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들, 잇따라 '정부안' 수용 의사"2018년 대법원판결은 '잘못'… 대통령 뜻 공감"尹대통령, "법적모순 조화 이루는 게 정부 역할"'구상권' 선 그었지만 日 "韓, 정권교체 후 번복""정부안에 반대해도 '공탁' 강행하면 극한반발 우려""일부 반대로 부분 현금화·부분 제3자 변제 불가피""위안부 문제에 대한 YS '도덕적우위 입각 자구조치' 주목""日 수차례 사죄 불충분… 구체적 반성·사죄 표현 필요"
  • ▲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 최고경영자(CEO) 초청 오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뉴시스
    ▲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 최고경영자(CEO) 초청 오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뉴시스
    한일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5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측이 정부의 징용문제 해법인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잇달아 밝혔다. 그러나 "언젠가 해야 하고, 누군가 해야 한다면 지금 내가 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에도 정권교체를 전제로 한 구상권 청구 가능성, 공탁에 대한 일부 반대여론 등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험난하다.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 원고 15명 가운데 6명 '정부안' 수용의사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 가운데 지금까지 언론(동아일보, 조선일보)에 정부안 수용 의사를 밝힌 피해자 측은 고(故) 박창환씨의 아들인 박재훈씨(77), 고(故) 이병목씨의 아들 이규매씨, 고(故) 김규수씨의 아들 김인석씨(69), 고(故) 정상화씨의 아들 정사형(65)씨,  익명을 요청한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나고야) 피해자 유족 등 6명이다. 

    유족들은 15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뒤엎고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판결에 대해 "잘못된 판결"이라는 소신을 밝히며 "정부 해법에 찬성하고, 미래를 말한 윤석열 대통령의 뜻에도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일청구권협정을 맺던 1965년 한국은 피해자들에게 직접 배상하겠다는 일본의 제안을 거절하고 당시 일본의 외환보유고의 4분의 1(△무상 3억 달러 △장기 저리 정부차관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이상)을 정부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지원받음으로써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제2조 제1항)하는 데 합의했다. 일본이 청구권자금을 지급하면, 한국이 피해자 개인에 대한 배상을 국내적으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2018년 대법원판결은 1965년 합의를 깨고 일본 기업에 대한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했다. 김능환 전 대법관이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을 썼다"는 바로 그 판결이다. 정부는 지난 6일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의 원고인 징용 피해자들에게 '제3자'인 행정안전부 산하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판결금(배상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공식 발표했다. 박정희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이은 세 번째 배상이다.

    尹대통령 "법적모순 조화 이루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자 지도자의 책무"

    윤 대통령은 이날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3자 변제와 관련해 "(1965년 협정을 맺기 위한 일련의 과정, 65년 협정의 규범적인 해석, 양국 정부의 해석, 2018년 한국 대법원판결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모순되거나 엇갈리게 하는 부분이 있어도 조화를 이루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고 정치 지도자가 해야 하는 책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 피고기업에 대한 재단의 향후 구상권 청구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관계된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 나중에 구상권 행사로 이어지지 않을 방법을 검토했다. 그러한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 ▲ 현대일본학회가 1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강제징용 해법의 평가와 의미를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현대일본학회가 1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강제징용 해법의 평가와 의미를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日기자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 결단 뒤집어지지 않을까 걱정"

    그러나 대통령의 판단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는 한국의 '정권교체 후 합의 번복'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일본이 '한일 위안부합의'를 체결하고 정부예산 10억엔을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 재단을 해산하고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일본 기자는 지난 13일 현대일본학회가 개최한 긴급토론회('강제징용 해법의 평가와 의미')에서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 대통령 결단이 언젠가 뒤집어지지 않을까를 가장 걱정한다"며 "더불어민주당 반응을 보면 정책이 유지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정권교체된) 차기 한국정부에서 이 정책이 어떻게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우려를 드러냈다.

