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2개월만의 전체회의, 하루 전 돌연 취소… 징계안 처리 의지 있나
  • ▲ 지난 9월 15일 새누리당 김현숙·이장우 원내대변인이 새정치연합 설훈 의원에 대한 징계요구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지난 9월 15일 새누리당 김현숙·이장우 원내대변인이 새정치연합 설훈 의원에 대한 징계요구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민주주의의 역사는 의회 권력 확대를 위한 싸움의 역사다.

    국왕의 절대권력 행사를 견제하고 민의의 대표자들로 이뤄진 의회 권력을 확대하기 위해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왔다.

    대통령제의 시초인 미국조차 애초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 한 것은 '우리들의 왕(대통령)이 없다'는 이유가 아니라, '의회에 우리 대표자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우파든 좌파든 가리지 않고 국회의 행태에 혀를 차며, 심지어 '국회 해산'을 공공연히 외치기까지 한다.

    국민이 자신들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실망과 분노를 넘어 환멸과 조롱에 가깝다.

    20일로 예정됐던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윤리특위) 전체회의가 취소되는 과정을 보면, 이는 자업자득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윤리특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이석기·심재철·홍문종·김성태 의원 등에 대한 징계안을 상정하려 했다.

    올해 들어 처음 열리는 징계안 관련 전체회의다. 그나마 지난해 11월 28일 전체회의는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여당 단독으로 열린 반쪽짜리 회의라서, 실질적으로 여야가 함께 징계안 관련 전체회의를 여는 것은 지난해 9월 16일 이후 1년 2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전체회의 하루 전에 돌연 취소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자동상정 기능을 둘러싸고 윤리위원장과 야당 간사 간의 이견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 ▲ '국회 해산' 구호를 내걸고 있는 트위터 상의 네티즌들의 모습. ⓒ트위터 캡처 화면
    ▲ '국회 해산' 구호를 내걸고 있는 트위터 상의 네티즌들의 모습. ⓒ트위터 캡처 화면

    당초 윤리특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과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은 윤리특위 전체회의를 열고 의원 징계안을 처리하는 방안을 지난 8월부터 논의하기 시작했다.

    최동익 의원은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말 한마디로 문제를 삼고 징계를 하는 것은 좀 그러니까, 행위로 문제를 일으킨 케이스인 이석기·심재철·홍문종·김성태 의원 중 여야 균형을 감안해 이석기·심재철 의원만 상정하기로 했었다"며 "그러다 여당 쪽에서 누군 올리고 누굴 빼기는 부담스럽다고 해 7월까지 회부된 징계안만 상정하는 것을 전제로 11월초 회의를 열기로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달 4일 열기로 했던 윤리특위 전체회의가 성원 부족으로 20일로 연기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 사이에 설훈·오병윤·김현 의원에 대한 징계안이 회부된지 50일을 경과하면서 국회선진화법상 자동상정 요건을 채웠기 때문이다.

    최동익 의원은 "의원 징계안이라는 것은 징계 당사자와도 협의해야 하고 소속 정당과도 조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막 올릴 수 없고 숙려 기간을 둬야 한다"며 "원래 합의대로 하자고 했지만, 김재경 위원장이 자동상정을 고집하는 바람에 회의가 무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야당이 일방적으로 보이콧한 것이 아니라, 여야 똑같은 입장"이라며 "자동상정되는 의원이 야당만 세 명이라 취소됐다는 것은 그쪽(여당)의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반면 이한성 의원은 통화에서 "회의를 하려고 하니 최근 회부된 세 명이 자동상정 요건이 됐다고 하더라"며 "나는 (국회)선진화법대로 상정해야 한다고 봤는데, 자기네(야당)만 3명이라 그런지 결렬돼 버렸다"고 말했다.

