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의 학살-인간은 어떻게 악마가 되는가?
      
     7인의 악마들이 '파리의 학살'을 자행 했다.
    인간은 어떻게 악마가 되는가?
    이것을 해명해야 이 어처구니없는 학살의 "왜?"가 규명된다.
    인간은 악마의 씨앗을 내재하고 있는가?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를 새삼 따질 여유는 없다.
    우리는 이미 악마로 변한 '전(前) 인간'의 대표적인 유형들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히틀러, 스탈린, 폴 포트, 밀로셰비치, 이디 아민, 김가네 3대, 듀발리에...
    이쯤만 해 두어도 악마의 전형은 나온 셈이다.
     
 그들은 어떻게 악마가 되었나?
한 마디로 자신들을 창조주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아니면, 구세주로 자처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둘 중 하나가 된다. 사기꾼이나 폭군이나.
또는 그 둘을 합한 괴물.
그들은 너무 큰 약속을 하는 공통점이 있다.
대중에게 '새 하는 새 땅'을 약속한다.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을 약속한다.
이 약속으로 그들은 광장의 중우(衆愚)를 홀린다. 
 
 그들의 교리도 공통된 짜임새를 가지고 있다.
지금의 세상이 곧 망한다는 것, 자신들이 그것을 망하게 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망한 폐허 위에 자기들이 지상천국을 만들 것이라는 것을 선포한다.
그러면 그들 주위에는 어리석은 군중들이 반드시 모여들게 되어 있다.
 
 그들은 자기들 말을 듣는 자들은 축복받은 자들이라고 치고,
자기들 말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저주받아 싼 자들로 낙인 한다.
저주받은 자들에겐 무슨 행악(行惡)을 해도 괜찮다.
그래서 이들 사이비 구세주들은 항상 이교도에 대해 잔인한 학살을 주저 없이 한다.
IS는 가장 최신판 사이비 구세주이자 학살자인 셈이다.
 
 학살자들은 이교도들의 목을 잘라 죽이고, 공연장에 난입해 총알을 난사하고,
목함지뢰를 밟아 터뜨리게 하고, 잠수함을 폭침하고, 비무장 민간인에게 포탄을 날려 보낸다.
신의 이름으로. 진리의 이름으로, 정의의 이름으로, 혁명의 이름으로, 노동자-농민의 이름으로.
그리고 민족, 민중의 이름으로.
 
 인류의 선(善)한 측면은 이런 악마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문명'이라는 항체 또는 백신을 만들어 냈다.
문명의 두께는 물론 얇다. 문명이라는 표피만 살짝 긁혀도 이내 내부의 흉물이 드러난다.
그러나 역시 문명됨만이 인간의 악마 화(化)를 막을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파리의 학살을 '문명세계에 대한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문명세계가 그걸 함께 단죄하고 처벌하자는 제안이었다.
터키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도 그것을 주(主) 의제로 삼을 모양이다.
EU 내무장관 회의도 금요일 소집된다.
 
 문제는 이게 한 번 두 번이었느냐는 것이다. 매번 작심(作心) 3일이었다.
9.11 테러가 엊그제인데 그 후 무엇이 달라졌나? 문명을 지키는 건 결코 공짜가 아니다.
유화주의와 나태함과 문약함으로는 악마를 이길 수 없다.
악에는 선으로 이겨야 한다는 말은, 악을 관용하거나 피하라는 뜻이 아니다.
 
 프랑스는 이른바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라고 항상 뻐겨왔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
난민으로 위장한 프랑스 국적의 알제리 출신 테러리스트 이스마일 오마르 무스테파이가
이번 파리 학살을 기획했다. 프랑스 식 톨레랑스에 대한 배신적 부메랑이었다.
자유의 체제는 다양성의 체제이고 다양성은 관용을 해야 가능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교과서적으로 아는 말이다. 그러나 관용의 체제는
불관용의 이념, 즉 IS 같은 악마도 관용해야 하는가?
프랑스 식 톨레랑스가 직면한 절박한 물음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벌써 70년 동안 학살자들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왔다.
이들에게 현금을 주고 비위나 맞춰주면  그들이
악의(惡意)를 버리고 휴매니티의 보편적 속성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주장이 일세를 풍미했다.
거기 어쩌다가 토라도 다는 날에는 대번 '반(反) 통일분자'라는 돌팔매가 날아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핵으로 무장한 악의(惡意)의 '불바다 공갈'이었다.
문명에 대한 안전보장은 '현금 박치기'로 매수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는 바가 없다.

이런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게 없는, 늘 수 없이 겪었던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까맣게 잊고 매번 똑같은 우(愚)를 범하곤 한다.
마치 처음 겪는 일이라는 듯. 이게 서방 문명세계의 취약한 아킬레스 건(腱)인 습관성 건망증이다. 그리고 우리 지신의 아킬레스 건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서울광장에선 또 한 차례 '폭력의 몸짓'이 연출된 게
G20의 하나라는 대한민국의 수도 한 복판 밤 풍경이었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