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에 서울 수복 요구… 국회, 치안국, 국방부 종횡무진 지휘한 이승만서울 함락직전 탈출해 부산행… 열차 돌려 대전서 "유엔 참전" 소식 전했는데야당 원내대표가 "서울 사수하겠다고 방송하고, 도망간 대통령"으로 왜곡
  • ▲ 1952년 여름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서부전선을 찾아 해병 1연대 장교들을 격려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뉴데일리DB
    ▲ 1952년 여름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서부전선을 찾아 해병 1연대 장교들을 격려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뉴데일리DB
    주호영 국민의힘 대표가 '코로나 정국'에 국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역사적 자해행위'를 저질렀다.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 백신 확보를 수차례 지시했다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비겁한 지도자로 남지 말라"고 지적하는 자리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지도자가 비겁하게 변명하고 자신의 보신만을 위한 사례를 두 가지 가지고 있다"면서 "임진왜란 때 책임을 전가하고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간 선조, (6.25전쟁 당시)서울을 사수하겠다고 방송하고는 혼자서 남쪽으로 간 이승만이 지도자가가 책임을 방기한 대표적인 예"로 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주호영 대표의 기자간담회 발언은 역사의 무지에서 나온 '역사적 망동(妄動)'이다. 그의 문제적 발언은 일천(日淺)한 역사지식과 역사관(歷史觀) 부재, 그리고 정치적 통찰력 결여에서 나온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몰역사적(沒歷史的) 발언을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겠는가! 결과적으로 코로나 백신 조치와 관련하여 문재인 대통령을 '비겁한 지도자'로 공격하려는 그의 의도는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잘못된 역사인용으로 아무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일이 되었다. 문재인 정권의 코로나 조치를 비롯한 여러 실정들을 공격하는데도 실패했고, 코로나 상황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국민들에게는 실망감을 넘어 공분(公憤)을 일으키는 빌미만을 제공했다.

    주호영 대표가 역사적 사례로 든 6.25전쟁시 이승만(李承晩, 1875-1965)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적절하지도 않고, 역사적 사실과도 그 맥락이 맞지 않다. 특히 전란(戰亂)을 당한 국가지도자로서 임진왜란 때 선조(宣祖)와 6.25전쟁시 이승만 대통령의 전시 국정수행과 국군통수권자로서 역할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는, 그야말로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감히 역사의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주호영 대표는 우격다짐 격으로 두 인물을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자리에서 '1회용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대단히 사려 깊지 못한 무익한 정치행위를 했다.

    역사에 대한 조그마한 소양(素養)과 관심만 있어도 국가지도자로서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6.25전쟁시 이승만 대통령이 '같은 급(級)'의 지도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선조는 여러 면에서 국가지도자로서 비난받기에 충분한 일들을 했다. 그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인지를 정탐하러 보낸 사신(使臣)들의 상반된 보고를 받고도 올바른 정책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일본 침략에 대비해 '10만 양병(養兵)'을 주장한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의 마지막 진언(進言)도 흘려들어 임진왜란을 자초했던 혼군(昏君)이었다. 거기다 일본에 조선침략에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하지 못한 채 서울을 떠나 백성들의 원성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가장 힘들게 했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던 사람도 바로 선조였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옥사(獄舍)에 가두거나 백의종군(白衣從軍)시킴으로써 일본을 이롭게 했고, 망가진 13척의 배로 다시 일본군과 싸우게 해 이순신 장군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람도 선조였다. 그럼 점에서 선조는 아둔하고 무능한 국가지도자였다.

    '北 남침' 예상하고 6·25전부터 미군 지원 요구

    그렇지만 6.25전쟁시 이승만 대통령은 달랐다. 주호영 대표가 말한 서울을 버리고 도망가는 비겁한 대통령이 결코 아니었다. 국가원수로서 국군통수권자로서 반드시 해야 될 일들을 수행한 후에야, 경무대(현 청와대)가 북한군 포병 사정거리에 들어오고, 또 북한군 전차가 경무대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다는 보고를 받고 국가원수가 포로가 되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서울을 떠났다. 서울을 떠날 때 그는 국가원수로서 또는 국군통수권자로서 해야 할 막중한 국사(國事)를 빠트리지 않고 수행했다. 소련과 중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고 시작된 북한의 남침은 국제공산주의가 공모해 일으킨 전쟁으로 대한민국이 혼자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국제전쟁이었다.