    김재경 윤리위원장은 통화에서 "자동상정될 세 명이 야당 의원만 있다보니 야당에서 위원장의 양해로 자동상정이 되지 않게끔 해달라고 했는데, 나는 내 권한을 그런 일에 쓰고 싶지 않았다"며 "야당에서 (위원장이) 자동상정을 하겠다면 회의를 할 수 없다고 해서 결국 결렬됐다"고 설명했다.

  • ▲ 물의를 빚은 새정치연합 설훈 의원과 김현 의원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의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물의를 빚은 새정치연합 설훈 의원과 김현 의원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의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자동상정 대상인 설훈·오병윤·김현 의원은 국민적 물의를 일으켜 징계 대상에 올랐다.

    새정치연합 설훈 의원은 지난 9월 12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주재한 상임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청와대에서 7시간 동안 뭐했나"라며 "대통령이 연애했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일 것이라 생각한다"는 막말을 했다.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은 같은달 18일 농민단체 관계자들이 계란과 고춧가루를 가지고 의원회관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방조·협력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오병윤 의원이 끌어들인 농민단체 관계자들은 새누리당과 농림축산식품부 간의 쌀 관세화 관련 당정협의회에 난입해 계란과 고춧가루를 투척하며 회의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반입한 것이 계란과 고춧가루였기에 망정이지, 흉기나 폭발물이 반입됐더라면 대참사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새정치연합 김현 의원은 같은달 17일 서울 여의도에서 대리기사를 향해 폭언을 수 차례 반복하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대리기사에 대한 집단폭행의 단초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렇듯 큰 물의를 빚은 의원들에 대한 징계안 상정이 사소한 의견 차이로 결렬됐을 뿐만 아니라, 그 덕분에 이미 계류돼 있던 다른 의원들에 대한 징계안 처리마저 함께 무산됐다.

    1년 2개월여 만의 전체회의가 이렇게 쉽게 무산되는 것은 여야 쌍방이 전체회의 개의와 징계안 상정·처리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 ▲ 윤리특위에 징계안에 제출됐지만 여전히 국회 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정치연합 설훈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윤리특위에 징계안에 제출됐지만 여전히 국회 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정치연합 설훈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게다가 이들 의원들에 대한 징계안이 언제쯤 처리될는지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재경 위원장은 "(징계 대상 의원들이) 원해서 한 일들은 아니지만 국민 관심사안을 만들었으니까, 회의를 해서 심사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내년 2월까지 갈 것 없이 연내에 충분히 회의를 소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여야 간사들의 입장은 달랐다.

    최동익 의원은 "이한성 의원이 예결특위 예산안조정소위에 들어가는 바람에 엄청 바쁘다"며 "예산안이 12월 2일에 처리된다면 정기국회가 폐회되는 게 9일이니까 그 사이에 열 수도 있겠지만, 예산안이 정기국회 폐회일인 9일에 처리된다면 물리적으로 윤리특위 회의를 열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한성 의원도 "여론 부담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해봐야 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면서도 "예결특위 예산안조정소위 때문에 연내에 회의를 다시 열기가 물리적으로 어려운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연내에 전체회의가 다시 열리지 않는다면, 국회 윤리특위는 2014년 한 해 동안 단 한 건의 의원 징계안도 처리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지난 9월 13일 한 행사장에서 참석자가 국회의원에 대한 조롱 섞인 농담을 건네자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조롱거리가 되는 현실에 기가 막힌다"며 "우리 면전에서 우리를 그렇게 조롱하는 게 기분 좋을 일인가"라고 정색했다.

    이어 준비한 축사를 하지 않고 자리를 뜨는 바람에 행사를 주최한 김장실 의원이 당황해서 황급히 따라나오자 "(국회의원을) 저렇게 조롱하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버럭 화를 냈다.

    조롱당하지 않으려면 조롱받을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된다. 물의를 빚은 의원들에 대한 징계안 처리를 미적대며, 실질적으로 한 해 내내 한 번의 전체회의도 하지 않은 채 세월을 보내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어떨까. 면전에서 조롱을 받고 '국회 해산' 구호가 난무하는 것도 자업자득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