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북간 협상이 장기전으로 들어간다는 우려 섞인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객관적으로 이러한 표현들은 절반만 맞다. 미북 첫정상회담이 있었던 올해 6월초 하버드대 협상연구소의 전문가들은 국가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임하는 이번 협상의 특성상 최소 2~3년을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세계적인 중동협상들은 대부분 수년간에 걸쳐 진행되거나 중간에 1, 2년씩 중단된 경우도 많고, 다만 우려와 준비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협상의 동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 가운데 하나가 역설적으로 내부의 합리적인 또는 격렬한 반대이다. 예를 들면 한미 자유무역협상 때 농민들의 격렬한 반대가 협상 가능영역을 좁게 만들어 결과적으로는 농산물 보호에 일정부분 역할을 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럴 때  합의를 좀 더 간절히 원하는 쪽이 좀 더 양보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시점 북핵 협상을 간절히 원하는 쪽은 누구일까?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한국, 미국, 북한으로 좁혀서 생각해본다면 단연 북한일 것이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수석대변인’이라는 조크를 들을 정도로 가장 열심히 중재자 역할을 하고 지원한다는 언론의 평가도 있었지만 이는 ‘중재’라는 표현부터 잘못된 것이다. 즉 법적 구속력이 있는 ‘중재’라는 표현보다 강제력이 없는 ‘조정자’ 또는 ‘협상자 중 한명’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그간 국력에 비해 과도한 투자를 해 이미 핵과 미사일을 갖춘 북한이 이제 그 결과를 국제사회와 북한주민들에게 내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가장 간절한 쪽임은 명확하다. 남한이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는 점에서 가장 안보위협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이미 드러난 카드로서 이미 미국 등 국제사회와 공조를 통해 대응하고 있다. 미국도 급하지 않다. 트럼프대통령의 일정 부분 승리로 평가 받고 있는 중간선거에서 공언했듯이 직접 위협이었던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훈련을 동결시켰고, 한미 연합훈련 비용도 아끼고 있으며, 훈련 재개카드를 쥐고 있다. 미북이 서로 급할 것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실험까지 마친 북한은 실험 재개라는 판을 깨는 카드 외에 대안이 없고, 핵만 갖추면 잘살게 해주겠다는 주민들에 대한 약속이행 부담이 하루하루 커지고 있다.  김정은 체제를 지탱하는 현재의 최상류층들의 욕구는 점점 커지고 있고, 500만대를 넘어선  핸드폰을 통해 정보의 통제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찌는 체질이 있는데 현재 김정은위원장의 늘어나고 있는 몸무게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정부의 협상 포지션은 더욱 명확해진다. 그동안 ‘관계형성’ 전략에 우선해왔다면 앞으로는 첫째, 조정자 ’입장 명확화’이다. 구속력은 없지만 촉진자 성격이 큰 조정자의 입장을 오히려 역이용하는 것이다. 북에 유화메시지를 보내지만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는 조치 전에는 그 어떤 지원도 어렵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힘의 분산’이다. 즉 남한 사회 및 야당이 한미FTA 때 농민단체처럼 문제점을 시위하더라도 수용하는 모습을 통해 협상에 임해야 한다. 결국은 정부가 대북 협상력을 높이는 근거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셋째, ‘창의적인 제안’ 준비이다. 미국과 북한이 중동의 협상사례처럼 더 이상 협상 없다고 회담장을 박차고 나갔을 때 속마음과 조정 방안을 준비해야 할 때다. 국가 간 중요협상 때는 결렬의 순간이 늘 있었고, 양쪽의 속마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풀어주는 조정자가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한쪽 입장만 대변한다는 이미지는 절대 금물이다. 넷째, ‘새로운 관계 형성’이다. 연합할 수 있는 또 다른 당사자를 준비해야한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가 갖고 있는 ‘이해(interest)’ 파악 또는 창의적인 이해를 준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각국에 정통한 특사 또는 그 나라에서 중요한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인을 활용하는 것도 잘알려진 방법이다. 

    이제 역사적인 북핵 협상을 시작한 2018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통일 없이 스트롱 미국, 러시아의 리더십과 중국의 굴기, 일본 부활의 시대에 지금처럼 살 수 없다는 인식은 필요하다. 다만 우리 정부가 국민이 공감하는 ‘협상’의 관점에서 내부의 격렬한 반대도 이용하며, 최악의 상황도 감안한 대안 마련과 주도적인 조정자 역할의 지혜를 펼치고 있다기에는 우리나라가 제일 간절해 보인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권신일 에델만코리아 부사장(관광정책학 박사, 하버드대 로스쿨 협상학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