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국회의원에 의한, 국회의원만을 위한 나라]를 꿈꾸는가?
  • 손발이 짝짝 맞다. 저기 왼편에 있던 사람이 오른쪽으로 부리나케 달려온다. 잠자코 보고 있던 오른쪽 사람이 눈치를 보더니 이내 마중 나간다. 두 사람이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가운데쯤에서 만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센터(Center)'를 잡은거다. 사람들의 시선이 쉽게 모이는 곳. 그래서 관심 받기 좋은 곳. 그 가운데서 만난 두 사람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늘 들리던 시끄러운 다툼의 소음이 나지 않으니 보는 사람들도 기분이 좋다.

    십여명이 떼로 나오는 아이돌 가수들이 무대에서 '누가 센터를 잡는지'를 겨루는 자연스러운 '실력 경쟁'이 아니다.

    토론하고 논쟁해서 건전한 결과를 도출하라고 국민들이 뽑아놓은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벌이는 비겁한 '짬짜미'다.

     

  • ▲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경악스럽다.

    야당의 거센 공세를 막아내고 보수 가치를 지켜야할 여당의 국회 총사령관이 듣는 귀를 의심케 하는 말로 오히려 상대편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박정희를 외치며 오른쪽으로 치달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향해 노무현을 부르짖으며 달려나간 셈이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뱉어낸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허구]라던가, [노무현 대통령의 통찰을 높이 평가한다]는 말은 비판할 가치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KY 수첩 파문으로 국회와 청와대를 한바탕 뒤집어놓은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자신의 의원실 인턴으로 썼던 유승민 원내대표니 무슨 말이 필요하나 싶다.

    연설을 듣고 박수를 쳤던 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같은날 기자들과 저녁자리에서 "(유승민 원내대표가)태어난 곳이 대구여서 새누리당에 있지, 성향은 우리 쪽"이라 말한 것에도 이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민해봐야 할 점은 한때 골수 친박이었던 그가 원내대표란 막강한 권력을 쥐자마자 내지른 첫 일성이 이 모양이냐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의 발언 가운데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여와 야, 보수와 진보의 새로운 변화를 보면서 저는 '진영의 창조적 파괴'라는 꿈을 가집니다. 진영을 벗어나 우리 정치도 공감과 공존의 영역을 넓히자는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습니다."

    - 8일 유승민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 연설 中

    여지없이 드러난 그의 속내는 이거였다. 공감, 치유, 화합, 대통합 등 갖가지 미사여구로 치장했지만, 핵심은 여야가 각자의 가치를 쫓으며 벌였던 정쟁을 끝내자는 얘기다.

    국회에서 여야가 싸우지 말자는 얘기는 곧 [제왕적 국회]의 탄생을 의미한다.

    안보 등 몇가지 예민한 사안에서만 서로 으르렁 거리는 '코스프레'로 국회 존재 가치를 내세우고, 나머지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타협'과 '합의'라는 명분으로 인기영합주의 길을 걷겠다는 생각이다.

    그 결과는 [국회의원, 국회의원에 의한, 국회의원만을 위한 나라]일 뿐이다.

    현실의 고난을 담은 쓴소리를 외면하고 자신들이 내뱉은 달콤한 거짓희망에서 돌아오는 실패의 책임은 고스란히 행정부의 수장, 대통령에게 돌리겠다는 것도 그들의 속내다.

     

  • ▲ 9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마친 뒤 동료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9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마친 뒤 동료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더 나아가 이런 모습은 그동안 국민들에게 선거철마다 굽신거리며 구걸했던 여야의 표 경쟁도 이제 끝내자는 뜻이기도 하다.

    유승민의 경악스러운 발언은 불과 3일전 문재인이 "퍼포먼스였다"며 툭 던진 '국회의원 400명, 비례대표 200명' 발언을 반추해보면 자연스럽게 퍼즐이 맞춰진다.

    문재인 대표의 이 발언이 차기 대권을 향해 나아가는데 자신의 호위무사를 늘리겠다는 계략이 담긴 '의도적인 발언'이었다고 한다면, 유승민의 발언은 차기 대통령 선두주자인 '문재인의 길'에 걸림돌이 되는 현직 대통령의 힘을 줄이는 효과로 작용하게 된다.

    대통령의 권력이 점차 약해지는 국정 하반기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차기 대권에 가장 가깝다 평가되는 문재인과 함께 개헌을 꿈꾸는게 아니냐는 의심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이 개헌은 '대통령 연임'이라는 문재인 후보의 '욕망'을 충족케 하고, 더 나아가 제왕적 권한을 향유하는 비대해진 국회의 탄생의 단초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친노계라는 매우 거대하고 충성스러운 계파의 수장인 문재인에게는 너무나 매력적인 유혹이자,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친박계 한 재선 의원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이미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기 위한 여러가지 움직임이 국회 안팎에서 감지고 있다"며 "이런 움직임은 국가권력의 중심을 청와대에서 국회로 옮기려는 국회의원들의 욕심을 충족시키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