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등록금의 뿌리는 북의 통일전선부3년전 광우병 난동에 이은 '촛불시위'가 목표
  • 김정일 정권, '반값등록금' 투쟁의 몸통

    좌파(左派)의 무상(無償)시리즈, 망국(亡國)의 지름길

    金泌材  


    '반값등록금' 문제는 좌파(左派)진영이 들고 나온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등 이른바 ‘無償(무상) 시리즈’의 연장이다.
     
     무상급식은 수익자 부담에 어긋난다. 무상의료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하락과 국가재정 파탄의 재앙을 몰고 온다. 무상보육은 현재 내실화되지 못한 수많은 유아 보육기관의 부실을 초래한다. 이 중에서도 ‘반값등록금’은 무상 시리즈의 모든 폐해가 결합된 종합세트다.
     
     ‘반값등록금’은 소득재분배와 수익자부담 원칙에 맞지 않으며, 학력 인플레와 부실대학의 방치 및 대학부실의 가속화를 야기하는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자립의지를 길러줘도 모자랄 젊은 대학생들에게 의존심리만 키워주게 된다. 즉 구직도 못하고 학적만 유지하는 ‘만년좀비(Zombie)대학생’만 양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값등록금’이 좌파 진영은 물론이거니와 무이념(無理念)적인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가 있다.
     
     우선 치솟는 물가에다 성장에 따른 과실이 중산층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경제적인 요인이 그것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반값등록금’ 문제는 7.3%에 달하는 청년실업문제라는 불같이 민감한 요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북(北), 한총련과(課) 폐쇄 후 南학생운동 ‘경제문제’ 등 軟性(연성)전략 채택
     
     정치인의 무책임한 발언과 경제적 요인이 표면적 이유라고 한다면 ‘반값등록금’의 확산을 만들어내는 심층적 요인도 있다. 그것은 바로 북한의 ‘반값등록금’ 선전-선동이다. 북한은 지금 우리 사회에 팽배한 상호 불신감을 매개로 3년 전 ‘촛불’을 재연하려 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對南)공작 조직인 통일전선부(통전부)는 남한의 학생운동을 과거처럼 이념화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 2001년 한총련과(課)를 폐쇄했다.
     
     이후 북한은 남한 학생운동의 방향을 ‘경제문제’ 등 유연한 접근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 같은 장기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산하 대남(對南)선동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남한의 대학 등록금 문제가 공론화되어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기 전인 지난 4월 부터 동영상과 기사, 논평 등을 통해 반값등록금 투쟁을 선동했다.
     
     일례로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4월13일 ▲「살인적인 등록금 인상」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시작으로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시위 결의」(6월2일), ▲「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요구를 탄압하지 말라」(6월3일), ▲「반값등록금 요구에 리명박은 입을 열라」(6월9일), ▲「미친등록금에 미친정권」(6월11일), ▲「남조선단체, 등록금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보수언론들을 단죄」등 두 달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등록금 투쟁을 선동했다.
     
     北우리민족끼리 “(남한은) 미친 등록금의 나라” 선동
     
     구체적으로 <우리민족끼리>는 4월17일자 ‘반값등록금실현을 위하여 투쟁하는 남조선의 대학생들’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학생들의 말을 빌어 남한을 “미친 등록금의 나라”로 비난하며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남조선은 썩어빠진 사회”라고 주장했다.
     
     논평은 “정의를 위한 투쟁에 언제나 앞장서온 청년학생들은 자신들을 불행과 암흑 속에 밀어넣은 저주로운 남조선사회에 대한 끝없는 증오심으로 온넋을 불태우고 있다”며 “이들은 투쟁만이 자신들의 행복과 미래, 희망과 삶을 꽃피울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고 밝혔다.
     
     논평은 이어 “지난 력사가 보여주듯이 남조선에서 일어났던 4. 19인민봉기와 5. 18광주인민봉기, 10월민주항쟁과 6월인민항쟁 등 자주와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의 앞장에는 언제나 청년학생들이 서있었으며 그들의 투쟁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조선청년학생들은 자신들의 힘찬 투쟁으로 기어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것이며 민심의 지향과 요구를 거역하고 파쑈통치와 민족반역의 길로 달음치는 보수패당을 멸망의 구렁텅이에 처넣을것”이라면서 등록금 투쟁에 대한 강한 기대를 표명했다.
     
