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적자’와 ‘전기세 폭탄’으로 돌아온 탈원전
  • ▲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0월 20일 당시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개회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0월 20일 당시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개회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사이비 과학’에 기초한 탈원전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은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무모한 시도였다. 탈원전의 밑바탕에는 과학이 빠져있었고, 정치와 이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반핵(反核) 인사들을 국회는 물론 원자력 안전규제를 독립적으로 담당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 진출시킴으로써 비전문가들이 원전에 대한 불신과 공포를 조장하는 것을 방조했다. 이쯤 되면, 탈원전을 정책이라고 보기 힘들다. ‘원전의 씨를 말려야 안전해진다’는 사이비 과학을 신봉하는 ‘문재인식 이념운동’으로 규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자는데 반대할 국민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후쿠시마 등의 원전 사고 사례를 들어 탈원전을 하자는 것은, 교통사고가 났다고 해서 이동수단을 없애자는 얘기랑 다르지 않다. 원전 사고를 겪은 미국, 러시아, 일본도 원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데, 40년 동안 단 한 건의 원전 사고도 일어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안전을 이유로 탈원전을 하자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전력 부족 국가이고, 원자력발전이 국내 전력 공급의 30% 수준이다. 원전이나 석탄, LNG 발전과는 달리 태양력이나 풍력 등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전력 생산을 필요에 맞게 조절할 수 없는 ‘간헐성(間歇性)’ 전원이다. 사전에 충분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탈원전을 추진하는 것은 ‘청맹과니’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세계 최고 원전산업 박살낸 ‘청맹과니’ 정권

    문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우리나라 원전 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에너지 독립의 꿈을 작정이라도 한 듯이 파괴했다.

    원전업계는 폐업과 구조조정으로 고사 직전까지 몰렸다. 탈원전의 직격탄을 맞은 대기업의 원전사업부는 30%에 달하는 기술자들과 관련 인력들을 희망퇴직 등으로 내보내야만 했다. 대기업과 함께 성장세에 있던 중소기업들은 직원들의 월급마저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경영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

    하루아침에 좋은 일자리를 잃은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원자력 산업 분야의 고급 인력이 능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다른 진로를 택하거나 해외 원전업체로 이직하는 인재탈출 현상이 계속됐고, 인재 양성을 통한 젊은 인력 수급도 어려워졌다. 국가의 원전 경쟁력은 크게 약화됐고, 원전 가동 중단과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로 지역 경제도 크게 침체됐다.

    탈원전으로 SMR(소형모듈원자로/ Small Modular Reactors)의 개발이 지연된 것도 큰 손실이다. 우리나라는 SMR의 개발 선두주자였다. 열출력 300MW급 SMR인 SMART(System-integrated Modular Advanced-Reactor)가 2012년 7월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SDA)를 받았다.

    SMR은 기존의 대형원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성과 경제성이 뛰어나고, 설치도 훨씬 용이하다.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에 일체화한 SMR은 현재 운용되는 대형 원전보다 출력이 작은 300MW급이다. 이전에도 SMR은 있었지만, 탄소중립의 중요성이 강화된 최근에는 더욱 발전된 형태인 ‘차세대 SMR’이 주목받고 있다.

    ‘원전 수주 제로’ 달성한 문 정부


    탈원전은 해외 수주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문 대통령 임기동안 해외 원전 수주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탈원전으로 인해 한국 원전 산업에 대한 대외(對外) 신뢰도가 떨어진 게 가장 큰 이유다. 문 대통령은 국내에서 탈원전을 선언해 놓고 해외에 나가서는 ‘한국 원전이 세계 최고’라며 상대국에 ‘한국 원전을 사라’고 선전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으나, 국제적인 조롱만 받았다.

    자체기술로 처음 해외에 건설한 UAE(아랍에미리트)의 바라카 원전(한국형 원전 4기, APR-1400)에 대한 정비사업계약(2019년)도 기대했던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 계약 기간은 5년으로 줄었고, 내용도 인력 파견 수준의 하도급 계약에 머물렀다. 계약 기간과 내용이 달라지면서 전체 수주액도 30% 정도에 불과했다. 당초 우리나라는 15년간 원전정비 업무를 일괄 수주해 인력 파견은 물론 국산 설비를 도입해 최대 3조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문 정부는 우리 손으로 지은 원전의 정비계약을 단독 수주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탈원전 정책과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전업계는 2017년 탈원전 선언 뒤 국내 원전 생태계가 급속히 붕괴하고 있는 현실이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한국의 원전 공급망과 인력 체계 부실화를 우려한 UAE가 정비서비스 공급자를 다변화했다는 것이다.

