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 강행처리에 반발, 열흘이 넘도록 장외투쟁 등 모든 국회 의사일정을 보이콧하고 있는 한나라당에서 점차 다른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

    원인은 호남 지역의 폭설피해. 오로지 사학법에 당력을 총동원하기엔 호남의 폭설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것. 당내에서도 점점 내년도 예산안 처리 등 중요한 민생현안 처리를 위해 더 이상 국회를 파행으로 끌고 갈 수 없다는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호남폭설피해는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등원 필요성' 주장에 더욱 탄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한나라당은 22일 서울 염창동 중앙당사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개최, '시행령 카드'를 들고 23일 종교계 지도자 설득에 나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한 맹공을 퍼부었다. 노 대통령과 종교계 지도자의 만찬회동이 향후 진행될 사학법 논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

    이 같은 판단아래 한나라당은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는 모습이다. 이규택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학법 무효투쟁운동본부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직전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23일 오후 인천 시청앞 광장에서 열리는 장외집회를 위한 대책회의를 갖는 등 집회흥행과 반대여론 확산을 이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사학법 비상대책회의 직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와는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박근혜 대표최고위원과 강재섭 원내대표가 '시행령 카드'를 꺼낸 노 대통령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지만 발언내용은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수준.

    결국 당 '투 톱'의 중복된 발언 이후 마이크를 잡은 원희룡 최고위원이 회의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원 최고위원은 호남폭설피해에 대한 당의 시급한 대책 필요성을 촉구했다. 

    원 최고위원은 "호남 지방의 폭설피해가 3주째 계속되고 있어 그 피해가 심각하다"며 "당이 여러 차례 피해지역을 다녀왔지만 피해지역은 지역 기초시설까지 마비되는 등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국민들이 현재 당하고 있는 직접적인 고통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사학법 반대투쟁에 당력을 쏟고 있는 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 그러면서 "지금 당이 장외투쟁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피해대책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의 예비비 지출과 장비투입 등 행정적 지원이 급하지만 당에서도 여러 지자체들이 갖고 있는 피해복구 장비나 인력, 예산 등을 총동원해 호남지역에 대한 지원과 온정이 갈 수 있는 방향을 찾아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당헌을 개정하면서 당내에 상시적인 재해대책특별위원회가 없다보니 혼선이 있다"고 당헌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한 뒤 "재난이 이례적으로 심각한 수준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당에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달라"고 촉구했다.

    원 최고위원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이강두 최고위원도 "원희룡 최고위원이 말했지만 (피해지역을)방문한 결과 온 동네와 시가지가 눈속에 파묻혀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실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최고위원은 "당이 투쟁을 하고 있지만 이런 문제에 관한 한 여야없이 동참을 해 해결해야 한다"며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반영을해 활동을 해달라"고 주장한 뒤 "빨리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이 같은 두 최고위원의 주장을 듣고 있던 박 대표와 강 원내대표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사학법 반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박 대표와, 강경투쟁을 원치 않았지만 박 대표와 보수성향 의원들의 강성에 흡수돼 강공으로 돌아선 강 대표에게 '호남폭설피해'라는 뜻하지 않은 변수등장은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는 모습.

    만일 사학법 반대투쟁에 몰입해 호남의 폭설피해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국민에게 전달될 경우 조금씩 돌아서고 있는 호남 민심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 원, 이 최고위원의 발언 이후 김영선 최고위원과 최연희 사무총장이 다시 사학법의 부당성을 역설하며 초점을 사학법으로 돌리려 했지만 이미 전환된 회의 분위기를 바꾸기엔 역부족한 모습이었고 결국 박 대표는 회의를 비공개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