    정권교체 후 '재단'의 구상권 행사?… "구상권 가진 재단, 판결금 지급 후 소멸 수순"

    재단이 기금(판결금) 마련에 참여하지 않는 일본 피고기업들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정권이 교체된다면 일본 피고기업들에 구상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최희식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도 해당 토론회에서 제3자 변제안의 문제점으로 "만약에 정권교체가 된다면 그 구상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짚었다.

    이와 관련해 김태훈 한변(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명예회장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은 재단밖에 없는데, 재단은 그럴 의향이 없다는 전제로 제3자 변제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단이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지급하고 나면 소멸되는 수순을 밟게 되므로 정권교체 때까지 존속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안 반대하는 피해자들에게 '공탁' 강행하면 극한 반발 우려" 

    정부는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하는 피해자들의 판결금(배상금)을 법원에 '공탁'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지만, 양금덕씨(94), 김성주씨(94), 이춘식씨(99) 등 일부 피해자들은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피해자 측 임재성 변호사는 "(민법 제469조 제1항에는) 채무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지만,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는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면서 "제3자 변제가 불가능하다는 의사표시를 법원에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최 교수는 "(피해자들이) 수령하기 싫다는데 공탁해버린 행위가 되면 지금과는 한 차원 다른 엄청난 반대가 있게 된다"며 "설령 사법부가 그 공탁의 유효성을 인정할지라도 피해자들은 다시 소송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법부 재판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가 결국 강제동원 해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변수가 된다"고 내다봤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해당 토론회에서 "제3자 변제안은 최선이라고 할 순 없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차선으로서는 그런대로 합당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공탁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일본 피고기업 자산) 현금화 조치가 불가피하다. 정부의 선택이 아니다. 사법부의 법적판단에 의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제3자 변제안에 대한 피해자들의 수용 여부에 따라) 부분 현금화, 부분 제3자 변제로 불가피하게 가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일부 반대로 부분 현금화·부분 제3자 변제 불가피"… 'YS 해법' 재조명

    그러면서 이 교수는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한 '도덕적 우위에 입각한 자구조치'를 재조명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3월 13일 '일본에 더는 금전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며 한국 정부가 피해자에게 일시금 500만원, 생활안정지원금(매달), 임대주택 입주, 의료비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대신 일본 정부에 진상조사와 사죄, 반성, 후세교육 등을 요구했다. 

    이에 부담을 느낀 일본 정부가 8월 4일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고노담화를 발표하자,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한일 양자 차원의 외교협상 대상으로 제기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시 외교부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 부위원장이었던 조세영 전 외교부 1차관은 2014년 저서 '한일관계 50년, 갈등과 협력의 발자취'에서 "한국 정부가 이렇게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자 일본 정부가 진상규명을 비롯한 가시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 부담을 느끼게 됐다"며 "일본도 무언가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연립정권 내에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움직임은 1995년 7월 발족한 아시아여성기금으로 구체화됐다"고 회고했다.

    日 역대 내각 사죄 계승 불충분… 반성과 사죄, 구체적인 표현으로 나와야

    우리 정부의 발표에 일본 정부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화답한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일본학회 토론회에서 "일본이 꼭 호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호응은 반성과 사죄라는 부분이 조금 더 구체적인 표현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연구위원은 또 '강제징용 대법원판결 관련 해법 발표(2023.3.6) 이후의 한일관계: 전망과 과제' 이슈 브리프에서 "사실 그간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1993) △무라야마 담화(1995) △21세기한일파트너십공동선언(1998) △고이즈미 담화(2005) △간 담화(2010) 등을 통해 사죄를 표명해 왔다"며 "그러나 국내의 큰 비난과 정치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내린 한국 정부의 결단과 그동안 고통받은 피해자와 유족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이러한 역대정부의 입장을 계승하면서도, 보다 구체적인 표현으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야 할 것"이라며 "일본 내에서 정부의 입장에 반하는 발언이 나올 경우, 이에 대한 엄중한 주의 및 정부의 명확한 원칙과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한국이 제시한 해법은 2018년 대법원판결에 대한 해법으로, 이것이 일본의 역사적 책임마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