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와 협상학(35) 남북협상, 목전 성과에 사로잡혀선 곤란… 미래변수까지 신중히 고려해야
  • 남북갈등, 남북 내부에서도 대립, 분리장벽, 12년에 걸친 조사 끝에 38년 전 시위대에 공수부대의 불법 발포에 대한 사과. 

    언뜻 들으면 우리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400년 전부터 갈등이 이어져오고, 90년대 말까지도 테러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은 아일랜드와 영국의 북아일랜드 이야기다. 1972년 ‘피의 일요일’ 사건이나 IRA(아일랜드무장군) 활동이 여전히 낯설지 않다. 우리보다 더한 남북간 대립이었다. 그러나 아직 감정은 남아있다지만 1998년 아일랜드와 영국의 북아일랜드간 협상과 국민투표를 통해 제도적으로는 갈등을 잠재웠다. 이후 2018년 아일랜드는 유럽 1위 경제성장률, 세계 경제자유도 5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기업들이 몰려드는 국가이다. 이 협상에서 보여준 아일랜드인의 지혜를 찾아보고자 한다. 위기에 처한 우리의 협상 전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성공요인 중 첫 번째는 서두르지 않았다. 1920년대 영국으로부터 아일랜드의 독립 당시 북아일랜드 6개주의 분리 독립에 대해 현실을 인정하고 기다렸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영국이 브렉시트를 노딜로 진행한다면 북아일랜드는 자발적으로 EU 국가로서 보다 개방경제인 아일랜드로 돌아가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유럽의 모범국으로 재탄생한 아일랜드가 무조건 통일을 주장했던 명분론보다 현실론을 따른 결과이다. 상대가 원할 때 협상을 통해 지원하기는 비록 시간은 더딜지 몰라도 오히려 상호 불신을 줄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우리 정부가 북한이 싫다는데도 쌀과 현금을 선지원하겠다는 것은 서두르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당장 남한 내의 반발도 있지만 무엇보다 북한이 주장하는 ‘선합의 이행’ 입장에 대해 우리도 현실적인 문제점을 제기하는 협상이 선행되어야 한다. 일방적인 지원은 자칫 북한 지도층이 제일 두려워하는 흡수통일에 대한 불안감을 은연중에 심어줄 수 있다.
     
    그럴 경우 북아일랜드처럼 통일이후 중국에 남길 희망하는 북한 지도층에 의해 북한이 갈라져 우리도 IRA 못지않은 대규모 혼란이 생길 수 있다. 한편 남한의 보수 야당 역시 북아일랜드 즉 영국 정부의 캐머런 수상처럼 38년 전 사건이라 할지라도 과거에 대해 진심이 보이는 확실한 반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상대와 일반국민들로부터도 인정받을 수 있다. 과거를 석연치 않게 인정하거나 부인하는 모습으로 인해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둘째, 반대파의 참여도 필수적이다. 80년대 대처수상의 아일랜드와 협상이 합의를 해놓고 이행에 실패한 것은 강경반대파들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반대파를 배제할 경우 협상이 성사될 수 있어도 이행은 실패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1996년 여전히 상호 불신이 큰 북아일랜드 평화협상에서 미국의 전상원 원내대표였던 조지미첼을 평화회담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신의 한수였다. 조지미첼은 훗날 “내가 한 것은 없다. 그냥 나는 찬성이든 반대론자든 듣고 또 들었다. 듣는 것이 내 장점이다”라고 밝혔다. 그 결과 강경파인 IRA의 참여와 오늘날 번영의 초석을 이뤄냈다. 우리도 얼마 전 노무현 전대통령 추모식에 참석한 조지 부시 전대통령 등 제3자를 내세워 트럼프와 북한을 묶는다면 또 다른 ‘조지미첼’ 방식이 될 수 있다. 
     
    남북협상 성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지금처럼 당장의 성사에 속도를 내는 것은 곤란하다. 미래에 있을 변수까지 고려해 천천히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 상대에게도 신뢰를 줄 것이다. 아울러 협상에 국내와 해외의 인재 풀을 넓게 쓰는 것도 중요하다. 다양한 관점과 역량을 동원할 경우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다. 

    / 권신일 前허드슨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