     <우리민족끼리>의 ‘미친등록금에 미친정권’과 같은 선전 문구는 등록금 시위를 주도해온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과 이들을 지지하는 좌파단체들이 사용하고 있는 선동구호와 일치한다. 실제로 한대련은 4월13일 <우리민족끼리>에 「살인적인 등록금 인상」동영상이 게재 된 다음날인 14일 인터넷에 ‘등록금, 청년실업 선전자보입니다’라는 제목의 공지를 올렸다.
     
     이후 4월21일 ‘반값 등록금 사기사건 심판과 반값 등록금을 위한 투표참여 호소 기자회견’ 공지를 인터넷에 띄운 뒤, 24일 서울 서현역 로데오 거리로 나와 실제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대련, 연평도 도발 등 안보문제에서 北도발 감싸
     
     한대련은 전대협·한총련을 잇는 대학생 운동권 조직으로 한총련이 노골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전위대 역할을 하며 利敵(이적)단체로 판시되자, 등록금 문제 등 경제문제를 중심으로 현실적인 주장을 앞세워 2005년 4월30일 출범했다.
     
     한대련은 강령에서 주한미군철수·국보법철폐·연방제통일과 같은 북한과 남한 내 좌파단체들의 대남(對南)적화구호 대신 “교육 공공성 강화”, “차별 없는 평등사회 구현”,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평화통일 실현”, “자주적이고 당당한 나라 건설” 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안보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대련 역시 친북단체들과 함께 북한의 도발을 감싸고 反美(반미)선동을 지속해왔다. 일례로 연평도 도발 직후인 2010년 11월29일 한대련은 성명을 통해 “지난 5월 全(전)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던 천안함 사건 이후 화약고나 다름없던 서해상에서 결국 포성이 울리는 국지전이 발생하고야 말았다”고 주장했다.
     
     또 “‘예견되었던’ 사태를 막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은 현재 한반도가 처한 전쟁위기에 대해 이성적인 판단과 대책보다 ‘힘과 대결의 감정적이고 호전적인 논리’로 일관하며 예견된 수순을 밟아왔다는 데 있었다”면서 도발의 책임을 북한이 아닌 남한 정부로 몰았다.
     
     이어 “전쟁불사가 아닌 반전평화, 10.4선언 이행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이다” “10.4 선언에서 약속했던 서해 평화협력지대가 성사되었다면 서해의 전쟁위기가 이토록 고조되지는 않았을 것” “6.15, 10.4 선언에서 약속했던 평화적 조항을 이행하라”며 북한의 연방제 赤化(적화)가 수용된 6·15, 10·4선언 이행을 촉구했다.
     
     같은 해 12월20일 성명도 “한반도에 전쟁을 부르는 미친 전쟁 놀음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 “전쟁을 하자는 현 정부에게 연평도 주민은 국민이 아니고 총알받이란 말인가?”, “자신의 정략적 이익을 위해 국민을 전쟁으로 몰아가는 정권은 독재정권”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미온적 대처를 ‘미친 전쟁 놀음’으로 몰았다.
     
     올 2월9일 성명은 “천안함 문제는 남북이 협력해서 진상을 밝혀야 할 문제이다. 천안함 사건은 여전히 진상이 해명되지 않은 해결미제의 사건이기 때문”이라면서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고 “객관적 정황이 이러함에도 북한의 소행을 단정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자세로는 올바른 진상규명도, 남북관계의 본질적인 개선도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연평도 사건에 대해 북한이 민간인 사상자 발생에 대해 이미 사과를 했고, 報償(보상)문제까지 제안했으나 오히려 정부 당국이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남북의 입장이 다르고 갈등과 긴장이 있기에 진행하는 대화에서 일방적인 남측 입장을 인정할 것을 전제로 한 대화태도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진정성’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며 남한 정부를 비난했다.
     
