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

    “평화통일을 원하거든 준비를 하라. 평화통일은 공짜가 아니다”

    이정훈(월간자유)  

      평화통일은 공짜가 아니다

    김정은이 북한을 통치한지 2년이 지났다. 김정일이 숨졌을 때만 해도 ‘애송이가 북한을 제대로 통치할까’란 걱정을 했었는데,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하면서까지 북한을 장악해내고 있다. 그를 우습게 본 이들을 머쓱하게 만든 것이다. 지난 2년간 북한 급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장성택을 처형하자 다시 급변사태론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하나 있다. 우리의 북한 급변사태는 습관적으로 고개를 드는 현상이다. 김일성이 죽으면, 김정일이 죽으면, 장성택이 죽으면 우리는 사회에서는 자동으로 북한 급변사태가 거론된다.

     미국의 로버트 저비스(Robert Jervis) 교수가 ‘국제정치에서의 이해와 몰이해(Perception and Misperception in International Politic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6)’란 저서에서 ‘몰이해(Misperception)’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사람은 과거에 심각하게 실망했던 일이 물거품처럼 끝난 것을 경험한다. 그런데도 그러한 품게 했던 요소가 다시 갖춰지면 같은 기대를 품는 심리적 특성이 있다. 저비스 교수는 이를 잘못된 인식, 몰이해(Misperception)로 정의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 같지만, 한번 실패한 것을 반복해서 실패하는 경향도 만만치 않다. 과거에 품었던 갈망이 물거품 됐어, 그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아예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기대를 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그 기대는 점점 강해져 강력한 갈망이 된다. 그리고 그 갈망은 허망으로 끝나는데 그 후 같은 조건이 형성되면 또 갈망을 품고 허망을 경험하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적 속성을 저비스 교수는 몰이해(Misperception)로 정의하며 국제정치를 할 때도 이러한 몰이해를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김일성이 죽었을 때 우리는 북한이 무너질 것으로 보고 연착륙시킬 것인가, 경착륙시킬 것인가 걱정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이어 받은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하며 살아남았다. 우리가 기다리기만 하는 사이 김정일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며 독재 권력을 공고히 한 것이다.

     같은 기대를 김정일 사망했을 때도 품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바로 광명성-3호 위성을 실은 은하-3호 발사를 성공시키고 이어 3차 핵실험도 성공시켜 핵무장을 완료했음을 보여주었다. “어” 하는 사이 사실상의 ICBM 보유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한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끌고 다니며 발사 위협을 가한 지난 해 봄 우리는 대단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데 지난 해 말 장성택이 처형됐다고 하니 다시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북한 급변사태론은 우리의 열패감을 감추기 위한 심리 기제 같다. 왜군을 밀어내긴 했지만 임진왜란에서 험하게 당한 조선이 사명대사를 소재로 한 소설을 유통시켜 열패감을 만회하고 일본을 보복한 감정을 드러낸 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북한 급변사태는 수주대토(守株待兎)하는 자세로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달아나던 토끼가 나무를 들이받고 죽은 일을 경험한 적도 없는데 수주대토를 하고 있으니 정말 어리석지 않은가. 북한 급변사태를 기대한다면 움직여야 한다. 보통 하는 말로 ‘공작’을 해야한다.

     눈을 돌려 중국을 바라보자. 중국이 반환받은 마카오에는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자유롭게 살고 있다. 김정남은 마카오의 고급호텔에서 술을 즐기고 아들 김한솔을 유럽으로 유학 보내놓았다. 실업자인 김정남이 무슨 돈이 있어 그렇게 살고 있다고 보는가.

     정답은 중국의 지원과 보호다. 김정남은 아버지(김정일)로부터 오래전에 물려받는 재산도 있겠지만 중국으로부터도 많은 보호와 지원을 받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벌써 어떻게 되었을 것이다. 김정은 치하의 북한은 그를 제거하려고 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왜 김정남을 보호한다고 생각하는가?

     정답은 북한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그를 앞세워 북한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소련군이 88여단의 김일성 소좌를 앞세워 북한에 들어간 것과 같은 행동을 하기 위해서이다. 김일성을 앞세우고 들어간 소련군은 김일성이 이끄는 공산국가를 북한에 만들었다. 똑같이 중국도 김정남이 이끄는 친중 북한 정부를 만들 수 있다.

     중국 지도부는 허황된 몰이해에 빠져 있지 않다. 준비해야 할 것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정남은 고구려 패망기 당나라로 도주해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킬 때 앞잡이 역할을 한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을 연상시킨다. 연남생은 동생들과의 불화 때문에 최고 자리인 대막리지를 뺏기자 당나라로 망명했었다.

     연남생 덕분에 고구려를 집어먹은 당나라는 연남생이 죽자 당나라 수도인 낙양의 고급 무덤 터인 북망산에 그의 무덤을 썼다. 우리 민요 중에 “낙양성 십리 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그 누구며, 절세가 인이~”로 나가는 것이 있는데, 낙양성 십리 하에 있는 영웅호걸과 절세가인이 묻히는 무덤 터가 바로 북망산이다.

     당나라 영웅인 태종의 이름이 이연(李淵)이었다. 때문에 임금 이름을 피하는 그 시절의 예법에 따라 연남생은 연(淵)과 중국말로는 발음이 같은 천(泉)으로 성을 바꿨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창씨를 한 것. 그러나 개명은 하지 않아 ‘천남생’이 되었다.

     그 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천남생 무덤은 까맣게 잊혀졌다가 북망산 무덤 군을 조사하던 1923년 그의 묘지석이 발견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비유해서 말하면 김정남은 제2의 천남생이 될 운명에 있는 것이다. 중국은 김정남을 천남생으로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 그러한 준비를 하면서 급변사태론을 거론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김정남을 한국으로 망명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이 집요하게 그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경호원이 그를 24시간 근접 경호하고 있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한국은 설사 그를 데려온다고 해도 활용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오히려 북한을 자극해 남북 관계만 경색시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김정남이 아닌 다른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북한 급변사태를 갈망하는 몰이해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이 카드를 찾는 것이다.

     필자를 그것을 대(對)북한 정보전, 대북한 심리전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에 바른 정보를 넣어주어야 북한에서는 독재정권을 무너뜨리자는 운동가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들이 중국이 아닌 북한에 숨어 있는 김정남이 된다.

     지금 우리는 북한과 싸우는 게 아니라, 북한이라는 목표를 놓고 중국과 경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3각 관계에 있는 것이다. 3각 관계에서 이기려면 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북한 급변사태를 기대하며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고, 준비를 해야 한다.

     “자유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 라고 로마의 전략가 베제티우수는 말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란 말은 매우 유명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평화통일을 원하거든 준비를 하라. 평화통일은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Konas)

    이정훈 (신동아 기자, 주간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위원 등 역임)
    본 내용은 월간 자유 2월호에 게재된 글임.(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