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이 '김치 관리' 서한 9번 무시" 보도에… "2번 회신 왔다"며 언중위 정정 청구알고 보니 현지 식약관이 본국에 보고한 동향문건… "회신 왔다" 식약처 주장이 허위김강립 처장 명의로 '허위공문서' 제출… 법조계 "범죄구성요건 성립, 수사 불가피"
  • ▲ 김강립 식품의약품 안전처장. ⓒ뉴시스
    ▲ 김강립 식품의약품 안전처장. ⓒ뉴시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중국산 김치의 안전 문제와 관련해 '굴욕외교'를 했다는 본지 보도와 관련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출한 정정보도청구서는 사실관계가 조작된 허위문서인 것으로 밝혀졌다.

    식약처는 중국산 김치의 HACCP(해썹,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적용 등을 위해 지난 1년간 중국 정부에 협조 요청을 담은 서한을 아홉 차례 보냈지만, 모두 무시당했다는 본지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청구서에서 "중국 정부가 두 차례 회신을 보냈다"며 기사가 허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취재 결과, 중국 정부가 보냈다는 이 두 차례 회신은 주중 한국대사관 소속 식약관이 중국 정부의 움직임을 파악해 보고한 동향문서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기관인 식약처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언론 보도를 정정하기 위해 고의로 허위공문서를 작성한 정황이 드러난 것으로, 당사자인 김강립 식약처장의 지시 여부 등 관련자를 대상으로 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강립 식약처장의 지시 여부 등 관계자 수사 불가피

    앞서 본지는 지난달 23일자 보도에서 "식약처 현지실사과가 지난해 1월부터 지난 3월까지 외교부를 거쳐 중국 세관당국(해관총서)에 총 아홉 차례 서한을 발송했지만, 중국 측으로부터 한 차례도 회신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아홉 건 중 여덟 건은 중국산 김치의 HACCP 적용을 위한 현지조사 협조요청이 담겼고, 나머지 한 건은 최근 중국산 '알몸김치' 논란과 관련해 중국 측에 관리 강화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 ▲ 식약처가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자료. 중국 측의 회신 여부에 모두 '미회신'이라고 표시돼 있다.(위) 식약처가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출한 정정보도 청구서 일부. 동일한 사안에 대해 중국 측이 2020년 5월과 12월 두 차례 회신했다고 돼 있다. (아래)ⓒ전성무 기자
    ▲ 식약처가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자료. 중국 측의 회신 여부에 모두 '미회신'이라고 표시돼 있다.(위) 식약처가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출한 정정보도 청구서 일부. 동일한 사안에 대해 중국 측이 2020년 5월과 12월 두 차례 회신했다고 돼 있다. (아래)ⓒ전성무 기자
    그러나 식약처가 지난달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자료에는 중국 정부의 회신 여부에 아홉 건 모두 '미회신'으로 표시됐다.

    본지가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하며 '굴욕외교'를 지적하자 식약처는 "완전한 허위보도"라고 반발하며 3일 뒤인 지난달 26일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식약처는 정정보도청구서에서 "피신청인(본지)은 이 사건 보도를 통해 중국 정부가 신청인(식약처)의 요청을 1년 동안 일방적으로 무시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신청인이 여덟 차례에 걸쳐 수입김치 해썹 의무화와 관련된 협조요청을 한 것에 관하여 중국 정부는 2020년 5월과 12월 두 차례 회신을 보낸 사실이 분명히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칙적으로 신청인은 외교관례상 중국 측의 회신문서의 존부 및 그 내용 등을 국가기밀로 분류하여 관리하여야 함이 마땅하다"며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 허위사실로 인해 국민들이 현혹되고 건강권까지 위협받는 최악의 사태를 막아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해당 문서를 위원회에 제시하여 이 사건 보도를 정정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악의 사태 막기 위한 일념" 운운하더니... 허위문서 제출

    이는 그러나 거짓말로 밝혀졌다. 식약처 국장단이 지난 8일 서정숙 의원실을 찾아가 보고한 '중국김치 안전관리 관련 서한 및 상호 소통 개요'라는 답변자료에는 '우리 처가 주중대사관을 통해 중국에 아홉 차례 보낸 서한 중 우리측 외교서신에 대해 중국당국(해관총서) 명의 회신은 없었음'이라고 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중국이 우리 정부에 두 차례 회신했다는 부분과 관련해서는 '현지 공관 식약관이 해관총서의 김치 HACCP 인증 시행방식에 대한 입장과 의견을 2020년 5월, 2020년 12월 각 1차례 전문으로 보고'라고 명시했다. 

