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의 대담한 도발 "신영복, 그는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에 대해
  • ▲ 얼마 전 작고한 故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신영복 개인 홈페이지 캡쳐
    ▲ 얼마 전 작고한 故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신영복 개인 홈페이지 캡쳐


    얼마전 작고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우상화 광풍이 넘쳐나고 있다.
    <한겨레신문>을 필두로 좌파 전체주의 추종 언론들이 깃발을 들고 북을 두드리며 앞장서고 있다.
    다음카카오 같은 포털은 이들이 쏟아내는 기사를 과대포장해 배포하는데 땀을 흘리고 있다.

    이런 광풍 속에서도 여론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게 메이저 언론이다.
    그러나 조중동 KBS MBC는 얼이 빠진듯하다.
    곁가지로 전락한채 부채질이나 하고 앉아 있다.
    하기야 신영복을 인문학자로 띄우는데 팔걷어 올리고 나선게 <중앙일보>이니 무슨 기대를 할 것인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담론>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 <처음처럼> 소주병에 붙어있는 글씨를 쓴 서예가, 김제동 등 연예인을 제자로 거느린 진보경제학자.
    신영복에 대한 일반대중의 인식은 대강 이 정도선에서 머무른다.

    신영복은 1963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하다가 1968년 평양의 직접 지휘를 받는 간첩단인 <통일혁명당> 핵심간부인 것이 들통나 무기징역형을 받은 인물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동서해빙 분위기 아래서 특별가석방되었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 김질락에 의해 포섭된 신영복은 서울대 경제학과의 박성준(한명숙 전국무총리 남편) 등과 함께 <통혁당>의 학생운동조직을 만들고 지도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런 신영복의 본질과 본색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사라지고, 인문학자로서의 포장지만 부풀려진 셈이다.
    그가 마치 [시대의 스승이자 사표]인양 왜곡추앙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과연 누구인가?
    그 진면목은 무엇인가?

    <뉴데일리>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로 했다.

    국정교과서 문제의 핵심에 대해 비수처럼 날카로운 글로 장안의 화제를 불러 일으킨 김철홍 장로회신학대교수가 이 문제에 대해 참지 못하고 먼저 외과수술용 칼을 들고 나섰다. [편집자 주]


    2016년 1월 22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오승훈 기자의 글 <신영복, 그는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는 매우 의미심장한 기사다.
    그 이유는 <한겨레>라는 신문이 대한민국에서 의미심장한 신문이기 때문도 아니고, 신영복이라는 인물이 우리 역사에서 의미심장한 인물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 기사가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 글을 통해 사실상 대한민국이 [내전](內戰) 상태에 있다는 것이 매우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특징은 한마디로 가식이 없는 [솔직함]에 있다.
    그 기사는 신영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대학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자본주의 분석에 있어서 가장 체계적인 이론으로, 가장 정합적인 실천과학]으로 받아들이며 정치경제학을 자기 학문의 밑절미로 삼은 [붉은 경제학도]였다.”

    오승훈 기자는 자신이 직접 신영복에게 [붉은 딱지]를 붙여버림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붉은 딱지]를 붙일 기회를 근본적으로 차단한다.
    이것은 분명 새로운 현상이다.

    “우리 진보진영을 공산주의로 몰아가려는 신(新)메카시즘을 중단하랏.”

    “멀쩡한 사람을 종북(從北)으로 몰아가는 마녀 사냥(빨갱이 사냥) 중단하랏.”

    소위 [진보진영]과 공산주의 이념 사이의 연결 고리를 지금까지 위와 같은 논리로 부정해온 좌파들이 앞으로 가면을 벗고 떳떳하게 붉은 맨얼굴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로 결정한 것은 아닐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 기사는 신영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신영복은 남한사회 반체제운동의 주류로 자리잡아온 엔엘(NL·민족해방주의) 노선에 기초한 혁명조직인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20년 20일 동안 영어의 몸이 됐다.
    역설적이게도 그 잔인한 세월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그를 인문학적 사상가로 거듭나게 한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감옥 안에서 작성했다는 [전향서]는 어떻게 된 것인가?

