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트루먼·아이젠하워·닉슨과 당당히 맞섰다···뛰어난 판단력·뚝심으로스탈린·모택동 야심 꺽었다···그래서 '악마화' 당했다공산전체주의 실체와 그 위협에 대한 일관된 경고문읽어보면 요즘 국제정세 논하는 듯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는 필독·정독하라
  • ▲ 미국 워싱턴의 유력 일간지 <이브닝스타> 1953년 8월16일자 7면. 한국 대통령 이승만이 직접 쓴 영문기고를 7면부터 시작해 3개면에 걸쳐 전문 게재했다.ⓒ
    ▲ 미국 워싱턴의 유력 일간지 <이브닝스타> 1953년 8월16일자 7면. 한국 대통령 이승만이 직접 쓴 영문기고를 7면부터 시작해 3개면에 걸쳐 전문 게재했다.ⓒ
    “나는 왜 홀로 섰는가”
    "Why I Stood Alone
    "

    1953년 8월 16일자 미국 수도 워싱턴의 유력지 <이브닝스타> (Evening Star)의 일요판 <선데이스타> (Sunday Star)가 3개면에 게재한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원고의 제목이다.
    그동안 결사반대했던 휴전협정에 서명을 거부한 이승만이 휴전협정 체결(7.27) 3주만에 직접 미국인들에게 [왜 휴전을 반대했는지] 혼자서 저항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설명하고,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의 공산주의에 대한 타협적 정책이 왜 위험한 것인지, 자유의 신념을 설득하는 글을 보낸 것이다.

    그 3년전에도 공산군의 6.25침략 즉시 이승만트루먼 미국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편지를 써 보낸바 있었다.

    “이 전쟁이 3차 대전이 되어서도 안되지만 38선을 국경화했던 소련과 북한이 없앴으니 우리 한국인들은 원래의 국경 압록강과 두만강을 회복할 때까지 싸우기로 결심했다.
    자유와 진리가 궁극적인 승리를 보장하는 전쟁이므로 미국이 한국과 함께 북진통일을 이루도록 끝까지 도와 달라.”  (1950년7월19일자 편지)

    트루먼
    이 내세운 [38선 원상회복]을 단호히 배척하며 38선 분단의 책임이 소련만이 아니라 미국에도 있음을 간접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이승만에게 6.25전쟁은 숙원의 [통일전쟁]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38선 원상회복]을 원칙으로 [미군]도 아니고 [유엔군]의 이름으로 참전했다.
    이승만의 처절한 반대투쟁에 이승만 [제거]하려 하면서까지 트루먼 [원상회복 휴전]을 강행하였다.
    이승만 “자살도 우리의 주권”이라며 [단독 북진통일]을 외치며 몸부림쳤다.
    하지만 끝내 [분단]은 다시 미국에 의해 고착되고 말았다.

    이승만 [홀로 서기]는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통일전쟁]은 계속돼야 하는 것이다.

    독립운동때 그러했듯이 이승만은 친분 깊은 미국 언론인들을 움직여 이번엔 [통일운동]을 위한 여론전을 전개한다.
    그 하나가 <이브닝 스타>‘Why I Stood Alone’이다.

    중국전문가 송재윤 박사(宋在倫,1969~, 캐나다 맥마스터대학 교수)가 <조선일보>에 연재하는 <슬픈 중국> 22회(2월24일자)에 전문 번역 게재한 이승만의 글을 옮겨 싣는다.
    송 교수의 말대로 이 글은 오늘의 한국국민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
    특히 윤석렬 정부를 비롯한 자유보수 지도층이 꼭 읽어야 할 [오늘의 한국 분석]과 같은 글이다.

