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설화·역사·근현대사 등…소리극·오페라·가무극·뮤지컬로 초연
-
- ▲ 소리극 '서편제; The Original' 공연.ⓒ국립정동극장
이청준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恨)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는 소리극 '서편제', 1950년 전쟁 직전 여인들의 삶을 그린 오페라 '화전가', 조선 중종 시대 실존 인물 '전우치'를 모티브로 한 가무극 '전우치', 조선사 최대 난제였던 장영실 실종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판소리·고전·설화·역사·근현대사 등 전통의 소재를 현대적인 감각과 결합한 한국적인 이야기가 무대 위에 새롭게 쓰인다.◇ "원작에 더욱 가깝게"…국립정동극장 소리극 '서편제; The Original'국립정동극장이 개관 30주년 기념공연으로 '서편제; The Original(디 오리지널)'을 오는 11월 9일까지 초연한다. '서편제'는 영화, 뮤지컬, 창극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며 관객들을 만나왔다. 국립정동극장의 '서편제'는 판소리의 북장단과 소리꾼의 성음이 돋보이는 소리극으로 재창작됐다.이번 작품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귀토-토끼의 팔란' 등에서 호흡을 맞춘 고선웅 연출가와 한승석 음악감독의 신작이다. 이청준의 연작 단편소설(1976) '남도사람'의 1부 '서편제', 2부 '소리의 빛', 3부 '선학동 나그네'의 각색을 바탕으로 한다. 떠돌이 생활을 하는 소리꾼 아비와 딸, 사내를 중심으로 그들의 기구한 운명과 한(恨)의 예술적 승화를 그려낸다.'서편제; The Original'은 사내가 냉이로부터 아비와 소녀의 과거를 듣는 1막과 소녀를 만나 자신의 지난 삶을 고백하는 2막으로 나뉜다. 판소리 다섯 마당의 눈대목과 단가, 민요를 포함해 총 22곡을 노래한다. 고선웅 연출가는 암전 없이 진행하는 장면전화, 회전무대로 구현하는 유랑, 입장과 성격을 수시로 바꾸는 일인다역 등 특유의 연극 미학을 더했다.'아비' 역에는 남원시립국악단 악장 임현빈과 이날치의 멤버 안이호가 출연한다. '소녀' 역은 국립창극단 창악부 단원 김우정, 2021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판소리부문 장원의 박지현이 맡는다. '사내' 역에 국립창극단 창악부 단원 박성우와 정보권, '냉이' 역에는 박자희·서진실이 분한다.고선웅 연출가는 "소설을 읽으면 사내·아비·소녀로만 나오고 이름이 없다. 옛 소리꾼들이 이름도 없이 소리길을 떠돌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차이가 크다. 소설 속 인물 그 상태로 공연을 올렸다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섣불리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오지리널'에 가깝게 할지 고민했다. 이청준 선생님이 보셨다면 행복해하셨을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
- ▲ '화전가' 무대디자인 2막.ⓒ국립오페라단
◇ 안동 사투리 말맛 오페라 무대로…배삼식 作 '화전가' 초연국립오페라단은 오는 25~2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화전가'를 처음 선보인다. '화전가'는 극작가 배삼식의 동명 연극을 오페라로 재창작했다. 연극은 2020년 2월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공연을 연기했으며, 같은 해 8월 재개해 매진을 기록했으나 또 다시 코로나로 조기 종료된 바 있다.'화전가'는 1950년 4월 안동을 배경으로 6·25 전쟁 직전 여인들의 삶을 그린다. 9명의 여인들이 김씨의 환갑잔치를 위해 모이고, 김씨는 잔치 대신 꽃놀이 가는 '화전(花煎)놀이'를 제안한다.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이념 갈등이 퍼져있던 시기, 남성들은 시대에 휩쓸려 세상을 떠났거나 투옥 중이다. 남아있는 여인들은 요리하고 밤새 이야기하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다. 연극에 이어 남성은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화전가' 초연을 위해 배삼식 작가, 최우정(서울대 교수) 작곡가, 정영두 연출·안무가가 의기투합했다. 이들 삼인방은 2017년 음악극 '적로', 2022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마디와 매듭'에서 호흡을 맞췄다. 정영두는 '화전가'를 통해 오페라 연출가로 데뷔한다. 지휘는 독일 오스나브뤼크 시립극장 최초 동양인 상임지휘자로 발탁됐던 송안훈이 맡는다."빌것도 없는 인새이 / 와 이래 힘드노?(별것도 없는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들어?)" 오페라는 원작의 경상도 사투리와 살아 있는 말맛도 음악에 그대로 담긴다. 성악가들은 아리아를 표준말로 노래하지만 대사는 모두 사투리를 한다. 무대도 눈여겨 볼만하다. 무대를 표현하는 키워드는 '여인들이 모여 있는 자리'이다. 치맛자락, 안방, 대청마루,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정자나무 아래 등 여러 공간들이 구현될 예정이다.최우정 작곡가는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모든 문장이 안동 사투리로 쓰여 있었다. 소리로 실현한다면 그 억양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해가 안 되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보고, 유튜브로 안동 사투리 경연 대회 우승자들의 발음을 많이 참고했다"며 "본래 사투리는 표준어보다 훨씬 음악적이다. 억양의 높고 낮음이 매우 명확해서 일상의 언어보다 음악적으로 몇 배는 고양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