  • ▲ 故신영복 교수가 검거된 이유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대남혁명조직 '통일혁명당' 사건에 핵심인물로 연루됐기 때문이었다. ⓒ뉴데일리 DB
    ▲ 故신영복 교수가 검거된 이유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대남혁명조직 '통일혁명당' 사건에 핵심인물로 연루됐기 때문이었다. ⓒ뉴데일리 DB


    그 기사에 따르면 신영복 본인이 “지금 다시 그때가 되더라도 전향서를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전향서는 [자의](自意)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타의](他意)에 의한 것이므로 무효이며, 자신은 전향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1988년 가석방이 되어 출소된 뒤, 그리고 1989년에 <성공회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뒤, 죽을 때까지 줄곧 “그의 반(反)자본주의적인 입장은 여전히 또렷했다”는 글에서, 기자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전향서 썼다고 전향했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너희들이 너무 순진한 거야.”

    그렇다.

    신영복은 자유민주주의자가 되기엔 너무 붉었고, 차가운 감옥에서 썩기엔 그의 [붉은 열정]은 너무 뜨거웠다.

    <통혁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신영복과 함께 재판을 받고 처형된 김질락이 처형되기 전에 남긴 옥중수기, 『어느 지식인의 죽음』 (원제; 주암산)에 기록되어 있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나 나눈 긴 대화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신영복:
    “(중략) 외견상으로 볼 때 누가 봐도 저는 순수한 자유주의자죠.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될 수 있는 대로 쉽고 재미나는 말로 계급의식을 주입시키지요.
    예컨대 원시사회에는 인간이 뛰어다니며 자연을 착취하며 살았고, 좀 더 편하게 살자니 농사를 지었다.
    농사짓는 것보다는 남이 지어 놓은 농사나 재물을 빼앗는 게 훨씬 수월했기 때문에 부족 간에 싸움이 생기고, 이긴 자는 지배자가 되고 진 자는 노예가 되었다.
    그리스 문화만 하더라도 노예의 희생 위에 성립된 것이었다.
    그러니 인간은 자연을 착취하는 데서 인간을 착취하는 방향으로 지능이 발달했다.
    이런 식으로 인류역사가 계급투쟁사임을 인식시키는 거죠.
    이런 방법이 훨씬 안전하고 사회주의를 모르는 친구들에게는 잘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중략)

    김질락:
    “미스터 신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의 한국경제는 미국의 신식민주의 정책에 의해 완전히 미국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레닌의 말과 같이 금융적으로 완전히 예속된 나라는 정치적으로도 완전히 독립성을 상실한 식민지나 다름없습니다.
    (중략)
    나는 결코 인혁당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나대로 혁명의 방법론을 갖고 있습니다.
    미스터 신은 나하고 같이 일해 볼 생각이 없으시오?”

    신영복: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도 인혁당에 관련됐던 사람들을 몇 사람 알고 있는데, 그들은 도무지 돼먹지 못했더군요.

    너무 교조주의적이라고 할까.
    요즘 세상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곧 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단기간의 훈련만 마치면 육사교관으로 임명됩니다.
    제가 훈련받고 와서 육사교관으로 임명되고 난 뒤부터 시작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김질락신영복과 처음 만난 그 날의 경험을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결합되었다.”

    신영복은 그 때부터 숙명여대의 [붉은 강사]였고, 육군 중위 계급장이 달린 초록색 군복을 입은 [붉은 군인]이었고,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인문학적으로 잘 풀어서 가르친 [붉은 교수]로 살다가 죽었다.

    흰 눈이 흩날리는 1월 18일.
    1천명의 사람들이 검은 옷을 입고 와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지만, 흰 눈도, 심지어 검정색 옷도 그의 [붉은 사상]보다 더 진하지 않았다.

  • ▲ 신영복 교수의 빈소를 찾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성공회대 초대총장이었고, 盧정권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신영복 교수의 빈소를 찾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성공회대 초대총장이었고, 盧정권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를 <성공회대학> 교수로 초빙한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성공회대 초대 총장)이 조사에서 한 말.