    남침하자 유엔 참전·미전투기 즉시 투입 성사

    이를 간파한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이 나서 서울을 떠날 때까지, 주미대사관을 통해 미국과 유엔에 도움을 요청해 유엔의 참전을 성사시켰고,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데 필요한 공군 전투기를 미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원수에게 요청해 10대를 무상으로 가져와 전투에 투입시켰고, 긴급 국무회의를 통해 전시 필요한 긴급조치를 취했고, 전쟁 전 미국에서 구입한 전투함 3척이 하와이에 머물고 있는 것을 알고 이를 인솔하고 있던 손원일 해군총장에게 긴급 귀국하도록 지시했다. 이들 구축함은 통영상륙작전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돼 국군 및 유엔해군작전에 크게 기여했다.

    국방부·치안국 지휘… 국회 달려가 협조 당부

    또 육군본부 상황실과 치안국을 방문해 전황과 치안상황을 살폈고, 국회에 출석해 전시수행을 위한 국회 협조를 당부하는 등 국가지도자로서 격조 있는 국정을 수행했다.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미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원수와 미국 대사 무초에게 전화를 걸어 국군에게 필요한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도록 했고, 신성모 국방부장관에게 군사경력자 회의를 개최해 당시 위급한 군사적 상황을 타개하도록 지시했다. 그런 후 국가원수가 포로가 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각료들의 강력한 건의에 의해 서울을 벗어나야만 했다.

    北전차 경무대 앞 임박… 함락 직전 서울 탈출

    서울에서 대통령으로서 해야 될 긴급한 일을 마치고 난 이승만 대통령은 27일 새벽 4시에 서울역에서 경부선 열차를 타고 출발했다. 당시 전선 상황은 서울 외곽의 미아리와 청량리에 형성된 위급한 상황이었다. 서울이 곧 함락될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대구에 도착할 무렵 대통령은 다시 기차를 돌려 수원으로 향하던 중 각료들의 만류로 대전에서 멈췄다. 그때 주미대사관의 드럼라이트 참사관이 달려와 대통령에게 유엔의 안보리 결의를 보고하면서 "이제 전쟁은 미국의 전쟁이 되었다"면서 굳이 위험한 수원까지 갈 필요가 없게 됐다고 설득하여 충남도청이 있는 대전에 머물게 됐다. 

    충남도청에 자리를 잡은 이승만 대통령은 그날 밤(27일) 드럼라이트 참사관으로부터 낮에 들은 유엔참전의 기쁜 소식을 국민들에게도 알려 희망을 주겠다는 뜻에서 "유엔이 참전하게 되었으니 국민들은 안심하라"는 요지의 녹음방송을 틀게 되었다. 그런데 주호영 대표는 엉뚱하게도 이승만 대통령을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방송하고 나서 도망간 대통령"으로 언급하고 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엔 참전" 소식 전했는데 "방송하고 도망갔다"고 왜곡

    오늘날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5천년 유사 이래 유례없는 경제적 번영과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건국 및 호국(護國) 대통령 이승만과, 한강의 기적을 이룬 부국(富國)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이 있다. 그 바탕 위에서 민주화도 이루어진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 두 분의 대통령을 국가지도자로서 또 보수정당을 지도해 온 '큰 어른'으로 대접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한민국을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가로 발전시킨 이들 대통령의 지도력을 본받고 그 뜻을 계승 실천해 나가야 된다. 그렇기 위해서는 시중에 나도는 가십거리에 의존하지 말고, 국가를 경영할 지도자로서 풍모를 갖출 역사 지식 함양과 정치적 통찰력을 길러야 된다. 예로부터 역사는 위정자(爲政者)들의 학문이다. 역사만큼 위정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학문은 없다. 명군(明君)과 혼군(昏君)은 역사지식과 소양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가라면 적어도 3가지를 염두에 두고 말을 해야 한다. "말 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미치는 파장이 어떻게 될지, 도움이 될 것인지." 그 선택의 몫은 정치가에 달려 있다.

    남정옥(6.25전사연구가, 역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