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을 야권 후보 동행 취재기] 야권 유권자도 분열, 극과 극 반응
  •                    

    4·29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서 야권 대표 주자 자리를 놓고 격돌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와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21일 각각 삼성동과 신사동 상가를 돌며 선거구민들을 상대로 지지를 호소했다.

    정태호 후보는 한때 대권 주자였던 안철수 전 공동대표를 앞세웠다. 반면 정동영 후보는 지난 19일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이행자 서울시의원과 함께 다녔다. 이행자 시의원은 부친에 이어 2대째 이 지역에서 지방의원을 지내고 있는 토박이로, 양 측의 상반되는 선거 전략이 동행 인사에서 엿보였다는 지적이다.

    후보를 만난 주민들의 반응도 반색과 난색으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선거 전략에까지 조언하는 유권자가 있는가 하면 대놓고 후보자를 면박하는 유권자까지 존재했다. 이 지역의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의 분열상은 뚜렷해 보였다.

    정태호 후보는 이날 주로 안철수 전 공동대표를 알아보고 찾아온 지지자들에 편승하는 전략을 취했다. 반면 정동영 후보의 지지자들은 주로 후보를 먼저 알아보고 몰려들어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정동영 후보에게는 지지자 뿐만 아니라 후보자가 민망함을 느낄 정도로 면박을 주는 '극렬 안티'도 존재해 눈길을 끌었다.


  • ▲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21일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함께 삼성동 일대에서 주민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21일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함께 삼성동 일대에서 주민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다음 대선에서 꼭, 꼭, 무조건!"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는 이날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함께 삼성동 시장 초입에서부터 미림여고 방면으로 걸어 올라가며 주민들을 만났다.

    오후 4시 30분부터 일정이 시작된 관계로, 선거권을 가진 주민보다 하굣길의 학생들이 더 많았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자신을 알아보고 반색을 하는 학생들과 일일이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정태호 후보는 촬영이 끝날 때마다 "어머니, 아버지께 꼭 정태호한테 투표하라고 해야 돼"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당장 이번 보궐선거에 선거권이 없는 학생들의 안중에 후보자는 보이지 않는 듯 했다. 한 학생은 정 후보의 당부에 대꾸하지 않고 안철수 전 대표를 향해 "다음 대선 때 꼭, 꼭, 무조건 (찍어드리겠다)!"고 외쳤다.


  • ▲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21일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함께 삼성동 일대에서 주민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21일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함께 삼성동 일대에서 주민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젊은 사람들이 투표들을 안 할 것 같아…"

    정태호 후보와 안철수 전 대표는 이날 주로 젊은 유권자들과 접촉했다. 선거권조차 없는 고등학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날 접촉한 유권자들 중에는 대학생들이 많았다.

    미림여고입구 삼거리에 있는 할리스커피에 들어선 안철수 전 대표는 젊은 대학생들이 좌석을 채운 채 공부하고 있자 "대학 다닐 때 하숙하던 곳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다"고 친근감을 표하려 애썼다.

    하지만 좌중으로부터는 이렇다할 반향이 없었다. 일행을 힐끗 바라볼 뿐 이내 다시 독서나 공부 등 자기 할 일에 열중하자, 안철수 전 대표는 다소 민망한 듯 "다들 공부하는 분위기라 (돌아다니며 악수를 청하기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커피숍 계단을 걸어내려가며 정태호 후보에게 "젊은 사람들이 많이 투표를 해야 하는데…"라면서도 "분위기를 보니 투표를 잘 안 할 것 같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21일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함께 삼성동 일대에서 주민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21일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함께 삼성동 일대에서 주민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골목이 표 나오는 곳, 열심히 좀 다녀라"

    안철수 전 대표가 아닌, 정태호 후보를 멀리서부터 알아보고 반색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은 오히려 중장년의 남성 유권자들이 많았다. 관악을의 27년 야권 독주 신화를 만들어낸 '견고한 콘크리트 지지층'이었다.

    이들은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의 선두 질주와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의 상승세 속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단순한 지지 약속을 넘어 선거 전략에까지 적극 조언하는 등 자기 일처럼 나서는 유권자들도 보였다.

    한 주민은 "큰 도로보다 골목을 열심히 다니시라"며 "그런 곳이 표 나오는 곳"이라고 정태호 후보를 나무라기도 했다. 큰길가를 다니며 대학생·고등학생들과 악수하고 기념 촬영하는 방식이 실속이 없다면서, 삼성시장 안쪽처럼 전통적 지지층이 밀집한 지역으로 다니라는 꾸짖음이었다.


