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협상학(28) "탑 다운 보다 '바텀 업' 방식 필요… '꿩짓'은 절대 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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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상은 항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쟁광과도 협상하는 이유도 전쟁조차 협상을 위한 수단이라 올바른 협상으로 전쟁을 예방한다면 더 나은 선택이다. 북핵 협상에 대해 ‘믿을 수 없는 북한과 협상은 의미가 없다’만 주장하는 것은 그래서 틀리다. 

    문제는 협상을 시작했다면 반드시 지켜야할 규칙들이 안지켜질 때이다. 우리 협상 상대들은 협상을 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는데 그 대응 수준이 협상학 관점에서 볼 때는 정말 참담한 수준이다. 가장 기본적인 협상장 디자인(시기, 장소, 의제, 참석인원 등)과 상대의 이해를 고려한 목표설정, 상대의 억지에 대한 배드캅(bad cop) 역할 부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13시간을 날아온 우리 대통령과 미팅에 여러 명의 배석자를 두거나, 무기구입이라는 협상카드만 쏙 빼먹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미 FTA 재협상에서부터 주한미군주둔비 인상, 무기 구매 등 미국의 요구는 묵묵히 다들어 주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자기 자랑만 듣고 있다. 북한은 우리의 중재자, 촉진자론을 대놓고 ‘오지랖 떤다’고 비하하며 올해 말까지 시한을 정하며 협박을 했다. 우리 비용으로 북한 땅에 연락사무소를 짓고, 철도 조사 등 많을 것을 ‘준 것’에 대한 ‘받기’ 협상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협상에서는 작은 것이라도 주고 받는 모습이 건강한 최종 결과를 낳는다. 

    시급히 개선해야할 것은 두 가지이다. 먼저 ‘탑다운(Top Down) 방식’ 주장이다. 협상은 팀플레이다. 팀원 각각의 의견을 반영하는 ‘바텀 업(Bottom-Up) 방식’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변칙도 있을 수 있는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할 ‘규칙’이다. 무엇보다 미국은 탑다운 사회가 아니다. 둘째 일명 ‘꿩짓 금지’이다. 흔히 꿩은 위기 때 위험을 피하기 위해 덤불에 머리만 숨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상황을 보고 싶은 것만 보아선 안된다. 예컨대 트럼프대통령이 3차 미북 협상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해서 이번 방미 회담을 ‘성공적’으로 판단한 문정인 특보의 언행은 잘못된 판단 기준을 줄 수 있다.

    끝으로 지금이야말로 중재자론도 촉진자론도 아닌 진짜 중재자를 활용하는 방안을 유연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협상전문가들은 상대가 계속 무지막지하게 나올 때 중재자를 쓰라고 한다.  북한은 ‘민족끼리 우선지원’을 요구하고 우리나라의 역할에 대해 시한까지 정해놓고 위협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실책이다. 협상에서 시한을 제시하면, 잘안될 경우 다음 단계를 스스로 제시해야하기에 금기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틈을 활용해야 한다. 한시적인 상황의 협상에서는 종종 중재자를 둔다. 이때 우리는 한민족도 맞지만 세계인으로서 가치를 이용할 수 있다. 

    만약 중국을 중재자로 쓴다면 중국이 불안해하는 것과 이익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우선 과제이다. 그 분석을 우리의 이해와 합치시키는 것이 전략적인 접근이다. 북한이 지금처럼 비핵화에 소극적일 경우, 남한과 일본의 핵보유 유행과 가장 우려할 대만도 보유할 수 있다는 점을 중국이 절실하게 느끼도록 해야 한다. 반대로 북핵 포기 시 북한 경제 활성화는 안그래도 급속한 노령화와 경제침체가 심각해지는 중국에 커다란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제시할 수 있다. 북한 경제 활성화는 낙후된 동북 3성의 활성화와도 직결된 문제이다. 러시아와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모쪼록 미국의 팀플레이와 김정은의 위협전략에 우리는 원칙화된 협상 전략으로 대응하되 유연한 대응 수단들도 활용해 더 이상 우리나라의 명예와 이익이 훼손되지 않길 희망한다.

    / 권신일 前허드슨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