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 작지만 자부심 컸던 고려인들…'北 대변인 역할' 속 사라진 대한민국의 자존심
  • ▲ 2017년 12월 15일, 중국 베이징대학교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식 사회주의로 세계 강국이 되겠다’는 취지의 중국몽(中國夢)에 “한국은 작은 나라”라며 함께하겠다고 발언했다. ⓒ연합뉴스
    ▲ 2017년 12월 15일, 중국 베이징대학교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식 사회주의로 세계 강국이 되겠다’는 취지의 중국몽(中國夢)에 “한국은 작은 나라”라며 함께하겠다고 발언했다. ⓒ연합뉴스
    자의식(自意識)-. 타인과 구별되는 자기에 대한 의식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나는,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결정 짓곤 한다. 스스로를 낮게 보는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당당하지 못하다. 마땅히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하고 비굴한 태도를 보이기 십상이다. 반면 스스로를 존귀히 여기는 사람은 말 한마디, 태도 하나에서도 자신감이 넘친다. 자신을 가치 있게 대하니 타인도 나를 존중히 여긴다.

    국가에도 자의식이 존재한다. 과거 고려는 무려 ‘황제국(皇帝國)’이라는 자의식을 가졌었다. 믿어지는가? 세계를 기준으로 보면 한반도는 그저 조그마한 땅 덩어리인데, 고려인들은 이 땅을 무려 ‘천하(天下)의 중심’이라 여겼다.

    고려의 자부심은 다양하게 드러났다. 과거에 궁궐 문은 국가 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고려의 궁궐은 광화문, 승평문, 신봉문, 창합문, 회경문으로 열렸다. 당시 5개의 궁궐 문은 천자의 나라, 즉 황제국에서만 보유했다. 이는 고려가 황제국으로의 자의식을 지녔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또한 충청북도 청주시 남문로에 있는 13m 높이의, 국보 41호 용두사지 철당간에는 ‘준풍’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고려의 독자적인 연호이다.

    고려를 방문했던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 1091-1153)은 이런 말을 남겼다. “고려 사람들은 선비를 귀하게 여기므로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민가에는 글 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아이들은 물론 군졸에 이르기까지 글을 배우는 고려인의 모습이 훌륭하지 않은가! 이야말로 우리 송나라가 본받을 만한 일이다.”

    놀라운 기록이다.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천 년 세월 저편의 고려에서, 문맹(文盲)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황제국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진 고려에는, 실제로 황제가 다스렸던 송나라 사신이 부러워할만한 백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자부심의 역사는 이어지지 못했다. 고려의 뒤를 이은 조선은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했다. 나라 전체가 황제가 아니라 신하가 되기를 염원했다. 독자적인 연호를 폐하고,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잇는 취지의 국호를 명에 자청(自請)했다. 

    제국의 자부심을 드러내던 궁궐문은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으로 닫혔다. 임금은 아침마다 황제의 궁전을 향해서 절을 했다. 멸망해버린 명나라 황제의 기일이 되면, 조선이 따라서 멸망할 때까지, 선비들은 제사를 지내며 슬피 울었다.

    “황제국”의 글 읽는 백성들은 “소중화”에서 까막눈이 되었다. 일제 치하에서 해방되었을 때, 문맹률은 80%를 훌쩍 넘었다. 황제국이라는 자의식을 가졌던 고려와, 소국(小國)이라는 자의식을 가졌던 조선. 서로 다른 자의식을 가졌던 국가는 그만큼 다른 역사를 이루어갔다.

    고려와 조선의 자의식을 거친 21세기,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의식은 어느 수준에 이르렀을까? 국가의 얼굴이요, 품격을 나타내는 대통령의 자의식은 고려가 아니라 조선에 닮아있다. 참담하게도, 스스로를 중국의 속국(屬國)으로 여긴 의식마저도 비슷하다. 2017년 10월 말에 발표한 3불(不) 정책도, 같은 해 12월에 한 ‘중국몽(夢)’에 대한 발언도 대통령의 자의식, 그리고 국가관을 보여주는 일례(一例)였다. 

    문재인은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같은 나라”로 칭한 뒤, “중국몽이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 모두, 나아가서는 전 인류와 함께 꿈꾸는 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나와 당신, 우리 모두는 문재인의 말에 동감하지 못하겠지만, 서글프게도 우리의 속내가 어떻든 국가의 자의식을 대외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주체(主體)는 여전히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부정과 상관없이, 그의 일그러진 자의식은 마치 대한민국의 자의식이 것처럼 행세한다. 대한민국은 그의 자의식의 발로(發露)에 따라 중국의 속국이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로 전락(轉落)했다. 과거 황제국의 자부심은 소복이 쌓인 먼지 아래 빛바랜 청사진이 되어 버렸다. 

    문재인의, 그리고 좌파 정권의 자의식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친북(親北), 친중(親中)을 뒤집어쓴 볼품없는 나라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 자의식이 말로(末路)가 웃프다. 

    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행된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됐다. 결렬의 주된 사유는 북한이 감춘 새로운 핵 시설 때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더불어 이 시설도 해체할 것을 요구했고, 북의 거부에 회담은 그대로 결렬됐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내다 버리고 북한의 대변인처럼 행동하던 문재인. 세계의 대북제재에도 굴하지 않고 국민 몰래 국가 재산을 퍼주면서 평화를 외치고, 비핵화를 노래하던 문재인. 그는 왜 북한이 새로운 핵 시설이라는 뒷주머니를 찼다는 사실을 몰랐나? 그의 학습능력은 왜 조금도 발전이 없을까?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2017년을 떠올려 보라, 대한민국을 중국의 속국이라 여긴 문재인의 자의식이 어떠한 국가적 수치를 가져다주었나. 대통령 특사로 중국에 달려간 이해찬은 시진핑의 참모 자리에 좌석을 배정받는 모욕을 받았고, 대통령 본인은 중국에서 아프리카 추장보다 못한 홀대를 받았다.

    “국빈”이라고 초청받았지만, 식사 대접은 말하기에도 민망했다. 아이들이 동네 친구를 불러도 혼자서 밥 먹게 하지는 않는다. 일국의 대통령이 꼬마들의 친구만도 못한 접대를 받았다. 중국 경호원들은 대통령 수행 기자들을 집단으로 폭행해 방문단의 군기를 잡았다.

    심지어 중국 측 외교부장은 대통령의 등을 한 손으로 툭툭 치는 등 몰상식한 짓거리까지 서슴지 않았었다. 문재인을 위시한 좌파들의 자의식의 말로가 결국 이와 같을 뿐이라면, 대한민국의 자의식이 굳이 그와 같아야할 이유가 있을까? 

    일제 식민지 시기를 거치고, 구소련과 스탈린에 의해 남북이 분열되어 건국된 대한민국, 폐허더미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다. 그렇기에 그 모습이 당신이 보기에 온전히 아름답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름답지 못하다는 사실 하나로 서둘러 그 가치를 훼손시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이 피어날 수 없는 환경에서 싹을 틔우고, 봉오리를 맺어 마침내 꽃을 피워낸 위대한 국가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그렇기에 내가 사랑하는 조국의 가치가 대내외적으로 훼손되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고 분하다. 사랑하기에, 분노한다.

    분명 대한민국은 고려 시대보다 뛰어나다.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다. 그렇다면 21세기 이 땅에 사는 우리가 조국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고려인들을 뛰어넘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소개>
    윤나라(1990년생)
    중국 충칭시(市) 사천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회원
    (사) 대한민국 통일건국회 청년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