  • ▲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21일 이행자 서울시의원과 함께 신사동 일대에서 주민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21일 이행자 서울시의원과 함께 신사동 일대에서 주민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카톡친구 합시다. 내 번호 저장해요"

    한편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는 19일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이행자 서울시의원과 함께 신사동주민센터 앞에서부터 주민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정동영 후보는 인사를 나눈 신사동 주민들에게 "나와 카톡친구를 하자"며 자신의 번호를 적은 수첩을 내밀었다.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신선한 지지 호소에 주민들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친구요청을 수락한 주민들은 적지 않았다.

    고등학생과 기념 촬영을 했던 안철수 전 대표처럼, 정동영 후보도 아이의 너머에 있는 부모의 표를 겨냥했다. 자신을 모른다며 연신 고개를 젓는 아이에게도 정동영 후보는 수첩을 보여주며 "카톡하니? 아저씨 번호니까 저장해"라고 열의를 보였다. 헤어지면서 정동영 후보는 아이에게 "엄마한테 정동영 아저씨 만났다고 전해"라고 본심(?)이 담긴 인사를 건넸다.

    정동영 후보는 이날 동행한 〈뉴데일리〉 취재진에게 "멀리 있는 친구보다 카톡 친구가 더 연락을 많이 하지 않느냐"며 "이를 위해 연락처를 새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연락이 온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민원 연락이 온 적 있다"며 "앞으로도 (유권자와의 카톡 친구 요청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21일 이행자 서울시의원과 함께 신사동 일대에서 주민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21일 이행자 서울시의원과 함께 신사동 일대에서 주민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불판을 왜 갈아! 닦으면 되지!"

    이런 선거 베테랑 정동영 후보에게도 진땀나는 위기가 있었다.

    정동영 후보가 신사동의 한 아이스크림 공장에 들어서자, 삽겹살을 구워먹고 있던 주민은 불편한색을 보였다. 아니나다를까 "대통령 후보까지 나오셨던 분이 민심을 못 읽는다"며 면박을 주기 시작한 이 주민은 "이번에 지면 정치 생명 끝난다니까"라고까지 핀잔을 줬다.

    힘겹게 미소를 잃지 않던 정동영 후보는 자신이 최근 밀고 있는 '불판 드립'으로 화제를 돌렸다. 마침 아이스크림 공장 안에서는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어 안성맞춤이었다. 정 후보는 "불판이 까매지면 어떻게 해야죠? 바꿔야죠?"라고 주민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 주민은 "닦으면 되지, 왜 바꾸려고 해"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맞받았다.

    녹록치 않은 상대를 마주한 정동영 후보. 하지만 대선에서 600여만 표를 얻었던 그답게 기세등등한 상대를 꺾을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동영 후보는 "그럼 이완구 총리도 닦으면 되겠느냐"라고 화살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이에 잠시 머뭇거리던 주민은 "이완구 총리는 닦을 수가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주민은 이어 정동영 후보를 쏘아붙인 게 미안했던 듯 막걸리를 한 사발 따라주기도 했다.


  • ▲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21일 이행자 서울시의원과 함께 신사동 일대에서 주민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21일 이행자 서울시의원과 함께 신사동 일대에서 주민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사흘만에 변색(變色) 이행자 "출정식은 내 뜻 아냐"

    정동영 후보의 이날 유세에 동행하며 관악을 유권자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한 이행자 서울시의원은 정태호 후보와의 관계에 다시 한 번 선을 그었다.

    앞서 17일 관악 세이브마트 앞에서 열렸던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의 출정식에서 파란 잠바를 입고 사회를 맡았던 이행자 의원은 이날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의 주황색 잠바를 입고 있었다. 불과 사흘만에 입고 있는 선거 유니폼의 색깔이 바뀐 것이다.

    17일 출정식에서 유세차량의 마이크를 잡고 문재인 대표와 정태호 후보를 극찬하며 지지를 호소했던 이행자 시의원은 20일 서울시의회에서의 탈당 기자회견에서 "새정치에 새정치가 없고, 민주에는 민주가 없으며, 연합에는 포용과 배려가 없다"며 "여전히 독선이 난무하고 비인간적인 모멸감을 안겨주고 있다"고 친노 세력을 강하게 질타해 화제가 됐었다.

    과연 그의 본심은 무엇이었을까.

    이행자 시의원은 이날 〈뉴데일리〉 취재진의 질문에 "(17일) 출정식은 내 의지로 한 것 아니다"라며 "내가 수동적으로, 의무방어적으로 선거에 참여하니까 당에서 앞에 보이는데 세우려고 사회를 시켰던 것"이라고 털어놨다.

    "당시 그런 의사를 당에 밝혔나"라는 질문에는 "탈당을 할까도 한다고 말했는데, 그 다음날 그렇게 사회를 세우더라"며 "그 때는 탈당한 상태가 아니라서 당이 하라는 데로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