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수사팀 "윗선이 '항소 금지' 지시" 폭로현직 검사장, 검찰총장 대행에 "사퇴하라" 문자대장동 수사 검사 "민간업자에 범죄 수익 안겨""11월 8일 0시, 검찰도, 진실도 죽었다" 분노검찰총장-중앙지검장, '항소 포기' 합의에 이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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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사건 재판에 대한 검찰의 '항소 포기' 사태가 검사들의 집단 항명(抗命) 움직임으로 비화되고 있다.
- ▲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비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들에 대해 항소를 포기한 대장동 수사·공판팀이 '대검과 중앙지검 지휘부가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고 폭로한 가운데, 검사장급 법조 인사가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가 '검찰의 항소 포기로 민간업자들에게 수천억 원 상당의 범죄수익을 안겼다'는 글을 검찰 내부망에 올리는 등 검찰 내부 갈등이 격화되는 모습이다.
검찰 지휘부 판단에 정치적 고려가 개입됐다는 의혹이 짙어지면서 직업적 자부심이 강한 수사 라인을 중심으로 '법리는 정치로부터 독립돼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불거진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 현직 검사장, 검찰총장 대행에 "사퇴하라" 문자
9일 채널A·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영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지난 8일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검사)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결정에 대해 검찰총장 직무대행으로서 직접 책임을 지라는 뜻을 전달한 것.
박 연구위원은 노 대행에게 "대장동 사건 항소를 포기하도록 지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검사로서 법치주의 정신을 허물고 정권에 부역하여 검찰에 오욕의 역사를 만든 책임을 지고 당장 사퇴하시라. 더 이상 당신을 검찰 선배, 일선 검사들에 대한 지휘권자로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문자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박 연구위원은 차순길 대검 기획조정부장과 이진수 법무부 차관, 성상헌 법무부 검찰국장,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에게도 자진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법무부 장관의 항소 포기 지시가 불법적임에도 이를 제대로 막지 않았다는 게 박 연구위원의 주장이다.
박 연구위원은 지난해 전주지검장을 지내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가 연루된 '타이이스타젯 특혜 채용' 의혹 수사를 지휘했다. 문 전 대통령을 재판에 회부한 박 연구위원은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자 한직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됐다.
◆ 대장동 수사 검사 "항소 포기로 배임 피해금 환수 난항"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9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검찰의 대장동 재판 항소 포기로 인해 수천억 원대 배임 피해금 환수의 길이 사실상 막혔다고 단정했다.
김 검사는 "1심 재판부는 유사 사례의 법리만을 토대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죄를 무죄로 선고하면서 추징하지 않았다"며 "항소 포기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죄의 중요 쟁점(재산상 이익 취득 시기 등)에 대한 상급심의 판단을 받을 기회조차 잃었다"고 지적했다.
김 검사는 "대검 차장께서 금요일 밤늦게까지 그토록 심도 있게 종합적으로 고려하신 기준이 무엇인지, 중앙 검사장께서는 수사·공판팀이 작성한 항소 취지 '공심(공소심의위원회)'에 결재하셨음에도 금요일 23시 30분 이후 번복하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지난 8일 0시 검찰은, 그리고 진실은 죽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제가 법무연수원 신임 검사 시절 교수셨던 중앙 검사장님은 초임지로 이동을 앞둔 저희에게 '머리보다 큰 감투를 쓰면 눈을 가린다'고 하셨다"며 "대검 차장·반부패부장, 중앙 검사장께서는 머리보다 큰 감투를 쓰셔서 눈이 가려지신 건가"라고 질타했다.
울산지검 천영환 검사도 검찰 수뇌부를 겨냥해 비판의 소리를 높였다. 천 검사는 이프로스에 "수사 검사와 공판 검사의 항소 제기 만장일치 결정에 법무부와 대검이 반대한 이유가 무엇이냐"며 "국민에 대한 배임적 행위를 한 법무부 장관과 대검 수뇌부의 사퇴를 요구한다"고 썼다.
이어 "법률과 적법 절차에 의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무부와 대검이 특정인들을 법률과 재판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 검찰총장 대행 "대장동 사건, 항소 안 하는 게 타당하다 판단"
이처럼 검찰 내부에서 항소 포기 결정에 대한 자성의 소리가 쏟아졌으나,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대장동 사건은 법무부 의견 등을 참고한 후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엇갈린 견해를 드러냈다.
노 직무대행은 9일 검찰 내부에 공개한 입장문에서 "대장동 사건은 일선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처럼 법무부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다양한 의견과 우려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조직 구성원 여러분은 이런 점을 헤아려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앞서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와 관련해 해당 수사팀 검사들의 반발이 일자 사의를 표명했던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은 노 직무대행의 입장 표명 직후 "(대검과) 중앙지검의 의견이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항소 포기 결정 과정에서 중앙지검과 협의를 가졌다는 노 대행의 발언을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취지로 파악된다.
정 지검장은 9일 배포한 입장문에서 "대검의 지휘권은 따라야 하고 존중돼야 한다"면서 "중앙지검의 의견을 설득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대검의 지시를 수용하지만, 중앙지검의 의견이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이번 상황에 책임을 지기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 정성호 법무부 장관, 10일 오전 도어스테핑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31일 대장동 개발 배임 의혹 사건의 피고인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김만배 씨 등 민간업자 등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고 이들에게 징역 4~8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이들에 대해 기소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손해액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단하고,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만을 유죄로 인정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 공판팀은 법리적 쟁점에 대한 상급심의 판단을 구하고 무죄 부분 및 양형부당을 다투기 위해 항소를 결정하고 내부 결재까지 마쳤으나, 항소 시한 마감일인 7일 대검이 '항소 포기' 방침을 정하면서 항소를 포기했다.
한편, 법무부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0일 오전 10시 30분 정부과천청사에서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진행한다고 9일 밝혔다.
법무부는 정 장관이 도어스테핑에서 언급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정 장관이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논란과 관련해 입장을 밝힐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