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수보회의서 '이례적' 언급… '탈원전'처럼 정책 기조는 계속 진행
  •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에 이례적으로 사과했지만 정책 기조의 전환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거꾸로 '탈원전' 관련 논의 때처럼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 방안을 찾아 최저임금 인상을 최대한 관철시키는 데 향후 정책의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저임금 공약에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이룬다는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위원회는 우리 경제의 대내외 여건과 고용상황,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어려운 사정 등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고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해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며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편으로 최저임금위원회는 작년 최저 임금 대폭 인상에 이어 올해에도 두 자릿수의 인상률을 결정함으로써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에 대한 의지를 이어줬다"며 "정부는 가능한 조기에 최저임금 1만 원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 문 대통령의 '이례적인' 사과의 이면

    청와대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의 이번 사과를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나 일부 재난 사고 피해자 등에 "정부를 대표해 가슴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등의 언급을 한 적은 여러 차례 있지만, 공약 이행과 관련해 사과한 적은 거의 없다.

    문 대통령이 공약에 대해 사과를 언급한 것은 먼저 시장 상황에 대한 오판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여 가계소득이 내수로 전환되고, 경제를 성장시켜 일자리의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를 목표로 한다"면서도 "최저임금의 인상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해와 내년에 이어서 이뤄지는 최저임금의 인상 폭을 우리 경제가 감당해 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내수 시장의 활성화와 일자리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봤지만 실제로는 고용 동향 등 각종 경제 지표에서 일자리 증가 폭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등 역효과가 나면서 정책을 마냥 밀어붙이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이 우리 경제와 민생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노사정의 활발한 소통과 협력을 부탁드린다"며 "이를 위해 노사정 모든 경제 주체들이 함께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했다.

    ◆ 靑 "기존 기조와 방향에는 변화가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 대통령의 최저임금 공약이 처음부터 실현하기 어려운 공약이었음을 단순히 인정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2014년의 최저임금이 5210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2020년에 1만 원까지 인상하는 공약은 사실상 5년 만에 최저임금을 2배 가까이 인상한다는 의미여서 처음부터 '선언적 의미'가 강한 공약이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대선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이 나왔다. 자유한국당 역시 근로소득장려세제가 전제되긴 했으나, 홍준표 대표의 대선 공약으로 2022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이 명시돼 있다. 보수 야당이 마냥 문 대통령의 공약 철회를 비판하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또 주휴수당 등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1만 원 공약이 이미 실현됐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이런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소득주도성장' 등 기존 정책 기조의 전환은 생각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17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 성장을 이끌어가겠다는 기존 기조와 방향에는 변화가 없다"며 정책 기조 변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 포기하는듯 포기하지 않은 '탈원전' 정책의 사례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에 접근하는 전략과도 비슷한 방식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탈원전을 앞세웠으나 집권 초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를 놓고 여론의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공론화위원회에 이 문제를 일임한 끝에 신고리 원전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탈원전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대신 사용 연한이 다 된 원자력 발전소부터 가동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탈원전 정책을 계속 추진 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역시 비슷한 전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는 사과는 했지만 문 대통령이 "조기에 최저임금 1만 원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만큼, 정책의 연속성이 이어질 것이란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