    “불의한 재판으로 선생님의 몸은 가둘 수 있었지만, 선생님의 지성은 가둘 수 없었다”

    이런 그의 말은, 징역 20년의 형벌 정도는 [본디 붉은] 사람들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알려준다.

    신영복의 죽음 이후 좌파들이 그를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려놓으려고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남조선에서의 인민해방을 위해 묵묵히 걸어온 사람을 향한 그들 나름대로의 [예의]이므로 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한겨레> 기사는 도를 넘어도 한 참 넘었다.
    이것은 단순히 애국진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간보는] 게 아니다.

    필자 주
    물론 안철수 의원만 간을 보라는 법이 없으므로 [간보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간보기] 치고는 너무 간이 부었다.

    그 기사는 좌파들이 내부적으로 읽는 내부문서가 아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시민들을 향한 선언문에 더 가깝다.

    “신영복, 그는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는 주장은, “한겨레, 우리는 본디 붉은 신문이다”라는 선언이다.
    “진보진영, 우리는 본디 붉은 집단이다”라는 자기 고백적 선언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안에 붉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실존한다는 것을 이제 공식적으로 인정해달라는 요청이며, 그들의 본진(本陣)이 내어놓은 공식적 선전포고라고 보아 손색이 없다.

    나는 모든 애국시민들과 더불어 <한겨레>의 이 선언을 두 손을 들고 환영한다.
    왜냐하면 이 기사는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용기를 내어] [붉은 것]을 ‘붉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자신은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닌 중립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애국시민들에게 이 기사보다 더 좋은 교육 자료는 없다.

    "요즘 세상에 공산주의자가 어디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 기사를 읽고 입을 다물기 바란다.
    평균적 지성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글을 읽고 “신영복이 본디 붉은 경제학자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공회대학> 안에 [붉은 학자]들이 어찌 신영복 한 사람뿐이겠는가?
    [붉은 학자]들이 어찌 <성공회대학> 안에만 있겠는가?
    또 [붉은 사람]들이 다 학자이겠는가?

    우리 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붉은 사람]들은 실존하며, 오늘도 그들은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신기루가 아니다.
    [유물론적 역사관]을 가진 역사학자들이 역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도 허구가 아니다.
    [붉은 사상]에 물든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와 사적 소유에 기초한 시장 경제제도를 허물어뜨리려고 하고 있다는 나의 주장도, 소설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오래전에 내전(內戰)의 상황으로 들어갔다.
    현재의 좌우(左右) 대립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전후로 한 시기의 좌우 대립을 이미 넘어섰다.
    내가 보기에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거의 6.25 직전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공화국에 핵무기가 없었는데, 지금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겨레>와 범좌파가 더욱 더 노골적으로 [그래 우리 붉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뭐 어쩔래?]하며 눈꼬리를 치켜뜨는 이유다.

    <통진당>이 해산되고 이석기가 유죄판결 받았다고, 지금 잔치를 벌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제2의 이석기, 제3의 이석기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판결되었다고, 지금 샴페인을 터뜨릴 수도 없다.
    왜냐하면 중고등학교 교실은 여전히 붉은 교사들의 작업장이고, 사회주의에 친화적인 세대가 계속해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 ▲ 지난 6일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4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북한은 이것이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주장했다. ⓒYTN 당시 北조선중앙TV 인용보도 화면캡쳐
    ▲ 지난 6일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4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북한은 이것이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주장했다. ⓒYTN 당시 北조선중앙TV 인용보도 화면캡쳐


    대한민국은 휴전선 너머에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지금 휴전 상태이지만, 우리 내부에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적들은 한 번도 우리에게 휴전회담을 제의해 온 적이 없다.
    그들은 지금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미완(未完)의 전쟁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고 있다.

    이미 내전은 시작되었다.
    아직은 총이 아닌 펜을 들고 싸운다.
    부디 불가피하게 총을 집어 들어야 하는 상황이 절대로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남과 북이 총을 들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