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전문가 박정자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이기심 덕분' 출간
  • 어디선가 '아이폰과 갤럭시를 만든 스티브 잡스나 이재용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 경제학자가 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1723~1790)다.

    그는 자신이 쓴 국부론에서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술도가·빵집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알지도 못하는 우리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들이 얻을 이익 때문에 문명의 이기가 생겨났다는 말이다.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이기심 덕분이다(박정자 저, 출판사 기파랑)'라는 조금 긴 책제목은 애덤 스미스의 이 구절에서 나왔다. 이 책은 스미스의 자본주의, 에드먼드 버크(1729~1797)의 보수주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의 (신)자유주의를 날줄 삼고 토마스 홉스, 존 로크, 장자크 루소 등 근대의 대사상가들을 씨줄 삼아 ‘자유로운 개인’이 탄생한 역사를 되돌아본다.

    인문학 대중화에 앞장서 온 저자는 여기에 글로벌 자본주의의 문을 연 대항해 시대, 옛 독일·프랑스와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반면교사, 부(富)에 대한 조선 선비들의 내로남불, 허생(許生)의 통찰과 오해, 미국의 테일러리즘, 스위스와 핀란드의 실패한 ‘기본소득제’, 가장 최근의 인공지능(AI)·기그(GIG)·공유경제까지,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자본주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을 깨알같이 쏟아 낸다.

    일상이 자본주의다

    "골목길에 편의점 불빛만 있어도 갑자기 골목은 생기가 돈다. 그 생동감의 중심에 상업이 있다. 상업은 귀한 것을 더 귀하게 만들고,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만들며, 모든 사람들을 밝고 명랑하게 만든다(131쪽)."

    옛 멕시코 땅인 텍사스 초원의 스페인식 이름 붙은 쓸쓸한 교회들을 둘러보며, 기울어 가는 허울뿐인 제국의 황제 고종이 커피를 마시던 덕수궁 정관헌을 바라보며 저자는 ‘여기에 카페 하나 있었더라면’ 하고 아쉬워한다. 파리 샹젤리제와 서울 광화문광장의 결정적인 차이도 ‘카페, 식당, 상점의 유무’에 있다(114-117쪽). 상업의 활기가 사람 삶의 활기다.

    상업을 ‘도둑질하는 근본’이라며 대놓고 천시한(그러면서 퇴계 이황이나 다산 정약용 같은 사대부들도 뒤로는 이재에 열을 올렸다) 조선의 종말은 망국과, “형언할 수 없이 슬프면서도 기묘한 광경”으로 유럽 여행자의 눈에 비친 경성이었다.

    근대 초 상업을 천시한 독일과 일본의 종말은 전체주의와 패전이었다. 군국(軍國) 독일과 일본을 무너뜨린 것은 상업과 자본주의의 나라 영국과 미국이었고,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고 환골탈태한 것이 지금 우리가 아는 한국, 일본, 독일이다. 초등학교 때 6.25를 겪은 저자의 기억에도 그 어려운 시절 가족의 끼니를 해결한 것은 자생적인 시장이었다. 상점들 불 꺼진 어두운 거리, 기업이 사라진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디스토피아다.

    참다운 진보는 보수주의·자유주의

    "지금 한국은 사회주의 국가다."


    막상 책의 첫 문장은 암울하다. 정부가 민간에 시시콜콜 개입하는 계획경제 사회라서, 개인은 말살되고 집단주의가 기승을 부려서, 집권층이 뒤로는 사리(私利) 추구에 여념 없으면서 말로는 돈을 천시해서, 정부가 공짜 돈으로 ‘자립 의지 없는 노예’를 양산하고 있어서(4-9쪽). 이런 사회의 이름을 저자는 차마 직접 붙이지 못한다. 하이에크는 그것을 ‘노예의 길’(79쪽), ‘전체주의 사회’(262쪽)라고 불렀다며.

    개인 없는 집단주의의 폐해를 웅변하는 것은 혁명의 시대 프랑스의 광기(狂氣)다. 공짜 돈이 국민을 병들게 하고 나라를 망치고도 마약처럼 다시 좌파 포퓰리즘으로 회귀한 것이 지금의 아르헨티나다.

    유일한 치료약은 개인 자유의 회복이다. 자본주의는 ‘개인’을 인정하므로 보수주의이고,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기에 자유주의와 통한다.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와 하이에크의 자유주의에 따로 한 챕터씩을 할애한 이유다. 자본주의·보수주의·자유주의의 삼위일체만이 유일한 진보적 사상이고, 개인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에 가장 겸손하고도 현실적인 사상이다. 좌파가 내거는 ‘진보’란 한국만의 기형적 현상이고, 그들의 진보는 참칭(僭稱)일 뿐이라는 지적(263-269쪽)이 많은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간 세상의 모든 원리가 시장 메커니즘이다. 교환의 원리도 그렇고, 무질서한 듯해도 정교한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완벽을 지향해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그렇다. 시장을 부정하는 이념은 결코 세상을 지배할 수 없다. 상업을 천시하는 좌파가 결코 우파를 이길 수 없는 이유이다(131쪽)."

    ■ 저자 소개


    저자 박정자는 소비의 문제, 계급 상승의 문제, 권력의 문제, 일상성의 문제 등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한 일련의 책들을 썼다.

    △미술작품과 영화를 통해 하이데거, 사르트르, 푸코, 데리다 등의 철학을 해석한 '빈센트의 구두' △현대인의 소비 행태를 계급 상승의 열망과 결부시켜 해석한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권력의 문제를 시선이라는 모티프로 풀어 쓴 '시선은 권력이다' △일상생활을 포스트구조주의 철학 개념들로 설명한 '마이클 잭슨에서 데리다까지' △화가 마네에 대한 푸코의 독특한 관점을 해설한 '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 조각' △푸코의 르네 마그리트론(論)을 플라톤 이래의 시뮬라크르 개념과 연결 지은 '시뮬라크르의 시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들을 들뢰즈의 관점으로 해석한 '눈과 손, 그리고 햅틱'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전후의 시사적인 사건들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한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등이 저자가 쓴 작품들.

    번역서로는 △사르트르의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상황 제5권 식민주의, 신식민주의' △'변증법적 이성 비판' 등과, △푸코의 '성은 억압되었는가('성의 역사' 1권)' △'비정상인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만화로 읽는 푸코' △'푸코의 전기' △'광기의 역사 30년 후' △앙리 르페브르의 '현대세계의 일상성' △앙드레 글뤽스만의 '사상의 거장들' 등이 있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박사 논문은 '비실재 미학으로의 회귀 : 사르트르의 '집안의 백치'를 중심으로'.

    상명대학교 사범대학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사진 및 자료 제공 = 기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