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의 벽 쌓더니 이제 와서 안동 방문 '견제구'에 말뒤집고 '흠집내기' 열올려
  •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5일 제주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만나 악수하며 귓속말을 건네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5일 제주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만나 악수하며 귓속말을 건네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짧았던 제주 방문을 통해 확고한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반기문 총장이 내년 12월에 치러질 대선에 출마한다면, 어느 정당의 후보로 출마하게 될까.

    국민의당 주승용 전 원내대표는 27일 평화방송라디오 〈열린세상 오늘〉에서 "개인적으로 반기문 총장이 여당 후보로 출마할 것인지 야당 후보로 출마할 것인지는 두고 봐야된다"고 했지만,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는 방향으로 굳어진 것이 아니냐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반기문 총장의 제주 포럼 일정에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이 대거 동행했다. 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비대위 구성 등 산적한 당내 현안과 원구성 협상 등을 제쳐놓고 제주를 찾았다. 반기문 총장과 정진석 원내대표가 귀엣말을 하는 장면도 언론에 포착됐는데, 정진석 원내대표는 반기문 총장에게 김종필 전 국무총리(JP)를 예방할 것을 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여권 후보로 인상이 굳어져가는 듯한 모습이지만, 사실 애초에는 주승용 전 원내대표의 말대로 "여당 후보로 출마할지 야당 후보로 출마할지 두고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권노갑 상임고문은 지난 2014년 11월 자신의 자서전 '순명' 출간기념회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반기문 총장의 최측근과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타진했다"는 발언을 해 '반기문 대망론'에 불을 질렀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최근 취재진과 만나 당시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금으로부터 1년 반 전에 만나보니 새누리당보다는 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경선에 들어올 생각이 있더라"며 "충청 출신이니 뉴DJP 연합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말을 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대선에) 나갈 가능성도 반(半), 안 나갈 가능성도 반, 새누리로 갈 가능성도 반, 민주당으로 갈 가능성도 반, 모든 게 반반이라 반(潘) 총장인가"라고 농담을 했다. 이처럼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던 반기문 총장을 새누리당의 확고한 잠재적 대권 주자로 이끈 세력은 대체 누구일까.

    반기문 총장이 스스로 '애매한 포지션'을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선이 1년 6개월 이상 남아 있고, 아직 유엔사무총장 임기 중인 상황에서 '애매한 포지션'을 유지하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뉴시스 사진DB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뉴시스 사진DB

    실제로 온갖 야권 성향 인사와 매체들은 반기문 총장의 여권 후보 출마 가능성이 높아지자 뒤늦게 말을 바꿔가며 '견제구'와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13년 반기문 총장을 가리켜 "우리가 많이 부족한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을 확실히 보여주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분"이라며 "대선 후보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극찬했던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은 지난 25일 "(유엔사무총장이 퇴임 직후 출신국 주요 직책을 맡지 않을 것을 '권고'하는) 유엔결의안이 존중되는 게 바람직하다"며 말을 뒤집어엎었다.

    왜 상황이 이렇게 돌변했을까. 문재인 전 대표를 수장으로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친노·친문패권주의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치된 견해다.

    김대중정부에서 외교통상부차관을 지냈고 노무현정권에서 유엔사무총장이 됐지만, 친노친문패권의 소굴로 전락해버린 야권(정확히는 더불어민주당)을 보며 학을 뗐다는 것이다. 독단·독선과 오만·무도로 사람 내쫓기에 일가견이 있는 친노친문패권 세력이 결국 반기문 총장의 발길마저 여권으로 돌리게 만든 셈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20일 취재진과 만나 "지금으로부터 1년 6개월 전에 (반기문 총장 측을) 접촉을 했는데 '새누리당에 가서 경선을 하면은 어려운데, 민주당에 오면 이길 수 있으니 새누리당에 가지 않고 민주당에 오겠다'고 하더라"며 "그 분들도 경선 각오를 했더라"고 전했다.

    2014년 하반기 새정치민주연합에는 확실히 '열린 경선'의 가능성이 있는 듯 했다. 7·30 재·보궐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안철수 대표가 공동대표에서 물러났고, 그 선거에서 후보로 나섰던 손학규 고문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한줌 친노'의 수장인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양보를 받고 나가서도 패배했던 사람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이후 1년 6개월 동안 전개된 상황은 상식을 뛰어넘었다. 친노친문패권 계파는 문재인 전 대표를 무조건 대선에 한 번 더 내보내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남발했다.

  •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뉴시스 사진DB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뉴시스 사진DB

    7·30 재보선을 빌미로 비노(非盧) 김한길·안철수 지도부를 무너뜨린 친노친문패권 세력은 한통속인 줄 알았던 박영선 원내대표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이상돈 교수의 비상대책위원장 영입과 관련해 문재인 전 대표가 말을 뒤집는 등 결정타를 연이어 날려 '박영선 체제'마저 붕괴시켰다.

    이후 정대철 상임고문이 "또 친노냐"라고 책상을 내리치며 항의했는데도 무시하고 친노 문희상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옹립했다. 문희상 위원장은 친노패권계파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해 문재인 전 대표의 당권·공천권 장악을 위한 레드카펫을 깔았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문재인 전 대표의 대항마로 출마했지만, 2·8 전당대회의 결론은 이미 결정돼 있었다. 친노·친문 계파의 전횡에 경악한 당원들의 표심이 박지원 원내대표에게로 쏠리자, 일반여론조사의 배점을 경선 도중에 변경하는 방식으로 기어이 문재인 전 대표의 손에 당권을 쥐어주고야 말았다.

    이러한 과정을 외부에서 관찰한 사람이 있다면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당대표 경선도 미리 당선자를 다 정해놓고 도중에 룰까지 바꿔가며 치르는데, 하물며 대선 후보 경선은 어떻겠는가. '공정한 경쟁의 장'이 마련될 것이라는 신뢰가 전혀 없는데, 친노·친문패권 세력과 경선을 해보겠다고 어울리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후 2·8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문재인 대표를 위시한 친노·친문패권 세력은 사당화(私黨化)에 박차를 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로지 대권 주자 1인만을 위한 당으로 전락해갔다. 박지원 원내대표의 말대로 "더민주는 사실상 문재인 대표가 대선에 나가는 것으로 확정된 당"이 돼 버렸다.

    이 과정에서 합리적 상식을 가진 정치인들이 분분히 당을 떠났다. 다들 뛰어내리는 배에 새삼 몸을 싣으려는 사람이 있겠는가. '친문패권당'이 돼 버린 마당에 대권에 도전하려는 참신한 인재가 있더라도 들어오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결국 친노친문패권이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27일 경북 안동을 찾아 반기문 총장의 대권 행보에 견제구를 날리고, 친노친문 세력 일각에서 반기문 총장을 흠집 내기에 열을 올리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누구도 넘어올 수 없는 공고한 패권의 벽을 높이 쌓은 것은 문재인 전 대표를 위시한 친노친문 계파 그들 자신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