    70년전의 글인데도, 요즘 국제정서를 정확하게 집어내는 듯한 날카로움이 번득인다.
    ▲ 중국의 위협에 따른 미·중 갈등 예언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중국의 대만 침략 위협 등 공산전체주의 세력의 전지구적 전쟁 협박 경고
    ▲ 유화주의적 평화유지론("더러운 평화가,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  이재명, 침략당한 영토 떼주고 휴전하라는 우크라이나 6.25식 휴전론)의 허구 지적 등등.

    다큐영화 <건국전쟁>으로 [진실의 눈]을 뜨기 시작한 한국인들이 글로벌 지성인 대통령 이승만의 철학과 신념과 영혼이 불을 뿜는 고품격 강의를 들어보기를 원한다.

    다음은 송교수가 전재를 허락한 원문번역 전문이다.
    독자 여러분의 편의를 이해 볼드체 이탤릭체 꺽쇠 등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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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왜 홀로 섰는가"
    "Why I Stood Alone”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

    한국 서울에서

    내 삶의 퇴조기에 나는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침략에 맞서 계속 싸워야만 했다.
    그 때문에 나는 많은 비판에 휩싸였다.
    휴전 협상 과정에서 최근 한국이 취한 태도와 행동을 윈스턴 처칠과 같은 저명한 정치가는 [반역적(treacherous)]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단호한 태도가 공산 제국주의 폭정에 맞서도록 역사의 조류를 돌리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 확신한다.
    히틀러 에 맞서 홀로 계속 싸우겠다는 1940년 처칠 자신의 결정이 나치즘과 검은 폭정의 종식에 이르는 출발점이 되었음과 같다.

    위대한 웅변가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은 왜 한 나라가 일시적 파괴의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는 편이 투쟁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인지 전 세계를 설득할 수 있었다.
    처칠을 두고 “자멸적(自滅的, suicidal)” 이라거나 “무모하다(reckless)” 고 하는 말이 나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내가 한국에서 발휘한 리더십을 두고는 이런 말들이 즐겨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내 나라 한국은 [1938년 9월 뮌헨협정을 체결하여 히틀러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서도 불과 1년 만에 침략을 당해서 항전에 나섰던] 1940년의 영국이 그러했듯, 우리 스스로 자살행위라고 확신하는 유화적 정전 협정을 수용하기보다는 계속 싸우는 편이 최선이라 믿는다.
    우리의 지속적인 저항이 시간을 벌어줄 것이고, 여러 사태의 압력 아래서 붉은 세력의 망동이 벌어지게 되면, 자유 진영의 다른 국가들은 공산 중국의 괴물들을 국경 밖 그들 땅으로 몰아내는 것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공산 중국이라는 괴물이 또 다른 점령지를 뜯어 먹으면서 아시아 전체를 향한 힘과 먹성만을 키울 것이다.

    “나는 결코 확신을 잃지 않았다."
    "I Never Lost Confidence.”

    나는 긴 세월 기독교 윤리와 유교 윤리를 모두 연구해 온 학자다.
    이 두 철학에 뿌리박힌 격률은 미국인의 문구로 이렇게 표현된다:
    “옳음이 승리한다(Right will prevail).”
    결국 내 생애 58년 가까이 걸려서야 비로소 조선 국왕들과 일본인들의 반동적 지배로부터 남한만의 해방이라도 성취할 수 있었다.
    나는 결코 옳음이 결국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잃지 않았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내가 옹호하며 싸웠던 원칙들이 내가 죽은 뒤에야 실현될 듯 보이던 그 암울한 시절에도 늘 그렇게 믿었다.

    우리 시대의 [극동판 뮌헨협정] 처럼 보이는 휴전 협정을 거부한 우리 한국인의 동기에 대해 서방 세계에 너무나 심각한 오해가 있는 듯 하여 참으로 유감이다.

