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이라도 국익보다 우선할 수 없어… 정부 비밀 파헤쳐 알리라고 언론자유 보장한 것
  • ▲ 이헌 변호사(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공동대표).
    ▲ 이헌 변호사(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공동대표).
    "이 기사로 인해 미국에 외교 및 안보 재앙을 끼쳤습니다. 다른 나라와 비공개 회담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기밀사항이 이렇게 새어나간다면요."

    "이 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이 자기 맘대로 국가를 통치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회와 상의도 없이 국내정치 뿐 아니라 외교적 정무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요. 이 일이 반역에 가깝다는 대통령의 반응에 경악했습니다. 어떤 기관이나 어떤 개인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이 반역이나 다름없다고 한다면 '짐은 곧 국가다'라고 말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난해 개봉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메릴 스트립·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더 포스트'에 나오는 대사이다. 이 영화는 1971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즈(NYT) 신문사가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에 관한 미국 정부 1급 기밀문서에 대해 보도하고 미국 정부와 재판했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했다.

    한미정상 통화 내용 공개…기밀누설 vs 국민의 알 권리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주미대사관 외교관을 통해 알게 된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간의 통화 내용을 국회 기자회견으로 공개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5월 방한을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을 들르는 길에 방한하겠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집권여당 측은 "국기문란, 외교상 기밀누설", 자유한국당 측은 "국회의원 의정활동, 국민의 알 권리"라며 서로 공방이 격화하고 있다. 집권여당 측은 강 의원을 형법 제113조 외교상의기밀누설죄로 고발했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외교기밀을 국민의 알 권리 등으로 비호·두둔하는 정당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기본과 상식을 지켜 달라"며 5·18 기념행사 당시 ‘독재자의 후예’ 공세에 이어 야당에 대한 정치공세를 이어나갔다. 강 의원에게 전화통화 내용을 알려준 외교관은 '파면'이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국민의 알 권리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국민의 정부에 대한 일반적 정보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서,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기본원리로 하는 우리 헌법의 해석상 당연히 인정되는 권리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원칙을 내용으로 하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제정·시행되고 있다.

    '알 권리'는 자유롭고 풍부한 정보의 수집에 의한 책임 있는 여론의 형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알 권리는 무제한의 절대적 권리가 아닌 상대적 권리로서, 특히 국가기밀이나 국가이익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제한되는지가 심각하고 당면한 문제로 제기된다. 국가기밀에 대한 1차적 결정권은 정부에게 있으나, 정부가 국민의 알 권리에 유래하는 정보공개의 원칙을 무시하고 일반적으로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는 것이 법학계의 대체적 중론이다.

    강 의원의 한미정상 통화 내용 공개행위가 과연 외교상 기밀누설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국회의원의 정상적 의정활동으로서 국민의 알 권리에 관한 것인지는 단정적으로 볼 수 없다. 다만, 강 의원의 행위에 대한 상반된 입장 중에서 어떠한 입장이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이익에 우선 부합하는 것인지를 따져 가늠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정부의 정보 독점, 민주주의 원칙 위배"…법학계 중론

    국회의원이 직무상 행한 발언은 헌법 제45조의 면책특권 이외에도 공무원이 공직 내부의 부정·비리를 고발하는 경우와 같이 국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내용을 공개한 경우에 형법상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대법원 95도780). 우선 외교상 기밀이란 외국에 대해 비밀로 하거나 확인되지 아니함이 우리나라의 이익이 되는 정보자료인데(대법원 94도2379), 강 의원이 공개한 내용이 외국에 대해 비밀로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이익이 되는 정보자료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과 6월 일본을 연이어 방문키로 예정했는데, 인접한 동맹국인 우리나라의 방문 여부는 최근 북한의 비핵화에 관한 한미동맹 관계의 균열 조짐과 이 정부의 외교무능 논란과 관련해 우리 국민들이 매우 염려하고 초미의 관심을 갖는 사안이다. 주요 언론에서 문 대통령의 '미-북 중재자' 역할 집착으로 지난 4월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비정상적 모습이나 '코리아 패싱'을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강 의원이 본인이 알게 된 한미정상의 관련 통화내용이 기밀사항으로 분류됐더라도 이를 국민의 알 권리 및 국민 전체의 이익의 차원에서 필요하고도 충분하게 공개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직무상 도리일 것이다. 강 의원이 공개한 내용은 상대국인 미국에 대한 결례나 국익침해가 됐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더러, 도리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 일본 방문 중 문 대통령의 방한 요청사실을 공개해 이제는 외교상 기밀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필자가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으로 재직할 때 이석태 당시 위원장(현 헌재 재판관) 측과 국회의 특조위 관련자료 요청에 대해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 필자는 국민의 알 권리 및 정보공개의 원칙에 따라 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이석태 위원장 측은 이를 반대했다. 위원장 측은 특조위 내부의 상황이 공개될 경우 자신들의 정치적 편향성과 파행적 운영 등이 드러날까 우려해 정보공개를 극구 거부한다는 입장이었다. 특조위를 장악하고 있던 위원장 측은 필자가 사무처장의 지위에서 수차례 국회 요구에 따라 특조위 관계 자료를 보내자 온갖 악담과 공세를 퍼붓기도 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문재인 정부를 주도하는 인사들은 국민주권주의와 표현의 자유는 물론이고, 국민의 알 권리를 굉장히 강조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핵심브레인 단체인 '민변'은 정부를 상대로 하는 정보공개청구소송을 빈번히 제기했었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주권주의와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는 그들만의 것일 뿐이고 그들과 다른 생각과 입장을 지닌 사람들의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한미정상과의 관계를 포함한 한미동맹은 국가 존립과 안전, 국민의 생존에 직결되는 것이다. 잘못된 한미동맹의 실상에 관해 강 의원이 공개한 내용은 현 정부의 이익에는 반할지는 모르겠으나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이익에는 부합한다. 이를 숨기는 것보다 이를 밝히는 것은 국가와 국민 전체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의 기본이고 상식이라는 점을 문 대통령 등 이 정부 인사들에게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강 의원이 공개한 통화내용을 사실무근이라고 했다가 말을 바꿔 외교상 기밀이라고 주장한다거나 대사관 내 발설자를 잡아내겠다며 공직자의 핸드폰을 사실상 압수해 조사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과 상식을 지키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비판에 귀 닫은 文, 전제적 통치방식 멈춰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고사가 전하듯이, 국민의 말을 막는다고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나 국민의 알 권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이고 정부의 정책과 국정수행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는 야당 국회의원의 최고 덕목이다. 이 정부가 자유민주정부임을 잊지 않았다면, 강 의원에 대한 무리한 대응 이외에도 유튜버들에 대한 고발이나 구속의 경우와 같이 자신들이 비판받는 내용을 수용하지 않은 채 자신들을 비판하는 인물을 옥죄고 탄압하는 '전제적 통치방식'을 즉각 멈춰야 마땅할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소개한 영화 '더 포스트'의 실제 사건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신문사의 언론자유를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한미정상의 통화내용을 공개한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의 정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 등 의정활동에 대해서도 국민의 알 권리라는 측면에서 이 판결에서 언급한 언론의 자유에 관한 법리를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판결의 결론에 관한 블랙 판사의 의견으로 이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 나라의 건국이념에 따르면 언론은 자유를 보장받고 민주주의 수호자의 역할을 수행해야한다. 언론이 섬기는 건 국민이지 통치자가 아니다. 미국 헌법이 언론자유를 보장한 것은 정부의 비밀을 파헤쳐 국민들에게 알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