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세대 1만여명 생활하는 진천-아산에 교민 수용… "왜 하필 주민 밀집지냐" 항의 빗발
  •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뉴시스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뉴시스
    정부가 우한폐렴 사태를 두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우한에 체류 중인 교민과 유학생을 수송할 특별 전세기에 유증상자는 태울 수 없다더니 다음날 아침에는 포함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다 같은 날 오후 다시 유증상자는 태울 수 없다며 오락가락했다. 이에 국민안전처 같은 정부 재난 컨트롤타워 부재를 탓하는 소리도 나왔다. 

    하루 만에 입장 번복만 두 번

    외교부는 지난 28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1월 30, 31일 양일간 우한에 체류 중인 현지 교민과 유학생 700명가량을 위해 특별 전세기 4대를 보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증상자는 전세기에 탑승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와 협의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음날인 29일 오전, 정부 방침이 뒤집혔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날 서울 중구 한 음식점에서 열린 6개 의약단체장 간담회에 앞서 "우한폐렴 유증상자도 특별 전세기 내에 격리해서 태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유증상자는 따로 독립된 비행기에 태우거나, 우리가 보내는 1층과 2층으로 구분되는 큰 비행기에서 층을 달리해 유증상자와 무증상자 간 교차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증상자도 잠복기일 수 있어서 좌석을 이격시켜 옆자리는 비우고 앞도 비워서 대각선으로 앉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교민을 실어 나르는 데 이용될 특별 전세기는 최신기종이어서 공기순환장치가 장착돼 객실 내 공기를 필터링해 옆 사람으로 옮길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게 박 장관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결국 중국 정부가 유증상자 이송을 협의해주지 않아 이들의 귀국은 불발됐다.

    이날 오후 김강립 복지부차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중국 당국과 협의 결과 우한 교민 가운데 무증상자를 우선 이송하기로 결정했다"며 "모든 교민에 대한 안전한 이송을 준비해왔지만 중국 당국과 협의 과정에서 현지의 검역법령과 절차를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복지부장관이 중국 정부와 협의도 되지 않은 사안을 두고 "유증상자도 데려오겠다"고 허언한 셈이다. 

    전세기 출발도 늦어졌다. 30일 이른 아침에 보내겠다던 전세기는 이날 오후 9시로 출발이 미뤄졌다. 우한총영사관은 현지 교민들에게 "중국 측 허가 지연으로 30일 임시 비행편 탑승을 위해 오전 10시45분까지 톨게이트로 집결하기로 했던 공지를 변경한다"며 전세기 지연을 알렸다. 

    전세기가 예정대로 출발했다면 현지시각으로 오후 3시와 5시에 각각 우리 국민 약 370명을 태우고돌아올 예정이었다. 

    충북 진천, 충남 아산에 격리…지역주민 반발

    정부는 전세기를 타고 돌아올 교민과 유학생들을 충북 진천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과 충남 아산의 경찰인재개발원에 각각 격리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현지 주민들 반발이 만만치 않다. 정부가 교민들의 수용을 일방적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진천군 주민들은 트랙터 2대와 집게차 1대로 교민들이 수용될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정문 앞을 막아서기도 했다.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 앞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곳 주민들은 트랙터·지게차·경운기 등을 동원해 진입로를 가로막았다. 진입로 5개 차로 중 4개 차로가 주민들이 동원한 농기계 11대로 봉쇄됐다.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 반경 500m 안에는 3000가구가 거주한다. 지역주민 사이에는 "정부가 현장조사를 똑바로 하지 않았다" "탁상행정으로 수용 장소를 정했다"는 등 불만이 팽배했다.

    이에 현지 주민들의 이기심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역에서 만난 한 시민은 "중국에 남게 된 유증상자들이나 국내의 이들 가족은 얼마나 애가 타겠느냐"며 혀를 찼다. 

    일각에서는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대응이 국민안전처의 부재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민안전처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재난관리 기능을 일원화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 때 만든 부처다. 국민안전처는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2017년 7월26일 폐지됐다. 재난관리 역할을 부처별로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한 시민은 "하루 사이에 말을 두 번이나 바꾸는 것을 보면 정부 관계자들끼리 서로 협의가 안 되는 것 같다"며 "이런 정부에 어떻게 신뢰를 줄 수 있느냐"고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