대부분은 아들을 둔  40, 50대의 부모들이었다. 


    전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개설된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는 김진미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의 시위문화가 변화해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같이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취지를 밝힌 뒤 “이번 일을 계기로 데모 문화가 민주적으로 정착되고 헌법 내에서 자기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며 “인권도 그 안에서 지켜져야 하고 공권력은 국민이 지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또 “전의경 당신들의 뒤에 부모들이 있다”며 ‘우리의 시위문화가 변화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씨의 딸 김재희(22)씨는 “오빠가 1기동대 3중대에 현재 복무 중”이라며 “언론에서 늘 그래왔듯이 농민들 피해 입은 부분만 비춰진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기동대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시위에서 폭력을 행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거론된 적 있느냐”며 “결과만 있지 원인은 없는 보도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양천구에서 왔다는 이병완(50)씨는 "내 자식도 의경에 가 있다"며 “의도와 상관없이 차출된 애들이 80, 90년대 민주화 과정의 시위와 똑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것을 화면을 통해 보면서 부모로서 밤잠을 잘 수 있겠느냐”며 ‘폭력시위 근절’을 호소했다. 이씨는 언론을 향해 “시위대 다치는 것은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한번이라도 전·의경 다치는 데에 심각성을 부여한 적 있느냐”며 “전·의경을 마치 폭력경찰인 것처럼 몰아붙이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씨는 “인권위에서 전경을 해체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고 전·의경들의 인권이 보장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씨의 옆에 있던 한 시민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입대한 20대 초반의 아이들이 폭력을 쓰고 싶어서 쓰느냐”면서 “위에서 시키고 또 안 하면 맞고, 다쳐서 도망가면 나중에 징계당하기 때문에 도망갈 수도 없는데 그들을 폭력경찰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서울 마포구체육회 이사장이자 백두산민족회 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정군자(63)씨는 지난해 12월 은평경찰서 이상원 서장에게 보낸 “농민들의 권리주장도 좋지만 경찰과 전경들의 희생은 왜그리 당연한 건지 묻고 싶은 안타까운 심정”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여주며 “국력낭비 시위에 어린 애들이 완전 이용당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정씨는 “경찰 전경들도 국민의 한사람”이라며 “보다보다 참을 수 없어서 나왔다. 전·의경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서울 중계동에서 왔다는 진모씨(78)는 “농민의 부상만 편파적으로 보도하고 전·의경들은 갈비뼈가 부러져도 전혀 보도가 없다”며 “상대가 흉기를 가지고 폭력을 휘두르는데 이는 막고자 폭력을 쓴 것은 원인제공에 대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진씨는 “법이라는 것은 평등해야 하는데 형평성을 잃었고 공권력이 실추됐다. 우리나라 법치주의가 어디갔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의경아빠’라는 명찰을 달고 시위대에 참여한 한 시민은 ‘마스크’를 쓴 채 그 어떠한 질문에도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시위대를 따라 걸었다. 많은 취재진들이 그에게 몰려와 여러 가지 질문은 했으나 그는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아 사회에 대한 닫힌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곳곳에서 “아들 낳았다고 기뻐하며 미역국 먹은 것이 아들에게 미안하다”, “언론은 애들 고생하는 것은 비쳐주지도 않는다”, “앞으로 시위대도 변화해야 한다”, “자식 군대 보내놓고 시위하긴 처음이다” 등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왔다는 이종의(51)씨는 “‘제발 우리 아들들 살인무기에 다치지 않게 해야한다’는 한마디만 하고 싶다”며 “쇠파이프, 죽창은 흉기이자 살인무기”라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또 “대부분의 전의경들이 제대하면 취업을 할텐데 얼굴에 상처나면 취직도 잘 안 된다”면서 “전의경은 인권도 없느냐”고 성토했다.

    아들이 전·의경으로 복무 중이라는 한모(52)씨는 “전·의경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젊은이들”이라며 “제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무사히 전역할 수 있게 해달라. 전의경 가족이라는 이유로 폭력시위만 보면 잠을 못이룬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광주에서 왔다는 장정환(55)씨는 “집회에 참여한 농민들이 그만큼 다쳤으면 그곳에 있었던 전·의경들도 안 다친 사람이 없으리라 본다”며 “아들이 외박을 나오면 옷부터 벗겨 상처가 났는지 안 났는지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장씨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하고자 입대했는데 왜 맞아야 하느냐. 대한민국에 법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울분을 토했다. 또 장씨에 옆에 있던 한 아주머니는 “내 아들이 맞느니 차라리 내가 맞는 게 낫다. 제발 우리 아들들 때리지 마라, 시위대냐 폭도냐”고 흥분했다.

    이들은 전의경들이 시위를 제재하다가 부상당한 모습 등을 담은 사진을 들고 “불법시위로 우리형제들 죽이지 말라”고 외치며 1.2Km 정도 가두행진을 벌인 끝에 국가인권위원회에 다다랐다. 이들은 평화적인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폴리스라인(Police Line)을 지키자고 주장했다.

    인권위 앞에 모인 이들 앞에 선 전·의경 출신 전우환씨는 “시위집회를 막아본 적은 있어도 시위를 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고 소감을 밝힌 뒤 “엄마들이 모여 폭력시위를 막는 데 동참해줘서 고맙다”며 울먹였다. 전씨는 또 “국방의 의무를 다 하는 전의경의 인권도 생각하고 잘 관찰해 달라”고 당부했다.

    황중배씨는 “우리가 할 일 없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생업까지 제쳐두고 이자리에 온 것은 가슴에 맺힌 게 많아서다”며 “현역 전·의경들에게 선배라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했는데 이번 시위를 통해 작은 선물을 한 것 같아 흐뭇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전의경부모대표 인터넷카페 운영자이자 전·의경 부모대표인 이경화씨는 “이번 시위를 통해 많은 전의경과 부모들이 가슴에 한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며 “우리 아들들 가슴 아픈 것을 알리는 데 앞장서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폭력시위 추방하자”, “전의경 인권생각하자”, “전의경은 폭력경찰 아니고 대한민국의 아들이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해산한 이날 집회는 농민가족이라고 자처한 사람들과의 실갱이로 가두행진이 지연되기도 했으나 대체로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여줘 평화적인 시위로도 충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이에 앞서 전 의경 부모들의 집회소식을 들은 다산인권센터,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운동사랑방,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평화인권연대 등 5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인권단체 경찰대응팀’은 이날 “전 의경 인권침해 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하고 지지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