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과 대결해야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일 뿐만 아니라 안보를 도박하는 위험한 태도이다.
  • ▲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권창회 기자
    ▲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권창회 기자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이 아직 승복하고 있지는 않지만, 바이든(Joe Biden) 전 부통령은 12월 14일 각주별 선거인단 투표에 의하여 제46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월 6일 미 의회에서 확정되어 2012년 1월 20일에 취임할 예정이다. 이로써 4년이지만 기존 어느 행정부보다 대외정책에서 특이한 시각을 보였던 트럼프 행정부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특이한 정책방향과 성향을 드러내었다. 이 중에서 어떤 것은 계승되기도 하겠지만, 상당한 부분은 시행착오로 인식되어 교정될 것이다. 어느 경우든, 우리가 교훈을 도출해야할 부분은 존재할 것이고, 그것을 찾아서 교정하는 것이 역사를 보는 건전한 시각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 방향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그 동안 미국이 자임해온 세계경찰국가의 사명을 포기하겠다는 방향 전환이었기 때문이다. '신 고립주의(new isolationism)'라고 명명한 학자도 없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을 비판하면서 동맹국들에게 방위비분담이나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였고, 미국의 지원 역할을 축소하고자 했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으로 단결되어온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상당할 정도로 분열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이나 동맹국 지도자를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거친 말로 동맹국 지도자를 대했고, 모욕으로 느낄만한 무례함도 없지 않았다. 이전의 어떤 미국 대통령도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다. 세계나 지역 차원의 제반 사안을 결정함에 있어서 동맹국과의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 중에서도 트럼프에 대하여 인간적 호감을 표명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지도자를 무시하는 것은 그 국가를 무시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 또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단결을 저해한 요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겉으로는 중국과 러시아 등을 비난하면서도 우방국보다 그 국가들을 더욱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 이유를 다양하게 의심하기도 했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해서는 해야할 말을 전혀 하지 못하였다. 중국에 대해서도 무역역조 시정을 명분으로 관세를 인상하고, 중국 기업이나 중국인들의 미국 내 활동을 제한하기는 했지만, 시진핑 주석과의 관계는 좋다면서 직접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부러워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곤 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분열되었고, 중국과 러시아는 밀착 및 단결하였다. '새로운 냉전(new cold war)'은 시작된 듯하고, 상대는 철저하게 단결하여 진격해오는 데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리더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세계 질서는 혼돈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남북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트럼프 대통령은 충분한 준비나 치밀한 전략없이 북한과의 협상을 수용함으로써 북한의 핵무기 폐기를 압박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일치된 노력을 약화시키고, 군사적 옵션을 자발적으로 포기하였으며, 북한에게 국제사회의 간섭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핵무력을 증강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고 말았다. 핵무기를 불법적으로 개발하고, 비인도적인 통치를 일삼는 김정은에게 정통성을 부여함으로써 북한의 민주적인 체제변화 기회를 차단한 점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하여 북핵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가 남감해진 상태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김정은의 독재나 비인도적인 통치형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김정은과의 우정을 강조하거나 김정은이 똑똑한 지도자라는 평가만 반복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판문점, 하노이에서 세 번이나 김정은을 만났지만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기 보다는 사진찍기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핵무기 폐기를 위한 아무런 실질적인 조치도 이끌어내지 못한 채 한미연합훈련만 취소하는 등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모습도 보였다. "Your Exellency!"를 사용하여 치켜 세우는 27통의 김정은 친서에 낚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 심각한 사항은 한미동맹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포스트의 우드워즈(Bob Woodward)기자와 17차례 1:1 면담을 하면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고, 우드워즈가 그 내용을 『분노(Rage)』라는 책자에 기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을 열심히 지켜주고 있지만 한국은 방위비분담에 인식한 채 미국에게 TV나 선박을 팔아서 경제적 이익만을 챙긴다고 불평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미국이 허용하기 때문에 존재한다(allow to exist)라고도 표현하였고, 수천 마일 떨어져 있는 한국의 문제에 대하여 왜 미국이 관심을 갖느냐고 질문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한 중에서 어느 쪽을 미국의 동맹국으로 생각하는 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북한과 김정은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남한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 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지금까지의 발전과정에서 한국이 받은 미국의 도움이 큰 것은 분명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태도는 한국 국민들에게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깨달아야할 교훈

    트럼프 대통령이 특이한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정치를 해본 경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업인으로 생활하면서 국가안보보다는 손익계산에만 치중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 걱정해야할 것은 트럼프와 같은 생각을 하는 미국인들이 많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었던 것은 다수의 미국인들이 트럼프의 생각에 동의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인, 나아가 미국의 정치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 지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그에 따라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한국이 고쳐야할 것은 고칠 필요가 있다.

