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4주기에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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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주기를 맞이하는 천안함 영령들께 우리는 아직 떳떳하지 못하다.
    영령들의 순국을 모독하는 자들을 우리가 아직 응징하지 못한 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이 심지어는 국정을 논하는 자리에까지 진을 치고 있다. 
    북에 의한 폭침이 아니라 그냥 ‘침몰’이라면서.
     하기야, 우기는 것은 그 동네 주특기이긴 하다.
    6. 25 남침도 “누가 했는지 더 알아봐야 한다”는 논법까지 있으니까.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미는 것은
우리가 반격의 총 한 방 못쓴 채 당하고만 말았다는 사실이다.
 "당장엔 북이 했다는 물증이 없었는데 어떡하란 소리냐?”고 할 것이다.
 그래서 물증 찾은 다음에는 체면 좀 차렸나?
 “보복하면 전쟁 날 텐데 어떻게 그러느냐?”고 하진 않았던지?
 이 땐 이래서 못하고, 저땐 저래서 못하고...
 
 이래저래 ‘국가의 국가다움’이 초라하게 빛바랬던 ‘꼭 4년 전’이었다.
대통령이란 사람이 그 무렵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하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배가 3각 파도에 부딪히면...”
아, 창피하고 분하다. 기껏 이것인가?
물증을 찾았는데도, 당당히 할 바를 하기는 고사하고,
 물증 없이 때릴 생각조차 아예 안 하고 못한,
 그래서 지지리도 못난 우리였다.
엔테베 작전을 한 이스라엘 사람들한테
이 ‘쪼다’ 같은 이야기가 들어가면 그들이 뭐라고 했을까?
 
 그렇게 못난 덕분에 ‘평화’가 유지되지 않았느냐고 할 게 뻔하다.
 존명사대(尊明事大)도 모자라 이젠 존북사대(‘尊北事大)인가?

당당하고 단호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깔보이는 게 세상 이치다.
로비나 하고 술 상무 노릇이나 하는 장사꾼 입장에서는
상대방에게 비위나 맞춰주고 돈이나 찔러주는 게 상도(常道)겠지만,
국가란 그렇게 운영하는 게 아니다.
자존을 지키지 않거나 못하는 국가는 국가랄 게 없다.
 
 영령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북은 지금 핵과 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는 북한 같은 범죄 집단엔 불가능의 벽은 아니다.
중국도 우리 편 아니고 일본도 우리 편 아니다.
그저 한-미 동맹 하나뿐이지만, 미국은 4년마다 한 번씩 정책이 바뀌는 나라라...”

그리곤 영령들은 깊은 한숨을 들이쉴 것이다.

 “그대들은 이런 판국에서 나라를 어디로 어떻게 끌고 갈 작정인가?”

우리는 답해야 한다. 그러나 뭐라고 답할 것인가?
뚜렷이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답안을 제대로 가지고 있기나 한가?
자괴(自愧)하고 자탄(自嘆)할 따름이다.
 
 “그러나 영령들이시어. 우리는 정답을 압니다.
영령들의 순국과 산화(散華)의 전후 맥락 자체가 답안지입니다.
우리에겐 적(敵)이 있다는 것,
그 적은 인간보편의 합리성의 기준으로는 결코 대처할 수 없는 예외적인 집단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광신 집단에 대해서는 일방적 유화주의나 환상적 기대는 금물이라는 것,
이것이 영령들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교훈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영령들을 기리는 우리의 마음이 이다지도 아리고 시린 것은
 비단 차가운 꽃샘바람 때문만은 아니다. 분노 때문이다.

불과 4년인데도 영령들을 욕보인 자를 영령들의 생전의 터전에 불러들여
무슨 TV 프로그램인가를 만든다 어쩐다 방정 떠는 저 얄팍한 인심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이 고통스러운 분노는 우리 살아남은 자들이 메고 가야 할 십자가다.
 
 우리 이 십자가를 기꺼이 메고 가자.
그리고 가족들로부터, 우리로부터 영령들을 앗아간
사악한 적의 존재를 잠시라도 잊지 말자.
천안함 폭침 4주년의 다짐이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