    특히 해당 문서의 '중국 측과 소통 내용' 부분의 비고란에는 '우리의 HACCP 관련 제안에 대한 해관총서 의견 파악 보고' '해관총서(신임 부서장) 통보 내용을 전달' '중국 내 HACCP 소관기관 동향보고' 등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우리 식약관이 중국 현지에서 파악한 중국 측의 HACCP 적용에 대한 입장을 보면 '한국이 중국의 인증방식을 승인' 'HACCP 인증을 시장총국과 협의' '식약처와 중국(검과원)이 중국 내 인증기구 선택 및 그 기구가 중국기업 검사방식 제안(시장총국)' 등 우리에게 불리한 내용이 다수 눈에 띄었다.

    이는 중국 측이 여러 차례에 걸친 서한에도 답신을 하지 않자 우리 현지 공관 식약관이 중국 정부 관계자를 접촉해 '귀동냥'으로 파악한 내용을 문서화해 보고한 것이다.

    그런데도 식약처는 본지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청구서에서 이 보고를 '중국 정부의 회신'으로 둔갑시켰다. 정정보도청구서에 "중국 측의 회신 문서의 존부 및 그 내용 등을 국가기밀로 분류해 관리하여야 함이 마땅하다"는 내용 등을 보면, 허위공문서 작성의 고의성이 짙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신문서와 그 내용 국가기밀로 분류해야" 황당 주장도

    식약처는 지난 9일 언론중재위에 출석해서도 "중국 정부가 2020년 5월과 2020년 12월 두 차례 회신을 보냈다"고 거듭 주장하며 기사 정정을 요구했지만, 중재위가 '조정불성립' 결정을 하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 중국인이 알몸 상태에서 배추를 절이는 동영상 사진 캡처.ⓒ웨이보
    ▲ 중국인이 알몸 상태에서 배추를 절이는 동영상 사진 캡처.ⓒ웨이보
    식약처가 언론중재위에서 정정보도 등 유리한 판단을 받아내기 위해 허위임을 인식하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 담긴 문서를 작성했다면 형법상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익명을 요구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우리 공무원이 작성한 문서를 중국 정부가 작성한 문서라고 했다면 명백한 허위"라며 "허위임을 알고 고의로 그런 문서를 작성했다면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죄 범죄구성요건이 성립한다"고 지적했다.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는 "허위공문서작성은 국가적 법익에 관한 범죄"라며 "이 과정에서 고의성이 있다면 수사기관에서 고발장이 없어도 인지수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죄... 범죄구성요건 성립돼

    경찰(치안정감) 출신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도 "허위공문서작성은 반의사불벌죄도 아니고 친고죄도 아니다. 고의가 있다면 인지수사를 할 수도 있다"며 수사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 사건'과 관련해 국회에 허위답변서를 제출한 혐의(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등으로 지난 2월15일 국민의힘으로부터 고발당했다.

    김진욱 공수처장 역시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대상으로 한 '황제 조사' 의혹과 관련해 배포한 보도자료가 허위 논란이 일자 지난 9일 같은 혐의로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으로부터 고발당했다.

    이번에 식약처에서 허위공문서 논란이 인 언중위 정정보도 청구 사건의 신청인은 김강립 식약처장이다. 우영택 식약처 대변인은 12일 통화에서 "담당 국장에게 입장을 물어달라"고만 답했다. 담당 국장은 "대변인이 설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답변을 피했다.

    식약처는 최근 '중국은 대국, 한국은 속국' 발언이 본지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고, 결국 대국민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