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22일 휴대폰·서울시청 압색 영장 기각… 피해자 제출 자료, 직원 조사 등으로 진실의 '퍼즐' 규명 가능
  • ▲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권창회 기자
    ▲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권창회 기자
    경찰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수사와 관련해 진상규명 가능성을 열어뒀다. 원칙적으로 피고인이 사망함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은 종결 처리해야 하지만, 파생사건인 성추행 묵인‧방조 혐의를 비롯해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의혹 등을 수사하면서 성추행 의혹의 실체도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이번 사건의 수사 대상과 관련자 처벌, 진상규명 범위 등 성역 없는 수사로 경찰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경찰 "압수수색 통해 朴 성추행 실체 수사 가능"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21일 "박 시장의 성추행 고소 사건을 직접 수사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방조 등에 대해 강제수사의 필요성이 인정되면 압수수색 등을 통해 (의혹의 실체에 관한) 수사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창룡 차기 경찰청장후보자(현 부산지방경찰청장)도 2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건 상당히 중요하다"면서도 "법령·규정 내에서 경찰이 할 수 있는 역할범위 내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발언을 종합하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수사는 ▲서울시 관계자들의 성추행 방조·묵인 ▲박 전 시장의 사망 경위 ▲피해자와 피고소인을 향한 2차 가해 등 3가지로 진행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경찰은 서울시 관계자들의 성추행 방조‧묵인 의혹 규명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현재 성추행 방조 혐의로 '가로세로연구소'에 의해 고발된 대상은 서정협 서울시 행정1부시장, 김우영 정무부시장, 문미란 전 정무부시장과 비서실 소속 직원 3명 등이다.

    서울시 관계자 10여 명 참고인조사… '피의자' 전환은 아직

    경찰은 피해자 A씨와 서울시 관계자 등 10여 명을 대상으로 참고인 소환조사를 마쳤다. 조사 대상에는 A씨의 고소장이 접수되기 전인 지난 8일 오후 3시쯤 박 전 시장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있느냐"고 물었던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와 고한석 전 서울시장비서실장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같은 날 오후 박 전 시장과 대책회의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을 대상으로 추가 소환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다만 현재는 참고인조사 수준으로, 이들 중 혐의가 입증돼 피의자로 전환된 사람은 아직 없다.

    여기에 A씨 측이 22일 2차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는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성 고충으로 인한 전보 요청을 20명 가까이 되는 전·현직 비서관에게 말했다"며 "그러나 시장을 정점으로 한 업무체계는 침묵하게 하는 위력적 구조였음이 드러났다"고 추가 폭로하면서 조사 대상의 윤곽이 점차 확실해질 전망이다.

    A씨 측에 따르면, A씨는 약 4년간 타부서로 이동하기 전까지 17명에게, 이동 후에는 3명에게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토로했다. 이들 중에는 피해자보다 높은 직급의 상사와 인사담당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에 정신적 또는 물질적 도움을 주는 행위를 했다면 그 적극성이 인정돼 '방조죄'가 성립할 수 있다"며 "피해자(A씨)가 제출한 증거가 드러나야 알겠지만, 증언이 꽤 구체적인 만큼 그게(방조죄) 아니더라도 은폐‧방임죄로 처벌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고 봤다. 

    이 변호사는 이어 "위력에 의한 성추행인 데다 조직적 은폐‧방임 정황이 드러나면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판도라 상자' 朴 휴대전화 열릴까

    경찰은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을까. '1차 관문'이었던 박 전 시장의 유류품으로 발견된 업무용 휴대전화 1대와 서울시청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은 불가능해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이날 "압수수색 필요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보강수사 등을 통해 성추행 고소 사건 전반에 관한 수사 필요성을 피력하는 취지로 영장 재신청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경찰의 추가 압수수색영장 발부 신청을 받아들이면 박 전 시장의 사망 경위와 관련한 자료뿐만 아니라 전반적 자료 조사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결국 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 1차 관문은 법원의 '딴죽'으로 실패했다.

    그렇다고 경찰이 법원을 핑계로 수사에 미적거리는 행태를 보이면 '방조 혐의 등 수사를 통해 실체를 밝히겠다'는 공언은 허언이 된다.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가 없더라도 피해자가 박 전 시장과 주고 받은 자료가 있다. 서울시청 압수수색이 불가능하더라도 직원들을 조사하며 '퍼즐'을 맞출 수도 있다. 수사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경찰의 의지 문제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