    바이든은 언론에서 '당선인(President-elect)'으로 인정하자 가장 먼저 11월 23일(현지시간) 그의 안보팀을 발표하였다. 국무장관은 토니 블링컨(Tony Blinken) 전 국무부 부장관,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은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전 부통령 안보보좌관,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흑인 여성 외교관 린다 토머스-그린필드(Linda Thomas-Greenfield)를 내정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라는 말로 세계경찰국가로서의 역할을 더욱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트럼프 시대에 비해서는 훨씬 동맹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동맹국들을 존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와의 적극적 협력을 통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실수한 부분을 조기에 수습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북한 및 북핵에 관한 한미간의 정책공조를 더욱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인 한국의 지도자보다 북한의 김정은을 더욱 호의적으로 대한 데는 우리의 잘못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창 올림픽 이후 감사사절단이 김정은으로부터 "비핵화 용의"를 전달받았을 때 국민들에게 바로 발표할 것이 아니라 한미 양국의 정책담당자들이 며칠에 걸쳐 그 진위와 대응방향을 충분히 검토한 후 공동의 대응방향을 논의했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성급한 결정은 없었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불만이라면서 강조한 것이 방위비분담이었다. 그 적정 정도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미국의 방위비분담 요구에 우리가 지나치게 인색한 태도를 보인 것은 잘못이다. 한국은 1999-2003년 동안 동티로르에 400명 정도의 '상록수' 부대를 파견하여 그들의 안보를 지원한 적이 있는데, 2003년 철수한 것은 유엔이 주둔비용을 내지 못하겠다는 것 때문이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동티모르에 우리의 비용으로 주둔하고 있는 상태에서 동티모르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잘 살게 되었다면 우리도 어느 정도의 비용분담을 요구하지 않겠는가? 미국의 방위비분담 요구를 무조건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상호 이해하는 마음으로 이를 타결해 나간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경험을 통하여 한국이 명심해야할 사항은 미국 대통령과의 인간적 유대관계 형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김정은과 일본의 아베 총리는 트럼프 개인을 설득하거나 관리하는 데 상당한 관심을 쏟았고, 그 결과 트럼프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강대국 지도자의 생각 하나에 따라서 약소국의 운명이 좌우될 수도 있다. 대통령은 비롯한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미국의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과 더욱 돈독한 인간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더욱 노력해야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자주국방이 해답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우리가 느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항은 미국은 한국방위를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따라서 1949년처럼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등으로 포기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의 안보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결의를 다질 수밖에 없다. '자주국방'이라는 미명 하에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을 '자주국방'이라면서 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안보를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갖고, 그러한 의지를 구현할 수 있는 계획을 마련하며, 그 계획의 실행력을 구비해 나가야 한다. 북핵 위협의 경우 미국의 '핵우산(nuclear umbrella)'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우리 스스로에 의한 북핵 억제 및 방어 방책을 강구하는 데 더욱 매진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과 대결해야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한국이 미국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갖든, 또는 미국에 어떤 행정부가 들어서든, 미국은 한미동맹을 포기 또는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일 뿐만 아니라 안보를 도박하는 위험한 태도이다. 실제로 1949년 미국은 한국을 포기하면서 주한미군을 모두 철수시켰고, 그러자 1년 후에 북한은 한국을 침공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는 도박할 수 없다는 것이고,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하여 만전지계(萬全之計)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경험이 한국 국민들의 안보의식 제고로 연결되기는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