    정전 협정 원안의 구체적 쟁점을 따져보자.
    수백만 중공군이 무력으로 점령한 북한 땅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고, 우리나라 안에서 붉은 적군(敵軍)의 지속적인 불법 주둔이 종료되어야 할 시한도 전혀 휴전 협정에 명시되지 않았는데, 그 누가 진지하게 공산 침략이 격퇴되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1950년 당시 우리나라는 50만 가량의 북한 적병에 직면하고 있었다.
    1953년 현재 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중국과 북한의 연합 병력은 수적으로 최초 침략자들의 3배에 달한다.
    새로운 공산 군대는 아시아 최초로 제트기를 가진 공군을 비롯하여 1급의 최신식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은 전선에서 최단 거리로 20마일 이내에 놓여 있다.
    우리는 이 험악한 현실에 너무나 가까이 처해 있어서 붉은 세력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이를 진보라 부를 수가 없다.
    침략자가 다시 쳐들어올 경우 미국의 자동 지원을 보장해달라는 우리의 요구가 정말 그토록 터무니없는가?

    다수의 유엔군 고위 장교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38선 인근에 배치된 강력한 공산군 조직의 위협을 우려하고 있음을 나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공산 세력이 통제하는 북한 내 비행장은 남한뿐만 아니라 일본, 오키나와 등지의 미국 진지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 ▲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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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
    The Struggle

    넓은 의미에서 한국과 우방국 사이의 유감스러운 의견 차이는 공산주의 폭정과 팽창주의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인지에 관한 서로 다른 진단에 근거하고 있다.
    현재 한국이 처해 있는 곤경은 압제에 맞서 투쟁하는 일개인으로서 직접 겪은 나의 초창기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1896년의 일이었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의회를 갖춘 입헌정부의 수립을 요구하고 조선 국왕과 일본 고문관들의 독재적 방식에 항의하고 있었다.
    조선 국왕이 우리 독립운동의 지도자 17명을 체포해 간 후, 나는 계속 대중집회를 열었다.
    집회는 여러 날에 걸쳐 계속되었고, 때로는 수십만 군중이 운집하기도 했다.
    독립투사들이 석방된 후에도 우리는 대중 시위를 이어갔다.
    만약 우리가 해산하면 경찰이 절대로 우리의 재결집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마라톤 집회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경찰이 무력으로 집회를 해산시키려 한다는 경고를 들었다.
    주변에서는 내게 집회를 그만 단념하고 몸을 숨기라고 충고했다.
    그런데 정작 경찰이 나타났을 때 우리 집회의 대중은 똘똘 뭉쳐서 완강하게 저항했고, 경찰은 감히 군중을 공격할 수 없었다.
    경찰은 민중의 결기를 보건대 진압을 행동에 옮기는 순간 전국적 봉기가 촉발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의 저항에 그들은 겁을 먹었다.
    만약 그때 내가 흔들렸다면 나는 길을 잃고 헤매었을 것이다.

    한결같은 원칙
    Same Principle

    내가 늘 그렇게 운이 좋았던 건 아니다.
    무자비한 통치자에 맞서는 모든 애국자가 그러하듯 나도 투옥되어 고문당하는 내 몫의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원칙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승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쓸 각오가 그대의 적만큼 충분히 되어 있지 않다면 싸움을 시작도 하지 말라.
    그대는 흔들려선 안 된다.
    그 어떤 종류의 편의주의도 적에게 그대의 한계점을 노출하여 더 악랄하게 나오도록 적을 부추길 뿐이다.

    이것은 어떤 괴상한 오리엔탈 심리학이 아니다.
    역사적 유례들을 고찰하면 국가적 태세를 명확히 정립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1940년 프랑스 총리 페탱(Philippe Pétain, 1856-1951) 원수(元帥)는 “빈손보다는 반쪽이라도 얻는 편이 낫다” 는 판단으로 프랑스 절반을 독일 점령지로 내어주는 휴전 협정에 합의했다.
    나치가 법적 재가를 얻게 되자 프랑스인의 저항 의지는 약해졌고, 무도해진 독일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 나머지 영토도 접수하고 말았다.
    페탱은 이후 자기 국민에 의해 반역자로 낙인찍혔다.

