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의석 발생해 의원 정수 늘어나-군소 정당 난립-정국 혼란 초래
  • ▲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은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주장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은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주장했다. ⓒ연합뉴스 사진DB

    헌법재판소의 국회의원 선거구 구역표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국회의원 정수가 최소 26석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이 청구된 통합진보당의 경우, 20석 이상 의석이 늘어났을 것으로 분석됐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몇몇 정치인들에 의해 마치 우리나라 선거제도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선전돼 왔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은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등 선거제도 혁신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의 문재인 비상대책위원도 지난달 31일 확대간부회의에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제안한다"고 거들었다.

    야권 뿐만이 아니다. 여권에서도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지난 9월 24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중·대선거구제와 함께 "권역별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장단을 맞췄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를 의석 수로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명목 아래 총 의석을 정당투표 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한다. 이 과정에서 독일의 경우 전국 득표율 5% 미만 정당(우리나라의 경우 3%)은 제외한다.

    독일과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의 비중 등이 다르기에 직접적인 적용은 어렵다. 하지만 19대 총선 결과에 최대한 현행 선거구와 의석 비중을 존중하는 한도 내에서 거칠게나마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적용해보면 어떨까.

  • ▲ 2012년 4월 시행된 19대 총선에서 권역별이 아닌 전국단위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시행했을 경우를 가정할 때 각 정당의 예상 의석. ⓒ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2012년 4월 시행된 19대 총선에서 권역별이 아닌 전국단위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시행했을 경우를 가정할 때 각 정당의 예상 의석. ⓒ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지난 19대 총선 정당 투표(비례대표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전체의 46.1%를 득표했으므로 300석 대비 46.1%인 138석을 배분받게 된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지역구에서 군소 정당보다 선전했기에 실제로는 152석을 획득했다. 정당 선호를 넘어서는 의석을 획득했다고 해서 지역구 당선자를 낙선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의원 정수를 넘어서는 당선자가 생기게 된다. 이를 독일에서는 초과의석(Überhangmandat)이라 한다.

    독일에서도 총선을 치를 때마다 초과의석이 발생해, 연방하원의 의원 정수는 598석이지만 현재 연방하원의원 수는 630명에 달한다(초과의석 32석).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통합민주당에서도 9석의 초과의석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무소속은 속성상 당선자 전부가 초과의석이 된다. 무소속에 정당 투표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19대 총선에 거칠게나마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모델을 적용했을 경우, 국회의원 정수는 300석이 아닌 초과의석 26석을 합해 326석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재오 의원이나 문재인 위원이 주장한대로 권역별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 초과의석은 더욱 늘어날 개연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특정 권역별로 특정 정당이 지역구 의석을 싹쓸이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정당 선호도를 넘어서는 지역구 당선자가 고스란히 초과의석이 되기 때문이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시스템적으로 초과의석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오히려 국민 여론에 역주행하는 제도인 셈이다.

  • ▲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주장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가운데). 사진은 올해 6월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과 뭔가를 논의하고 있는 이재오 의원. ⓒ연합뉴스 사진DB
    ▲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주장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가운데). 사진은 올해 6월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과 뭔가를 논의하고 있는 이재오 의원. ⓒ연합뉴스 사진DB

    헌법 질서를 부정하는 극단적 세력의 의석이 과대평가될 수 있다는 점도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단점으로 지적된다.

    통합진보당은 19대 총선 정당 투표에서 11.1%를 득표했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하에서라면 전체 300석에 대해 33석을 배분받아야 한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받고 있는 정당이 원내교섭단체 구성 기준(20석)을 훌쩍 넘어서는 의석을 차지하게 되는 셈이다.

    군소 정당이 난립하고 특정 정당이 안정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19대 총선에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적용해보면, 자유선진당과 통합진보당은 각각 11석과 33석으로 의석이 늘어나는 반면 새누리당은 152석 그대로이다. 초과의석으로 의원 정수가 326석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과반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특정한 한 정당이 국민 전체로부터 50%를 넘어서는 선호를 받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결국 원내에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이 탄생하지 않는 구도가 정착된다.

    독일처럼 의원내각제 하에서 연정 구성이 당연시되는 성숙한 정치 문화를 가진 나라라면 바람직한 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제 하에서 정부와 국회의 대립이 고질적 병폐인 나라에서는 정국에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높아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