     ‘반값등록금’ 투쟁을 선동한 연예인 김여진-김제동
     
     한대련이 반값등록금 투쟁의 ‘방향’과 ‘전략’을 제시했다면 김여진(金麗珍)과 김제동(金濟東) 등 좌파(左派)성향 연예인들은 집회 및 언론과 방송을 縱橫無盡(종횡무진) 누비며 투쟁의 군불을 지폈다.
     
     올해 들어 부쩍 좌파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김여진은 그동안 ▲4대강 반대 ▲대북지원 주장 ▲반값 등록금 시위 ▲쥐(이명박) 그림 티셔츠 판매 운동 ▲홍익대 청소 노동자 지지 방문 등 연예인이라기 보다는 운동권 인사를 보는 듯 한 행보를 취해왔다.
     
     지난 1월20일에는 ‘날라리 외부세력’이라 불리는 ‘트위터리안’(Twitterian) 40여 명과 함께 홍대 본관을 점거 농성 중인 청소·경비원들을 위로 방문했고, 3월24일 방영된 MBC ‘100분 토론’에는 패널로 출연해 대학 등록금 인하,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 사회지도층의 도덕성 문제 등을 운운하며 현 정부와 기득권층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놨다.
     
     3월28일 케이블방송 tvN ‘브런치’에서도 “다같이 등록금을 반만 내자”는 주장을 제기한 그녀는 오프라인으로까지 나서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키도록 만들자”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이와 함께 지난 5월14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 등장한 김여진은 ‘반값 등록금 공약, 안 지키면 우리가 반만 내버리죠. 미친 등록금의 나라 이제는 바꿉시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낮 12시부터 약 1시간 동안 1인 시위를 했다. 운동권 투사를 방불케 하는 김여진의 이 같은 행동은 ‘쥐 그림 티셔츠(쥐벽서 티셔츠)’ 판매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최근 서울중앙지법이 ‘G20 정상회의’ 포스터를 패러디한 ‘쥐20 그림’을 그린 박 모 씨 등에게 벌금형을 선고하자 “돈을 모아 벌금을 대신 내주자”는 이색 제안을 하기도 했다.
     
     보수 성향 인터넷 언론 <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경남 마산 출신의 김여진은 어린 시절 독일 문학에 심취, 이화여대 독문학과에 입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학 입학 후 학생운동으로 눈을 돌려 PD(민중민주) 계열 ‘운동권 투사’로 돌변한다.
     
     서울 전농동과 청량리 1동 철거 지역에서 빈민(貧民)지원활동을 하던 그녀는 철거 작업을 막다 용역업체 직원과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약 3년 간 학생운동에 투신하던 김여진은 1995년 대학로에서 연극 한 편을 본 뒤 문화-연예계로 투신했다.
     
     이후 그는 극단 ‘연우무대’를 통해 ‘연극인 김여진’으로 변신했다. 3년 후 임상수 감독에 의해 전격 발탁,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스크린에 데뷔한 김여진은 이례적으로 첫 작품에서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후 2000년 좌파(左派) 성향의 이창동의 영화 '박하사탕'으로 히트를 친 김여진은 ‘대장금’, ‘이산’ 등 많은 드라마에 그 얼굴을 비치고 있다.
     
     김여진과 함께 본업(本業)을 내팽개친 연예인이 또 한 명 있다. 바로 개그맨 김제동이다.
     
     그는 지난 6월2일 반값등록금 집회 현장을 찾아 지지 발언을 했고, 6월4일 집회를 마친 대학생들과는 뒤풀이를 함께 했다. 6월5일에는 집회가 시작되기 전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정부로 하여금 ‘반값등록금’ 실천을 선동 하고 있다.
     