    원전업계의 주장처럼 탈원전으로 국내의 원전 기술과 인력, 부품 생산 등이 유지되지 않는 현실에서 지속적인 수출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원전 운영 기간은 통상 30~40년이다. 운영 중 교체 부품과 서비스를 공급받지 못하면 원전을 운영할 수 없어 탈원전 국가의 원전을 구입할 이유가 없다.

    초우량기업에서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한전’

    탈원전 여파는 원전업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초우량 공기업이었던 한전(한국전력)은 빚더미에 올라 부실기업으로 전락했고, 그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

    2023년 4월 국회입법처가 한무경 의원(국민의힘)에게 제출한 보고서 ‘탈원전 정책에 따른 전력 구매비 상승 분석’에 의하면, 탈원전으로 지난 5년(2018~2022년) 동안 한전이 추가 지급한 전기 구매 비용은 25조 8,088억 원에 달했다. 탈원전이 없었다면 2022년에는 32조 원이 넘는 영업 손실의 40% 수준(2조 6,834억 원)을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한전은 원전에 비해 단가가 5배나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공백을 메우면서 7조 7,496억 원을 추가로 부담하는 이중고를 겪었다. 현재까지 누적된 한전의 적자는 47조원에 달한다.

    한전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주된 원인은 문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와 이미 완공된 원전 가동을 지연시킨 탓이다. 문 정부는 원전 6기의 가동 계획을 뒤집고 새울 2호기와 신한울 1호기만 가동했다. 설계수명이 남은 월성 1호기는 조기 폐쇄했다.

    국내에서 세 번째로 발전을 시작한 원자력발전소 고리 2호기는 계속 운전 신청을 하지 않아 허가 만료로 지난 4월, 40년 만에 발전을 중단했다. ‘계속 운전’ 승인을 받으면 재가동이 가능했으나, 문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에 따른 경제적 피해도 심각해 2년 동안 3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신한울 1, 2호기의 경우에도 운영이 5~6년 정도 늦어진 탓에 이미 발생한 경제적 손실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비싼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돌리면서 9조원 넘는 비용이 더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 정부의 대표적 거짓말 - ‘탈원전으로 전기요금은 오르지 않는다’

    2017년 7월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전기요금은 오를 수 없는 구조’라고 단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탈원전 60년 로드맵’에 대해 설명하며 강조했던 말이다. 문 정부의 위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거짓말 중 하나다.  

    문 정부는 탈원전을 하게 되면 대략 5년 뒤부터는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산업부가 지난 2017년 5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 2022년부터는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을 보고한 사실이 2022년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문 정부는 산업부의 보고를 묵살하고 탈원전을 밀어붙였다. 그로 인해 문 정부 5년 동안 억눌렸던 전기요금은 2022년에만 17.9% 인상됐다. 당분간 인상이 불가피해 가뜩이나 고물가로 시달리는 서민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문 대통령은 최근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져 허망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세계 최고의 원전 생태계를 박살내고, 탈원전의 책임을 국민들과 윤석열 정부에 고스란히 떠넘긴 장본인이 사과는커녕 어떻게 ‘성취’를 운운할 수 있는 것인지, 그 인성의 기괴함이 놀랍기만 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원전 생태계가 빠르게 복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북 울진의 신한울 1호기에 이어 2호기도 운영 허가를 받으면서 본격 가동에 다가섰다. 신한울 3, 4호기 원전건설도 본격화되고 있다. 원전 중소기업 지원 방안 추진으로 그동안 꽉 막혔던 중소기업의 숨통도 어느 정도 틔워졌다.

    지난해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측(Turbine Island) 건설사업 수주(1조 6천억 원 규모)와 올해 6월 루마니아 삼중수소제거설비 건설사업 수주(2천 600억 원 규모) 등으로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의 현실화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도 높아졌다.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가 경제와 에너지 안보, 국민 편익 등을 고려한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아울러 지속가능한 원전 환경 구축에 필수적인 방폐장(방사능폐기장)의 조기 마련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