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씨 12일 오후 페북서 보수단체에 호소… "살아야 말도 하는 법… 개천절의 광화문, 잠시 내려놔야"
  • ▲ 진인(塵人) 조은산이 10월3일 개천절 집회를 추진하는 보수단체를 향해 집회 자제를 호소했다. ⓒ조은산 블로그 캡처
    ▲ 진인(塵人) 조은산이 10월3일 개천절 집회를 추진하는 보수단체를 향해 집회 자제를 호소했다. ⓒ조은산 블로그 캡처
    '시무 7조' 상소문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을 비판했던 진인(塵人) 조은산이 10월3일 개천절집회를 추진하는 보수단체를 향해 집회 자제를 호소했다.

    조은산은 12일 오후 자신의 블로그에 '가을, 개천절을 앞두고'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조씨는 "개구리가 뛰어오르기 전 한껏 몸을 움츠리듯 후일 분연히 일어날 그날을 위해 지금 잠시 힘을 아껴두는 것이 어찌 현명치 못한 처사라 하겠습니까"라고 썼다.

    조씨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들어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인(仁)이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 하더라도 고난 앞에서는 손을 내밀어 도우니 이것은 의(義)이며, 나의 숨결이 타인의 코 끝에 멈출 수 있는 것은 예(禮)이고, 확산을 빌미로 정치적 공세를 당하지 않음은 지(智)"라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인의예지'로 설명… "개천절 광화문 잠시 내려놓자"

    조씨는 먼저 "나의 아버지에게, 나의 어머니에게, 나의 형제자매들에게 감히 여쭙고자 합니다"라며 "언제 가난이 좌와 우를, 진보와 보수를 가려 찾았으며 국가적 재난이 또는 전 세계적 경제위기가 찾아왔음에 어디에 좌와 우가 따로 있었고 그 어디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었습니까"라고 전제했다. 

    그러고는 "적진을 내 집 같이 누비고 사지에서 삶을 이어냈으니 이미 그대들은 살아 숨쉬는 귀신과 같을진대, 육신은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하고 영혼은 광화문에서 동지들과 함께하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조씨는 "대중을 이끌어 쇄신을 외침은 위대함이고 생명존중과 국민통합의 가치 아래 대중을 잠시 머물게 함은 위대함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이라며 "개천절의 광화문은 잠시 내려놓아야 하기에 비로소 아름다울 것이며, 가족과 함께하기에 더욱 소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씨는 이어 "사람의 생명만큼 귀한 것이 어디있겠습니까"라며 "살아야 말도 하는 법, 부디 그 뜻을 잠시 거두어주소서. 오랫동안 전전긍긍하며 글을 아꼈으나 시국이 급박한 듯하여 글을 써 올리니 이러한 저의 바람이 가엾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호소했다.

    한편 조씨는 지난달 말 청와대 국민청원에 고려 전기 문신 최승로가 성종에게 바친 상소문의 형식을 빌려 부동산정책·검찰개혁·대북정책 등 현 정권의 실정을 비판해 큰 화제를 모았다. 조씨는 인천에서 두 자녀를 키우는 30대 가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 다음은 진인 조은산의 블로그 글 전문이다.

    '가을, 개천절을 앞두고'

    쪽보다 더 푸른 얼굴로 총칼을 들어 자유를 지켜냈습니다.
    백마고지의 참호 안에서, 인천 해안의 상륙주정 안에서, 함락 직전의 부산, 낙동강 전선에서 그러했습니다.

    시대의 요구와 국가의 부름에 답했습니다.

    월남의 짙은 정글, 전우들의 시신 사이에서 숨 죽였던 파월장병은 소총탄을 쏘아 날려 표적의 심장을 관통했고 이는 국가발전의 신호탄이 되어 국토를 관통하는 경부고속도로가 되었습니다.

    꽃보다 더 꽃 같았던 그대들은 이역만리의 땅 독일,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 또한 맞지 않는 곳에서 환자의 상처를 꿰매고 시신을 닦아 외화를 송출해 국가경제발전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가난과 맞서 싸우며 밖에서는 그릇을 닦고, 안에서는 갓난쟁이의 샅을 닦아 가정을 지켜내었습니다.
    밖에서는 기어다니며 상사의 비위를 맞춰 생계를 이었고, 안에서는 주저앉아 소주를 마시며 울분을 삭였습니다.
    그리하여 역사의 한 시점에 그대들은 당당한 주역이 되어 살아왔습니다.

    塵人 조은산이 나의 아버지에게, 나의 어머니에게, 나의 형제자매들에게 감히 여쭙고자 합니다.

    언제 가난이 좌와 우를, 진보와 보수를 가려 찾았으며, 국가적 재난이 또는 전세계적 경제 위기가 찾아왔음에 어디에 좌와 우가 따로 있었고 그 어디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었습니까.

    적진을 내 집 같이 누비고 사지에서 삶을 이어냈으니 이미 그대들은 살아 숨쉬는 귀신과 같을진데, 육신은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하고 영혼은 광화문에서 동지들과 함께 하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겠습니까.

    모자란 제가 알기로는, 나라를 위하는 것이 충(忠)이고 국민을 위하는 것도 충(忠)이나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인(仁)이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 하더라도 고난 앞에서는 손을 내밀어 도우니 이것은 의(義)이며, 나의 숨결이 타인의 코 끝에 멈출 수 있는 것은 예(禮)이고, 확산을 빌미로 정치적 공세를 당하지 않음은 지(智)와 같을 것인 데, 전염병 확산 방지라는 대의명분 앞에 충과 더불어 이들 또한 얻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개구리가 뛰어 오르기 전 한껏 몸을 움츠리듯 후일, 분연히 일어날 그 날을 위해 지금 잠시 힘을 아껴두는 것이 어찌 현명치 못한 처사라 하겠습니까.

    아내와 혼사를 치르기 전 어느 가을 날, 저는 오른손을 내어 아내의 왼손을 잡았고 노란 낙엽으로 덮힌 광화문 돌담길 위를 함께 걸었습니다.
    맞잡은 두 손은 따스했고 매우 정겨웠습니다. 이것은 저의 아름다움입니다.

    대중을 이끌어 쇄신을 외침은 위대함이고, 생명존중과 국민통합의 가치 아래 대중을 잠시 머물게 함은 위대함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입니다.

    저의 사사로운 아름다움을 어찌 그대들의 아름다움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만은, 그날 가을의 향기 아래 고즈넉했던 저의 광화문은 비어있기에 아름다웠고 적막했기에 소중했습니다.
    그렇기에 같은 가을 개천절의 광화문은, 잠시 내려놓아야 하기에 비로소 아름다울 것이며 가족과 함께 하기에 더욱 소중할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만큼 귀한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살아야 말도 하는 법, 저 또한 지금 이 순간 눈을 뜨고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부디 그 뜻을 잠시 거두어 주소서.

    오랫동안 전전긍긍하며 글을 아꼈으나 시국이 급박한 듯하여 글을 써 올리니 이러한 저의 바람이 가엾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이천이십년 구월, 塵人 조은산이 용기내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