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리아 철수" 발표 사흘 만에 터키군, 쿠르드 지역 침공… 한국과는 상황 달라
  • ▲ 공습과 포격 뒤 시리아 북부로 진출한 터키 육군 차량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공습과 포격 뒤 시리아 북부로 진출한 터키 육군 차량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터키가 9일(현지시간) 쿠르드족이 모여 사는 시리아 북동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다고 영국 로이터 통신, 미국 CNN 등이 일제히 보도했다.

    터키의 공격은 공습으로 시작됐다. 이어 포격이 있었다. 목표는 시리아 북동부 텔 아비아드와 라스 알라인 일대로 알려졌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쿠르드 민병대 관계자를 인용해 “민병대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상자도 속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CNN에 따르면, 레제프 아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9일 오후 4시(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작전명은 ‘평화의 샘’으로 명명했다”면서 “이번 작전은 터키에 대한 테러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공표한 데 따른 공격이라고 해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시리아에 미군이 주둔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고 지적한 뒤 “나는 위대한 미군이, 심지어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경찰 노릇을 하는, 그 터무니없고 끝없는 전쟁에서 빼내겠다는 약속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주장했다.

    백악관은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과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했다며 “터키가 오랫동안 준비해 온 시리아 북부에 대한 군사작전을 곧 추진할 것”이라며 “미군은 그 작전에 전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을 사실상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에도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 브렛 맥커크 ISIS 퇴치 특사가 시리아에서의 철군에 반발해 사퇴하기도 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난 목소리가 컸다.
  • ▲ 2017년 10월 당시 ISIS의 근거지인 시리아 락까를 탈환한 뒤 환호하는 '시리아 민주군(SDF)' 장병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10월 당시 ISIS의 근거지인 시리아 락까를 탈환한 뒤 환호하는 '시리아 민주군(SDF)' 장병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러나 미군 철수는 소리 없이 계속 진행됐다. 지난해 12월 2000여 명이었던 시리아 주둔 미군은 올해 2월 200명으로 줄었다. 남은 병력들은 시리아 북부 일대에서 평화유지임무만 맡았다. 그리고 10월 7일 마지막으로 특수부대원 50명이 철수했다. ‘인계철선’이 사라진 것이다. 미국이 10개월 동안 군 병력을 철수시킬 동안 국제사회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국·이스라엘과는 전혀 다른 쿠르드족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한지 사흘 만에 터키가 쿠르드 지역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자 국내 언론들은 “돈을 이유로 함께 싸웠던 동맹을 저버린 트럼프”라며 “한국도 안전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터키의 시리아 공격에 대해 “터키의 행동은 나쁜 생각임을 분명히 밝힌다”면서 “미국은 이번 공격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도 말뿐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쿠르드 족과 한국 상황은 다르다. 쿠르드족은 인구가 4000만 명에 달하지만 국가를 이루지 못했다. 이들이 흩어져 사는 시리아, 이라크, 이란, 터키가 쿠르드 건국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2014년 9월 테러조직 ISIS가 이라크를 시작으로 세를 확장, 시리아까지 점령하려 하자 민병대를 앞세워 맞싸웠다. 이때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와 쿠르드족과 시리아 무슬림의 연합군인 시리아 민주군(SDF)도 ISIS를 소탕하는데 앞장섰다.

    미국은 2015년 2월이 돼서야 쿠르드 민병대와 시리아 민주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오바마 정부는 중동 지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자 했다. 때문에 ISIS를 막는 작전도 공중지원과 쿠르드 민병대·시리아 민주군에 대한 전술훈련 및 장비지원에 국한했다. 이를 위해 시리아 북부에는 특수부대를 투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ISIS 격퇴를 선언하게 된 것도 미군의 지원을 등에 업은 쿠르드 민병대와 이라크 보안군이 열심히 싸운 덕분이다. 인민수비대는 ISIS와의 전투에서 1만1000여 명의 전사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 ▲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 주둔하던 자유폴란드군을 사열하는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 1943년경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 주둔하던 자유폴란드군을 사열하는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 1943년경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이런 쿠르드족과 한국의 상황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그나마 같은 점이라면 ‘미군의 인계철선’ 역할인데 주한미군의 경우 ‘인계철선(침입자가 건드리면 폭발물 또는 신호 장치를 켜게 만드는 선)’ 역할을 않겠다고 밝힌 지는 이미 10년이 넘었다.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로 주한미군이 통합되는 것도, 의정부와 동두천 미군 기지를 비우는 것도 ‘인계철선’ 역할 중단과 관련이 깊다. 미국은 한국과 맺고 있는 상호방위조약을 토대로 한국 안보를 지원하는 것이다.

    쿠르드족 같이 ‘팽(烹)’ 당했던 자유 폴란드군

    쿠르드족과 비슷한 처지를 찾는다면 2차 세계대전 때 자유폴란드군(폴란드 서부군)이 있다. 폴란드군은 1939년 9월 나치의 침공에 맞서 분투(奮鬪)했지만 나치와 불가침 조약을 맺은 소련까지 배후에서 침공하고, 국내에서는 기득권 귀족 세력이 자기 이익만 챙기는 바람에 나라를 빼앗겼다. 폴란드군은 이후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피난, 자유폴란드군을 창설한다. 이들은 피난 중에도 노르웨이와 프랑스에서 나치 독일군에 맞서 싸웠다.

    자유폴란드군의 초기 병력은 3만5000여 명이었지만 합류하는 병력이 늘어 1943년에는 25만 명에 달했다. 특히 140여 명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화려한 전적을 올리며, 연합군 핵심 전력으로 인정받았다. 나머지 병력들도 유럽 서부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 이탈리아 전선에서 독일을 무찌르는 최선봉에 섰다.

    자유폴란드군은 이처럼 조국 수복을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연합군은 전쟁이 끝난 뒤 이들을 외면했다. 당시 연합군은 포츠담 회담과 얄타 회담에서 일본제국 해체 뒤 한반도 독립은 논의했지만 폴란드의 독립은 논의하지 않았다. 그렇게 폴란드는 소련에 침공당해 공산화됐고, 10만 명이 넘는 자유폴란드군은 무국적자로 55년 동안 세계를 떠돌았다.

    현재 쿠르드족 또한 자유폴란드군과 같은 상황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ISIS 격퇴 연합군에 동참했던 나라들 모두 쿠르드족의 독립이나 안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터키는 지난 몇 년 동안 자국에 몰려드는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기 위해 쿠르드 민병대를 주둔지에서 몰아내려 했다. 유럽연합(EU)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는 “터키의 시리아 침공이 중동 정세를 악화시킬 것”이라며 비판하지만, 별다른 행동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