     그는 집회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투쟁을 연애 하듯이 하라. 혼자 끙끙 앓으면 괴롭다. 사랑할 때 누가 마음에 들면 괴로워하지 말고 앞에 가서 얘기해야 한다. 그리고 투표하라. 어느 당이든 좋으니 투표하라. 표가 없는 곳에는 정치인들이 구걸하지 않는다. 20대 투표율이 50%가 되면 반값 등록금이 가능해지고, 100%가 되면 무상으로 다닐 수 있다. 정치가 젊음을 굴리게 하지 말고, 젊음이 정치를 굴릴 수 있게 하라”
     
     개그맨 김제동, 통혁당 사건 연루자 신영복 교수 제자
     
     김제동의 이 같은 주장은 포퓰리즘에 입각한 전형적인 정치선동꾼의 발언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제동은 2년 전 성공회대에 편입, 신영복 석좌교수의 문하에 들어가 MT까지 함께 다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지하다시피 신영복 교수는 통혁당(통일혁명당)사건 연루자다.
     
     1968년 당시 중앙정보부(中情)에 의해 적발된 통혁당은 최고책임자인 김종태(사형)가 월북, 북한의 지령과 자금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공산혁명조직이다.
     
     당시 중정(中情)은 통혁당이 합법·비(非)합법, 폭력·비(非)폭력의 배합투쟁을 통해 1970년까지 소위 ‘결정적 시기’를 조성, 민중봉기함으로써 共産政權(공산정권) 수립을 획책해왔다고 발표했다.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통혁당 관련 판결문은 이 사건에 대해 아래와 같이 밝혔다.
     
     “통혁당은 북괴의 무력남침에 대비한 사전 공작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유격전을 기도하여 무력행사를 준비하였으며, 과거의 남로당 조직을 부활시킨 조직체일 뿐만 아니라 지식층의 청년을 포섭하였으며, 잡지 반포, 당소조의 조직, 당원에의 적색사상 교양, 데모 조정, 해안선 답사, 유격전술요원 입북, 간부진의 빈번한 입북과 국가기밀 누설, 거액의 공작금 지원 등이 있은 사실…(이하 생략)”
     
     통혁당 주범 중 한 명인 김질락(가명 백두오)은 옥중유고 ‘주암산’에서 “통일혁명당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비밀 지하당 조직이라는 데는 이의가 있을 리 없고 통혁당의 조직상황과 활동상황이 김일성에게 직접 보고 됐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같은 책에서 越北(월북) 당시 중앙당인 北노동당에 “우리 통혁당은 남조선 혁명을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지하당임을 자처하고 ‘남조선 혁명은 남조선 인민의 힘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각계각층에 대한 군중공작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적고 있다.
     
     통혁당은 또 핵심인물들에 의해 ‘청맥’(靑脈)이란 기관지까지 발행했다. 신영복(20년 복역)과 박성준(한명숙 前총리 남편, 성공회대 겸임교수)은 서울대 상과대학 내 써클인 ‘경제복지회’를 지도했는데, 신영복의 경우 통혁당 김질락의 지도를 받았다.
     
     김질락은 통혁당 2인자로 김종태(1969년 7월 10일 사형)에게 포섭된 인물이다.
     
     김종태는 4차례에 걸쳐 북한을 왕래하면서 김일성을 면담하고 미화 7만 달러, 한화 3,000만 원, 일화 50만 엔의 공작금을 받고 A-3지령만 167회를 수신했다. 그는 민중봉기, 간첩의 무장 집단유격투쟁을 통한 수도권 장악, 북한으로부터 무기수령을 위한 양륙거점 정찰, 특수요원 포섭, 월북 등 14개 항목의 공작임무를 띠고 있었다.
     
     통혁당 사건으로 수많은 좌익사범들이 수사를 받았다. 사형 5명(북한에서 파견된 군관 2명 포함), 무기 4명, 15년 내지 2년의 형을 받은 사람이 21명이었다. 최고책임자인 김종태는 사후에 북한에서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 북한은 그의 공적을 기려 평양전기기관차공장을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으로, 해주사범대학을 ‘김종태사범대학’으로 개칭하기도 했다.
     
     이처럼 좌파(左派)진영이 주도하는 ‘반값등록금’을 비롯한 소위 ‘무상(無償)시리즈’는 그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북한이라는 몸통을 찾게 된다.
     
     이제 공안당국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불법시위와 난무하는 유언비어(流言蜚語)를 철저히 단속하고 이를 一罰百戒(일벌백계)하는 것이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