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초기 CVID에서 FFVD 거쳐, 이젠 "핵 리스트만 받아도 제재 풀자" 수준으로
  • 손예진 주연의 ‘협상’이라는 영화에서 보면 협상가가 상황이해도 없이 참여했다가 실패를 거듭하다 중반부터 상대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한다. 

    협상학에서 ‘준비(Prepare)’는 협상 시작 전부터 제대로 갖추고,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할 필수과제로 강조된다.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구분해보면 내 자신의 목적과 이해, 상대의 것과 상태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지난 평창올림픽 이후 북한 비핵화 협상은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얻었고, 한반도 안보리스크를 일시적으로 줄여온 것도 성과이다. 그러나 협상 명칭처럼 ‘북한 비핵화’에 있어서는 다른 평가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것은 갈수록 혼란스러워지고 있는 반면 상대입장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 협상 초기 CVID 얘기 슬그머니 사라져
    먼저 현재의 상황을 살펴보자. 핵심 준비항목인 우리의 명확한 목적과 이해가 무엇이었는지, 북한이 입장에 대한 분석이 있었는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 비핵화’라는 말은 수시로 쓰이고 있지만 초기 완전하고 되돌아갈 수 없고 미래에도 보유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의미의 CVID(완전, 검증, 비가역성, 해체) 개념이, FFVD(최종, 완전, 검증, 비핵화)로 ‘비가역성은 빠졌다’라는 지적을 받더니, 지금은 핵 리스트만 받아도 제재를 풀자는 수준으로 크게 완화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비핵화를 절대 양보할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론을 들어 동결수준에서 인정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급기야 지난 9월 ‘문대통령이 북한의 수석대변인 같다’는 한 외신의 평가가 나왔고, 지난주에는 오히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수차례나 CVID를 강조했다. 아셈의 요구도 북한 비핵화가 선결과제였다. 

    반면 북한의 핵포기는 내부 현실상 절대 양보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준비 단계부터 북한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파악했다면 다른 이해를 통해 북의 현실을 바꾸는 우회 전략이 병행됐어야 했다. 

    예를 들면 경제 분야를 활용하되 UN제재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북한 노동력에 서비스, 유통,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전 교육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 스스로 일어서도록 하는 한편, 북한 지도층에도 핵이 아니라 경제안정으로 체제 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 줄 수 있다. 최근 미국, 일본, 중국도 북한을 압박하되 경제 분야 사전 조사를 하고 있어 우리도 서둘러야 할 점이다.

    남한 내부의 추진력부터 획득해야
    둘째, 이제부터라도 미래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솔직한 현실 공개와 국제사회와 공유된 목적, 그리고 우리의 이해가 제시되어야 한다. 우선 남한 내부부터 추진력을 얻어야 하고, 이를 위해 밖에서 우리 야당을 흉보거나 배제시킬 대상으로 폄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치 부부간에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아도 밖에 나가 서로 흉본다면 듣는 사람은 그 순간 맞장구칠지 몰라도 돌아서면 그 부부를 둘 다 우습게 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금까지의 대차대조표를 구체적으로 정리해 상대가 얻은 것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상대에게 크게 부각해 우리가 미래에 얻을 것들의 근거로 삼는 역발상도 필요하다.

    끝으로 국가적인 협상들은 우리나라 사례만 보더라도 1968년 푸에블로 미북 협상은 8개월간 지속됐고, 최근 한미협상은 2년이었듯 보통 1년 이상이다. 그런 점에서 비핵협상은 그 난이도로 볼 때 이제 막 중반전에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 여당은 새로운 ‘준비’를 위해 그간의 평가를 토대로 하되 내부부터 힘을 모으도록 투명한 절차를 통해 추진해주길 바란다. 야당도 마찬가지로 통일이라는 커다란 국익을 위해 북한 인권 등 정부와 여당이 놓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 점검하고 대안을 던지되 스스로의 반성도 늘 앞세워 국민의 공감을 키워주기 바란다. 합리적인 대안은 정부에도 협상의 지렛대를 주어 국익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권신일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겸임교수(전 허드슨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