    한 국가를 [반은 노예, 반은 자유 상태(half slave, half free)] 로 남겨둠으로써 빚어지는 비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기에도 여러 사례를 통해 거듭 입증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붉은 진영과 자유 진영으로 분단하는 조치는 결국 분란만 낳았다.
    왜 한국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해야 하는가?
    우리는 분명히 안다.
    공산주의자들의 철권통치를 맛보고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북한 주민은 오직 압제의 공포와 모욕을 몸소 맛본 자들만이 품게 되는 강렬한 열망으로 자유를 희구한다는 사실을.
  •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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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한의 힘
    Maximum Power

    한국은 3차 대전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는 공산 침략자를 국경 밖의 자기네 땅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유일한 길은 그들이 국제연합이 실제로 작동함을 깨닫게 하는 데에 있다고 확신한다.
    만약 유엔이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최대한의 힘을 발휘할 각오가 되어 있음을 명백하게 한다면, [중국의 붉은 무리] 가 6개월 안에 코리아에서 물러갈 것이라 믿는다.
    끝없는 망설임과 흔들림은 나약함의 징후이며, 붉은 세력은 결코 이를 놓치지 않고 이용해 먹을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적화 침략을 부추기고 공산 세력에 유리하게 이 세계의 세력 균형을 교란하여 3차 대전의 발발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현장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자기 기만은 언제나 더 쉬워진다.
    지난 1945년, 이미 나는 많은 욕설을 들었다.
    미국이 러시아와 합의하여 38선 이북에서는 소련이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할 목적으로 코리아를 점령하기로 한 결정에 대하여 내가 강력하게 항의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정부의 관리들은 그것이 일시적인 편의상의 조치일 뿐이고 러시아가 해당 지역을 계속 장악하도록 용납할 의도는 전혀 없다고 장담하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미국의 의도는 분명 훌륭했다.
    하지만 [붉은 세력의 북한 장악] “일시적으로” 허용되고 나자 미국은 그 어떤 평화적 수단으로도 그 세력을 흔들 수 없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정치적 협의를 통해 중국을 설득해서 북한에서 물러가게 할 수 있으리라고 진심으로 기대했다는 점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성해진 오늘의 중국] 이 대체 왜 갑자기 북한을 떠나려 하겠는가?

    물론 나 역시 나만의 이기적 야심을 채우려고 홀로 버티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에 맞서기가 고통스러웠다.
    내가 편의와 안락과 권력을 원한다면, 절반만 얻는 편이 더 간단하지 않겠는가?
    내 세상이 끝난 다음에 공산주의의 홍수가 덮치기를 희망하며 더 싸우지 않고서 여생을 살다 가도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일평생을 대의에 바친 사람이 막바지에 이르러 세속적 안락을 바라고 단념할 순 없다.

    협박은 안 통한다
    Threats Don’t Work

    우리에게 원조와 지지를 끊겠다고 암시하는 등 갖은 협박으로 우리를 좌우하고자 했던 서방 정치가들은 우리를 완전히 잘못 이해했음에 틀림없다.
    그러한 협박은 한 국가가 자유를 지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원대한 신념보다 일시적 유불리만 따지는 나라들에만 통할 뿐이다.
    한국에 대한 유엔의 지원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우리가 치르는 비용이 [붉은 세력] 에게 그런 우위를 점하게 하여 그들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우리를 압도할 수 있다면?

    상황이 더 악화되어 한국이 혼자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면, 우리의 운명이 마침내는 선의를 가진 모든 나라들을 규합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고서 우리는 고독하게 싸워나갈 것이다.
    우리는 특히 미국이 독재정권들과 공화국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 지구적 내전(global civil war)] 에서 우리가 아는 자유의 존속 여부가 바로 지금 여기에서 [붉은 세력의 침략] 을 막는 데에 달려 있음을 잘 알리라고 믿는다.
    (번역: 송재윤, 이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