- ▲ 창작가무극 신작 '전우치' 포스터.ⓒ서울예술단
◇ K-히어로의 탄생, 서울예술단 신작 '전우치' 온다서울예술단이 오는 25일~11월 2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창작가무극 '전우치'를 초연한다. 조선 중종 시대 실존 인물 '전우치'를 모티브로 전통 설화와 현대적 상상력이 결합된 총체극이다. 극작·작사가 경민선, 작곡가 황호준, 연출가 이대웅, 안무가 정보경을 비롯해 일루셔니스트 이은결이 매지컬 씬 디렉터로 참여한다.'전우치'는 고전 설화의 단순한 재현을 넘어 현대적 시선과 상상력을 입힌 'K-히어로'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도술과 환술로 부패한 권력을 응징하고 백성을 구제했던 전우치는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신비로운 설화 속 영웅이다. 작품은 인간 전우치가 영웅으로 거듭나는 여정을 그리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경민선 작가는 "절대 이뤄질 수 없는 꿈이지만, 모른 척할 수 없는 불편한 마음. 그것이 바로 영웅의 마음이라 생각했다. 그 마음이 더해지고 부풀려져 '전우치'라는 인물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발상에서 이야기 구성을 시작했다"고 밝혔다.전우치는 장난기 어린 유쾌함을 동시에 지닌 인물로 실패하고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싸우며 성장하는 입체적인 영웅으로 그려진다. 무대는 '족자'의 형상을 본뜬 구조로 설계돼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허물고, 전통 민화·도교·저승 신앙의 상징 요소를 낯설게 배열한 영상디자인이 더해진다. 작곡가 황호준은 전통 장단과 현대적 사운드를 결합해 전우치의 내면과 외부 세계의 충돌을 음악으로 형상화했다.출연진도 눈길을 끈다. 부패한 세상을 응징하고 민초의 편에 섰던 조선의 영웅 '전우치' 역에 이한수 단원과 그룹 하이라이트의 손동운이 캐스팅됐다. 전우치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스승 '서화담' 역에 최인형, 전우치의 누명을 벗기고 진실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구미호' 역 이은솔, '옥황상제' 역에는 금승훈이 출연한다. -
- ▲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출연진.ⓒEMK뮤지컬컴퍼니
◇ 장영실이 다빈치를 만났다?…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이상훈 작가의 장편 소설 '한복 입은 남자'(2014)가 뮤지컬로 재탄생된다. 자격루, 측우기, 다연발무기 신기전 등을 발명한 장영실은 노비의 신분이었지만 세종의 총애를 받아 종3품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는 1442년 임금이 타고 갈 수레를 잘못 만들어 태형 80대에 처해진 뒤 쫓겨났다는 마지막 기록을 남기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한복 입은 남자'는 곤장을 맞고 쫓겨난 이후 장영실의 행적을 좇는다. 이상훈 작가는 자료를 조사하던 중 장영실의 발명품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 사이에서 유사점을 발견했다. 서양인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 그림이라고 알려진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의 모델과 명나라 정화의 마지막 행적, 실록이 전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장영실의 생애를 촘촘하게 연결했다.EMK의 10번째 창작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는 12월 2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다. 엄홍현 총괄 프로듀서를 필두로 권은아 연출·극작, Brandon Lee(이성준) 작곡·음악감독, 서숙진 무대디자이너 등이 합류했다. 조선·이탈리아, 현대와 과거를 넘나드는 시·공간적 구조를 바탕으로 1막은 조선, 2막은 유럽을 무대로 삼아 마치 전혀 다른 두 공연을 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전 배역이 1인 2역을 맡아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는 인물들을 연기하며 사회의 모순과 인간 군상을 입체적으로 담아낸다. 조선의 천재 과학자 '영실'과 비망록의 진실을 추적하는 학자 '강배' 역에 박은태·전동석·고은성,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과학 발전에 힘쓴 '세종'과 비망록 속 진실을 좇는 방송국 PD '진석' 역에는 카이·신성록·이규형이 출연한다.이상훈 작가는 "소설이 세상에 나온 지 10여 년 만에 뮤지컬로 다시 태어나게 돼 감격스럽다. 소설을 뮤지컬로 만드는 작업은 창작진이 또 다른 제 2의 창작을 이뤄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라 생각한다. 우리 콘텐츠와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한복 입은 남자'가 전 세계에 나아갈 작품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